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차례 유상증자에 채무 인수 ‘아픈 손가락’…관광객 유입 난망 속 대표 사임 ‘정상화’ 시간 걸릴 듯
#‘붓고 또 붓고’ 끊이지 않는 지원
지난 12월 29일 태영건설은 인제스피디움 유상증자에 참여해 44억 원을 출자했다. 오는 2월 10월에는 20억 원을 출자할 예정이다. 인제스피디움은 태영건설이 100%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다. 지금까지 태영건설이 인제스피디움에 출자한 총 금액은 1608억 원에 달한다. 태영건설은 인제스피디움에 대해 2017년 870억 원, 2018년과 2019년 각각 60억 원, 2020년 120억 원, 2021년 124억 원, 2022년 104억 원의 유상증자를 실행했다.
태영건설은 유상증자 외에 채무 인수 등의 방법으로도 인제스피디움을 지원해왔다. 현재 태영건설에는 380억 원의 유동화증권 채무인수 두 건이 남아있다. 태영건설이 자금보충약정을 제공한 125억 원의 유동화증권도 있다. 채무자인 인제스피디움이 대출을 갚지 못할 경우 자금보충 의무자인 태영건설이 책임을 져야 한다. 세 건의 유동화증권 만기는 모두 올해 1분기로 예정돼 있다.
인제스피디움은 설립 이후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최근에는 영업이익이 좋아지는 추세였다. 인제스피디움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인제스피디움의 영업손실은 약 1621만 원으로, 7억 원을 기록한 2020년보다 크게 줄었다. 같은 기간 당기순손실도 61억 원에서 49억 원으로 감소했다.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도 마이너스(-) 45억 원에서 -38억 원으로 개선됐다. 다만 누적결손금은 2020년 말 2742억 원에서 2021년 말에는 2790억 원으로 늘었다.
그러나 지난해 다시 당기순손실이 증가했다. 태영건설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인제스피디움은 지난해 3분기 누적 43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2021년 누적 3분기(31억 원) 대비 손실폭이 커졌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인제스피디움의 순자산가액은 -1298억 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2021년과 1~9월과 지난해 1~9월의 매출은 98억 원으로 같지만, 영업현금흐름은 35억 원에서 7억 원으로 감소했다.
인제스피디움의 재무건전성 우려는 태영건설의 재무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연결 기준 태영건설의 부채비율은 441%다. 한국기업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연결 기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발채무 규모는 2조 4000억 원이다. 1조 7000억 원이었던 지난해 대비 7000억 원이 늘었다. PF 우발채무는 건설사가 자기자본이 충분치 않은 시행사에 보증해준 자금으로, 장부상 채무는 아니지만 채무 위험이 있는 빚이다.
#매년 상환액도 많고, 전망은 그닥…
인제스피디움은 사회기반시설에대한민간투자법에 따라 추진된 민간투자사업으로, 2008년 태영건설과 강원도 인제군이 체결한 ‘인제스피디움 관광지 조성 민간투자사업 실시협약’에 따라 2009년 설립됐다. 민간 소유 기한은 48년으로, 태영건설은 2062년까지 소유권을 갖고 운영할 수 있다. 그 이후엔 인제군에 소유권이 귀속된다. 그러나 운영사인 태영건설이 다른 기업에 매각하는 것도 가능하다. 혹은 휴업을 선택할 수도 있다.
2021년 말 기준 인제스피디움의 장기차입금 잔액은 927억 원으로, 매년 64억 원 정도를 상환해야 하는 상황이다. 안정적으로 현금이 창출되지 않는다면, 금융비용 상승으로 인한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인제스피디움의 감사인은 2022년 3월 인제스피디움 감사보고서에서 “회사의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 여부는 회사의 차기 자금조달계획과 안정적인 영업이익 달성을 위한 재무 및 경영개선계획의 성패에 따라 결정되므로 중요한 불확실성이 존재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인제스피디움은 2021년 RC트랙(Radio-Controlled Model Car·무선조종 자동차)을 오픈하는 등 성장 동력 찾기에 나섰다. 2019년부터는 현대자동차와 전용 서킷 계약을 체결했으며, 지난해 5월엔 원메이크 레이스(단일차종 경주) 대회인 ‘현대 N 페스티벌’을 인제스피디움에서 개최했다. 지난해 3월에는 예식장업, 식물원 동물원 및 자연공원 운영업, 영화관 운영업, 자동차 세차업 등을 사업목적에 추가했다.
그러나 상황을 낙관하기는 섣부르다. 국내 모터스포츠 산업의 전망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영암 F1 경기장에서 2013년 F1 대회를 열었지만 그 후에도 모터스포츠 산업이 활성화되지 못했다. 위치와 인프라 등 여건이 좋지 않은 데다, 일반인들의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모터스포츠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선 튜닝 산업이 먼저 활성화돼야 한다. 그러나 포지티브 방식의 규제 탓에 튜닝 산업 규제 논의는 멈춰있다”고 설명했다. 2019년 국토교통부가 ‘자동차튜닝 활성화 대책’을 발표한 이후 별다른 규제 완화 정책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관광객 유입을 위해 인제군청과 인제스피디움이 세운 자동차극장 건설 계획도 지연되는 분위기다. 지난해 2월 인제군청은 2010년부터 시작된 인제스피디움 관광지 조성 계획과 관련, 인제스피디움의 그랜드스탠드 유휴부지에 자동차극장을 조성하는 계획을 추가했다고 고시했다. 자동차극장 조성 공사를 비롯한 모든 공사는 2022년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20일 인제군청은 사업기간을 2026년까지로 늘린다고 변경고시를 냈다.
자동차극장 공사비는 인제군이, 운영비는 인제스피디움이 부담해야 하는데 비용과 관련한 의견 조율에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제군청 관계자는 “자동차극장은 현재 짓지 않고 있다. 운영사(인제스피디움)와 군청이 협의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부분들이 다소 있어서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다. 자동차극장을 설치했을 때 수익이 마땅치 않다는 결론이 나오는 경우 등 사업 계획 자체를 변경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제스피디움을 이끌던 대표도 사임했다. 인제스피디움은 지난 12월 17일 전문경영인인 김춘수 대표가 사임했다고 공시했다. 김 대표는 윤세영 태영그룹 명예회장의 차녀 윤재연 블루원리조트 대표와 함께 2016년 공동대표로 취임했으며, 지난해 2월 윤 대표가 사임하며 인제스피디움 단독 대표에 올랐다. 다만 이에 대해 태영건설 측은 임기 만료에 따른 사임이라고 밝혔다.
태영건설 관계자는 “인제스피디움 경영 정상화에 따라 추가 지원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만기가 도래하는 유동화증권은 그간 만기 시마다 차환을 통해 만기일을 연장해왔다. 태영건설 우발채무는 만기에 여유가 있어 당장 문제가 생길 사안은 아니다”며 “코로나19 완화로 2021년에는 시설 이용률이 회복됐으나, 2022년부터는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 영향 등으로 기업 고객 매출이 줄어든 게 2022년 3분기 당기순손실 하락 원인으로 파악된다. 인제스피디움 휴업 계획은 없으나, 서킷 전문가 영입과 수익성 다각화 전략 등 매출 극대화를 통해 점진적으로 사업 손익을 개선해나갈 계획이다. 매각 관련해선 아직 결정된 사항이 없다”고 답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