조폭 등 ‘범죄단체’ 판단 잣대 적용 1심 무죄, 검찰 항소…일각 ‘중개사법 취지 고려했어야’ 지적
일요신문이 단독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법원은 “대표기관이나 임원 등 대표자 선출 절차가 확인되지 않았고, 특정 공인중개사와의 거래를 제한한 것도 단체의 의사결정으로 볼 수 있는지 의아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이 판단을 놓고 검찰과 법원 모두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인중개사법의 취지를 고려할 때 “범죄단체 기준에 대해 적극적인 법해석이 필요했다”는 아쉬움이다. 검찰은 2심의 판단을 받겠다며 항소한 상태다.
#특정 아파트 거래 놓고 수수료 등 담합
판결문 등을 종합하면, 사건의 시작은 서울 송파구 잠실의 한 아파트 상가에 위치한 부동산 단체에서부터였다. 아파트가 재건축될 당시 해당 아파트 상가에 있던 공인중개사들은 2007년부터 A 단체를 만들어 운영했다. 회원은 70여 명 수준. 가입한 회원들끼리만 공동중개를 했고 수수료 유지 및 거래·운영 방식을 규제했다. 가입비 및 회비를 받아 운영한 적도 있으며, 2019년 3월까지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을 운영했다. 정기·비정기적으로 모임이나 회의를 가졌다.
그런데 2019년 3월 한 회원이 허위매물 등록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부터 갈등이 시작됐다. A 단체 회원들은 그를 제명했고 공동중개 배제, 부동산 매물 공유 사이트에서 중개 물건을 열람할 수 없도록 조치했다. 다른 회원 역시 A 단체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명과 동시에 공동중개 및 중개물건 열람에서 배제됐다.
결국 고발로 수사가 시작됐다. 검찰은 이 사건이 부동산 담합 행위에 해당하는 범죄라고 판단했다. '단체를 구성하여 특정 중개대상물에 대하여 중개를 제한하거나 단체 구성원 이외의 자와 공동중개를 제한하는 행위'를 금지한 공인중개사법 33조 1항 9호 위반이라고 본 것이다.
#범죄단체 기준 부합 않는다고 무죄?
1심을 맡은 서울동부지법 형사9단독 전경세 판사의 판단은 검찰과 달랐다. 대법원이 2020년 8월 선고한 판례를 기준으로 삼아, 12월 8일 무죄를 선고했다.
전경세 판사는 판결문에서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는 일정한 범죄를 수행한다는 공동목적 아래 구성된 계속적 결합체로 내부의 질서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통솔 체계를 갖춰야 한다”며 “대표기관의 임원이 누구였는지 선출 절차 등이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고, (운영을 위한) 자금이 필요할 것인데 자금을 보유하고 있었음도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는다”며 이들을 범죄단체라고 볼 수 없다고 봤다.
공동중개 및 중개물건 열람을 제한한 결정 역시 “단체의 의사결정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제명에 관한 단체의 의사결정이 있었는지도 불명확하다”고 적시했다. 이를 근거 삼아 ‘범죄단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법조계 일각 “부동산 담합은 다 무죄냐”
이에 대해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 판결 기준이라면 공인중개사들의 담합 대부분은 무죄가 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판결문을 읽어본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공인중개사법 33조 위반으로 기소를 했는데, 공인중개사법에서 규정한 ‘사업자단체’는 형법에서 판단하는 단체보다 넓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며 “공인중개사법에서 말하는 단체는 폭넓은 개념으로, 담합 등 거래에 있어 문제가 될 수 있는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자 만든 게 법의 취지인데 판사가 다소 좁은 개념으로 범죄단체에 접근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공인중개사법 38조에는 ‘개인 공인중개사가 조직한 사업자단체는 공정거래법 제2조에서 말하는 사업자 단체를 말한다’고 적혀 있다. 그 기준이 되는 공정거래법 제2조의 조항은 사업자 단체에 대해 “그 형태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둘 이상의 사업자가 공동의 이익을 증진할 목적으로 조직한 결합체 또는 그 연합체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통솔체계나 대표를 선출하는 방식 등의 기준이, 대법원 판례에 나오는 범죄단체가 아니라 공정거래법과 공인중개사법에서 정한 기준으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판사 역시 “보이스피싱이나 조직폭력배 등 과거의 범죄단체를 판단하기 위해 만든 기준을 부동산 거래 담합을 위한 모임에도 적용한 셈”이라며 “판단의 이유와 근거는 이해하지만, 법이 만들어진 취지를 고려했다면 유죄를 선고했어도 좋았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결국 검찰은 1심 판결 직후 항소했다. 2심에서 유무죄 여부를 다시 판단받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건의 고발인 측 변호인인 권순철 에스디지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는 “공인중개사법은 공인중개사들의 집단적인 담합행위를 규제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단체를 구성하는 자체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단체를 구성해 부동산거래질서를 교란하는 행위를 한 것을 처벌하는 것이므로 단체 구성 요소를 엄격하게 해석하는 형법의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을 비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과거 판례와 다른 좁은 해석?
한편 다른 재판부에서 비슷한 사건에 대해 ‘담합행위’를 폭넓게 볼 수 있다는 판단이 나온 적도 있다.
2013년 공정거래위원회는 충북 충주 지역의 공인중개사 모임인 B 단체가 사업자 수를 제한하거나 부동산거래정보망을 하나로 통일해 사용토록 한 것이 문제가 있다며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에 충주시장은 소속 공인중개사들에게 3개월여의 업무정지처분을 내렸는데, 이에 공인중개사들이 “처분을 취소하라”며 충주시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청주지법은 충주시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재판부는 “둘 이상의 중개업자가 조직한 사업자단체가 독점규제법의 금지행위를 위반해 해당 사업자단체 또는 구성원인 중개업자가 처분을 받았을 때에는 중개업사무소의 개설등록을 취소하거나 해당 중개업자에 대해 영업정지를 할 수 있다”고 판결문에 적시했다. 회칙과 회원수 규모 등을 정해놓고 운영했던 B 단체가 공인중개사법에서 정한 ‘사업자단체’에 해당하며, 이들의 행위가 문제가 있었기에 업무정지처분이 적절했다고 본 것이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