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6일 방송되는 KBS '자연의 철학자들' 41회는 '나는 은하수를 만나러 간다' 편으로 잃어버린 은하수를 찾아 순수하고 아름다운 방랑을 하는 시인 이원규 씨의 철학을 만난다.
전라남도 광양시 섬진강 자락에 은하수를 따라 지구 7바퀴의 거리를 달린 이가 산다. 은하수를 통해 잃어버린 자신을 재발견했다는 이원규 시인(61)이다. 그는 8년 전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은하수를 찾아 다닌다.
매일 위성과 날씨 지도를 통해 하늘의 날씨를 파악한 후 맑고 습도가 낮은 날이면 어김없이 길을 나선다는 시인. 빛 공해가 가장 적은 오지마을을 찾아다니며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온 토종나무를 발견해내고 어둠이 내리면 그 나무 위로 쏟아지는 은하수를 카메라에 담는다.
시인은 그것을 '별나무'라 부른다. 별나무 은하수를 찍는다는 건 숱한 실패를 전제하는 여정이지만 시인에게는 그 과정마저도 결코 헛되지 않다. 한결같은 모습으로 자신을 기다리는 나무와 북극성을 마주하며 오히려 초심을 되새길 수 있는 길이 된단다.
하늘의 별 무리 은하수와 지상의 별인 나무를 찾아 돌아다니는 여정 자체가 시(詩)라는 이원규 시인. 온몸으로, 별도 나무도 사람의 또 다른 자화상임을 증명하며 무시로 은하수를 찾아 나선다.
서울에서 기자 생활을 했던 이원규 시인은 24년 전 미련 없이 지리산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왔다. 약 10년간의 도시 생활은 화려함 이면에 깔린 삶의 무상함만을 안겨줬다. 그렇게 서른다섯 살이 되고 보니 조급함 속에서 살아온 만큼을 또 살아내야 한다는 것이 막막했다.
그래서 시인은 빈손으로 오로지 자신의 자유와 해방을 찾아 지리산에 입산했다. 가난한 시인은 아내 신희지 씨(57)와 함께 지리산 골짜기 빈집을 전전했다. 지금은 섬진강 변 달빛이 밝은 월채마을로 여덟 번째 이사를 했다. 시인은 이 집에 '몽유'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시를 쓰던 시인은 독학으로 사진을 배웠다. 야생화에서 시작된 그의 사진은 은하수를 만나면서 확장됐다. 산에 묻혀 어둠에 묻혀 등대 같은 은하수를 따라가며 진짜 '빛'이 무엇인지에 대해 늘 고민했다. 인위적으로 빛을 만들어 그 빛을 엄청난 별이라 믿고 살아가는 현시대의 근시안적인 사고를 은하수를 만나는 과정에서 돌아보게 됐다.
그리고 깨달았다. 들꽃이 진짜 별이요, 집 마당에서 뛰노는 동물들이 별이요,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사람도 제빛을 가진 별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모든 관계가 모여 장엄한 은하수를 이룬다는 것을. 시인은 말한다. 빛난다고 다 별빛이 아니듯 보이지 않는다고 별이 사라진 게 아니라고. 시인이 한 자루 붓이 되어 은하수를 만나러 다니며 시를 쓰는 이유다.
은하수를 찍는 일은 '하늘의 시간'을 기다리는 일이다. 시인은 눈을 뜨자마자 위성사진과 지도, 다양한 일기예보를 보는 게 습관이 됐을 만큼 하늘의 때를 맞추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의 일일 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찾아간 곳에서 밤이 새도록 기다려도 찍지 못하고 돌아오는 일이 부지기수다.
별나무 은하수 사진을 하나 건지는 일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란다. 나무를 찾아두고 은하수가 그 나무 위로 내려오는 사진 하나를 완성하기까지는 적어도 3년에서 5년의 시간이 걸린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집중해야만 겨우 만날 수 있다.
시인은 그런 날들의 연속 앞에서도 결코 실망하지 않는다.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만나야 할 것이 있음에 기다림까지도 가슴 설레게 다가온다고. 은하수를 담지 못하는 날엔 사계절 피고 지는 야생화라는 별을 담으며 감사한다. 인생의 나침반 하나를 가지게 되면서 그는 불면의 밤을 은하수를 만날 설렘과 희망으로 기다린다.
올해 여름 이원규 시인에게 스승이자 친구였던 연관 스님이 투병 끝에 생을 달리했다. 스님의 49재 행사에 참석한 시인은 추모 시를 읊으며 그가 단순히 죽은 것이 아니라 왔던 별인 북두칠성 여섯 번째 별 '문창성'으로 돌아간 것임을 되새긴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담담했던 스님은 하늘 너머에서 또 하나의 방향을 알려줄 것이고, 시인에게 와 하나의 희망이 될 것이라고. 시인은 밤하늘 은하수를 찍으며 은하수에 담긴 희망을 노래하고 싶단다.
'살면서 별을 얼마나 보느냐'고 시인은 묻는다. 밤에도 꺼지지 않는 도심의 불빛은 은하수를 가리는 빛의 장막. 그 결과 현대인은 별을 더 잊어가고 주변의 생명이 전부 별이라는 사실까지도 모르는 채 산다. 몇 십, 몇 백 광년 후 이 땅에 도달한 희망의 별빛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인은 도시의 조급함이 더 안쓰럽고 애처롭다. 은하수를 통해 삶의 궤도와 방향을 되찾은 시인은 사시사철 한자리를 지키는 북극성과 사계절 내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무의 이미지를 빌려 말하고 싶다.
'조급해하지 말고 흔들림 없이, 들꽃처럼 별들처럼 저 반짝이는 은하수처럼 자신의 길을 걸어가라'고. 시인은 은하수를 찾아 오늘도 한 자루 붓이 되어 족필(足筆)의 시를 쓰러 길을 떠난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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