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거 사흘 전까지 ‘뒷돈’ 마련 위해 상장사 처분 시도…소송 제기보단 귀국해 검찰과 ‘거래’ 시도할 듯
#2023년 1월 10일
1월 10일 오후, 한국 검찰은 태국 경찰을 앞세워 빠툼타니의 한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고 있던 김성태 전 회장 검거에 성공했다. 2022년 5월 도주한 지 8개월 만이었다. 김 전 회장보다 먼저 해외로 도피했던 양선길 현 쌍방울 회장도 함께 골프를 치다가 검거됐다.
김 전 회장은 지난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임직원 수십 명을 동원해 640만 달러를 중국으로 밀반출해 북한에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을 당시 변호사비를 대납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2023년 1월 초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 측근들은 한국에서 상장사를 매수할 이를 찾고 있었다. 김 전 회장이 실소유하고 있는 상장사 M 사를 매각하기 위함이었다. 이들이 내건 조건은 계약서상 금액 외에 웃돈을 얹어달라는 것이었다. 100억 원이 조금 넘는 돈에 매각할 테니, 수십억 원을 더 얹어 달라는 것이었는데 이 웃돈은 해외에서 체류 중인 김성태 전 회장에게 보내기 위함이라며 거래를 시도했다.
거래 제안을 받은 적이 있는 한 사업가는 “김 전 회장과 돈 거래를 한 적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압수수색이 나올 정도로 검찰이 쌍방울그룹과의 돈 흐름을 모두 살펴보는 상황이었다”며 “웃돈을 얹어주려면 출처가 없는 돈이어야 하는데 결국 김 전 회장에게 건네지게 되면 다 잡힐 수밖에 없어서 당연히 거절했다”고 설명했다.
#2022년 12월 말
한국 검찰과 태국 경찰은 수사 공조 하에, 태국에서 검거한 김성태 전 회장의 매제 김 아무개 씨의 기록을 분석하고 있었다. 김 전 회장의 금고지기로, 굵직한 자금 거래를 모두 알고 있는 김 씨는 태국 파타야에서 12월 초 검거됐다. 김 씨는 귀국을 거부하면서 태국 법원에 송환 거부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김 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유의미한 지점이 포착됐다. 김 씨가 파타야와 빠툼타니를 여러 차례 다녀간 흔적을 발견한 것. 빠툼타니는 방콕 북부에 위치한 도시로 고급 골프장이 위치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 토대로 골프를 즐기는 김 전 회장이 빠툼타니에 머무르고 있다는 판단을 하고 수배에 들어갔다. 태국 경찰과 함께 김 전 회장 검거를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2022년 12월 초·중순
이즈음 김 전 회장이 주변 관계자들에게 “잡힐 것 같다”고 털어놓기 시작했다고 한다. 수원지검 등 검찰이 쌍방울그룹 관련 수사를 옥죄어 오는 것을 본 김 전 회장은 측근들에게 “검찰 수사가 더 좁혀오는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할 것 같냐”는 고민과 함께 변호인단을 꾸리는 등 본격적인 대비를 시작했다.
#2022년 8월 28일
이노공 법무부 차관이 태국 방콕을 찾았다. 공식 이유는 법무부와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 태국 반부패청이 공동 주최한 ‘동남아 반부패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주된 목적은 따로 있었다. 이 차관은 태국 대검찰청에서 싱하차이 타니손 검찰총장을 만났는데 이 자리에서 김성태 전 회장 사안을 얘기하며 범죄인 인도 문제를 태국 검찰총장과 논의했다. 태국과 우리나라는 2001년 범죄인 인도 협약을 맺었지만 그동안 수사 공조가 아주 원활한 편은 아니었다. 때문에 법무부는 차관이 직접 찾아 ‘수사 협조’를 요청했다. 태국 측도 “수사에 잘 협조하겠다”고 답했다.
#김성태, 검찰 비웃듯 도피 중 생일파티
앞서 검찰은 김 전 회장 체포 영장을 발부 받아 여권 무효화 조치에 들어갔고, 인터폴에 적색 수배를 요청했다. 하지만 적색 수배가 돼도 김성태 전 회장이 한국 국적의 여권을 들고 공항이나 항만으로 이동하지 않으면 적발하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다. 김 전 회장은 위조 여권을 확보해 태국-베트남-필리핀-싱가포르 등을 자유롭게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 도피가 아니었다. 동남아 일대에서 머무르면서도 국내에 있는 고급 유흥업소 여성 종업원 등 지인들을 태국에 불러들여 파티를 하는 등 ‘호화 도피’를 했다. 당시 김 전 회장은 자신의 생일이라며 소속사 연예인(가수)과 업소 여성 등 평소 친분이 있던 이들을 불러 파티를 벌였다.
김 전 회장은 한국에 머무르지 않으면서도, 한국에 남아있는 측근들을 통해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했다. 사업도 하나씩 정리하며 검찰 수사에 대비했다. 2022년 9월 말에는 자신이 실소유한 주식회사 광림의 지분을 225억 원에 처분하며 ‘현금 확보’에도 성공했다. 쌍방울 계열사인 광림의 최대주주인 칼라일홀딩스 지분을 처분하는 계약이었는데, 이는 한국에 남아있는 최측근들이 김 전 회장의 지시를 받아 움직였다고 한다.
당시 거래 흐름에 정통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이 검찰 수사로 회사를 뺏기기 전에 현금화하는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거래대금 가운데 일부가 다시 김 전 회장에게 전달돼 도피자금이 됐다고 들었는데 그 규모가 30억~50억 원 정도”라고 설명했다.
#검거된 김 전 회장 “바로 귀국하려 한다”
현재 김 전 회장은 주변에 “바로 귀국하려 한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 법원에 소송 등을 제기할 가능성도 거론됐지만, 이미 검거된 이상 국내에 귀국해 검찰 수사에 협조하며 ‘거래’를 시도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선 자본 시장 관계자는 “일단 ‘바로 귀국해서 수사를 받겠다’는 입장이라고 들었다”며 “워낙 화통한 스타일이기 때문에 검찰이 수사 방향과 범위를 어느 정도 조율해주면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가능성도 높다”고 귀띔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