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비 대납 의혹과 대북송금 의혹 핵심 인물…검찰과 ‘딜’ 하고 입 열 경우 수사 분위기 급변
법조계는 앞으로 일주일을 주목하고 있다. 김성태 전 회장이 동남아 일대에 머무르면서도 검찰에 플리바게닝(검찰의 처벌 범위를 줄이는 대신 수사에 협조하기로 하는 약속)을 시도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김 전 회장이 태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기 위한 범죄인 인도 과정을 밟는 동안 검찰과 ‘딜’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딜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경우, 상황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더 불리하게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미진했던 수사 ‘퍼즐’ 맞추게 될까
쌍방울그룹 관련 수사를 담당한 곳은 수원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김영두). 그동안 수사는 다소 미진한 감이 없지 않았다.
쌍방울그룹에 처음 제기된 의혹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기도지사 재직 당시인 2018~2021년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을 받을 때 변호사 비용을 쌍방울 측이 대신 내줬다는 의혹이었다. 쌍방울그룹 계열사의 전환사채(CB)를 변호사 수임료로 대납했다는 것. 시민단체가 2021년 10월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를 고발하면서 수사는 시작됐다.
그리고 2022년 2월 검찰은 금융정보분석원(FIU)으로부터 수상한 자금거래 내역 흐름을 발견했다는 분석을 확보해 쌍방울그룹 전반에 대한 강제수사를 시작했다. 쌍방울그룹이 계열사 간 CB 발행, 자금 돌려쓰기 등의 방법으로 ‘문어발 사업 확장’을 한 과정, 이 과정에서 김 전 회장이 어떻게 정치권에게 뒷돈을 챙겨줬는지가 수사 대상이 됐다.
하지만 의사결정의 핵심 인물인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과 양선길 현 쌍방울그룹 회장 등 핵심 인사들이 모두 해외로 도주하면서 더 이상의 실타래는 풀 수가 없었다. 이재명 대표 측에서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하는 상황에서 검찰은 김성태 전 회장의 진술 없이 수사 진척을 기대할 수 없었다.
결국 검찰은 새로운 의혹을 찾아내 수사를 확대했다. 이재명 대표가 경기도지사 시절, 당시 이화영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도움을 받아 중국 선양에서 북측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남북경협 사업을 조건으로 거액을 북측에 전달한 의혹을 찾아낸 것. 이를 호재 삼아 쌍방울그룹 계열사(광림)의 주가를 고의적으로 띄우고, 차익을 실현한 것도 확인했다.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에 대한 뇌물 제공 혐의 등으로 검찰은 쌍방울그룹 관계자들과 이 전 부지사를 기소했다.
하지만 역시 결정적인 지점에서 김성태 전 회장이 필요했다. 앞서 구속 기소된 이화영 씨 등 관련자들도 관련 혐의를 부인하는 상황에서 돈을 건넨 측인 김 전 회장의 진술이 검찰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했다.
#'회사 지킬 수 있다면…' 수사 협조 가능성
1월 10일 오후 7시 50분(한국시각) 즈음, 이재명 대표가 검찰 소환 조사를 받고 있던 때 김성태 전 회장이 태국에서 검거됐다.
지금까지 분위기를 놓고 보면 ‘수사 협조 가능성’이 높다. 김 전 회장은 전부터 ‘회사를 지킬 수 있다면 검찰 수사에 일부 응할 생각이 있다’는 취지로 주변에 얘기를 하고 다녔던 상황이다. 특히 검거된 뒤에도 “바로 귀국해 검찰 수사에 응하겠다”는 취지로 얘기했다고 한다.
김 전 회장을 잘 아는 자본시장 관계자는 “지금 김 전 회장은 검찰 수사에 응하겠다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라며 “아직까지는 송환에 대해 거부감이 없고, 소송을 하는 등 시간을 억지로 끌지 않고 쿨하게 한국으로 돌아와 수사를 받아보겠다는 게 김 전 회장 입장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범죄인 인도에 동의한다 해도 절차는 비교적 복잡해 빨라도 3~4일, 늦으면 일주일 이상 걸린다. 이 과정 동안 검찰과 김성태 전 회장 사이의 ‘대화’를 법조계는 주목하고 있다. 김 전 회장 역시 태국 등에서 머무르면서도 검찰의 수사 흐름과 진행 상황을 모두 보고 받던 상황이다. 최근까지도 “검찰이 전방위적으로 쌍방울그룹을 털고 있다. 수사 범위를 줄여줘서 한두 곳의 회사라도 살릴 수 있다면 들어가서 수사에 응할 생각이 있다”는 취지로 최측근들과 회의를 했다고 한다.
검찰 역시 국내 송환에 성공하려면, 김 전 회장과의 ‘딜’이 필요하다. 뇌물 공여자에 해당하는 김 전 회장으로부터 ‘대가를 바라고 준 것’이라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해야 한다. 김 전 회장이 만일 국내 송환을 거부하고 현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면, 검찰 수사는 차질이 불가피하다. 아직 그런 입장을 내비치지 않았지만 소송 제기 시 적어도 6개월, 길면 2년은 버틸 수 있다. 2022년 지난해 12월 태국에서 검거된 김 전 회장의 매제이자 금고지기도 송환 거부 소송을 제기해 지금까지 태국 현지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김 전 회장 의혹 5분의 1도 안 드러나"
김 전 회장 검거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눈 검찰의 수사가 더 예리해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성남 FC 후원금 사건 관련 이 대표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당초 검찰 안팎에서는 ‘다른 사안들에 비해 혐의가 가볍다. 영장 가능성은 반반’이라는 게 중론이었던 사건이 성남 FC 사건인데, 조금씩 영장 청구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기업 및 구단 관계자들로부터 “성남시가 후원금을 요청했다”는 취지의 진술과 정진상 실장과의 만남을 정리한 기업 내부 자료 등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3자 뇌물죄로, 직접 뇌물을 수수한 것은 아니지만 금액이 170억 원에 달하는 등 혐의가 가볍지 않다는 관측이다. 이재명 대표가 한 차례 소환에 불응하고, 검찰에 출석해서도 계속 혐의를 부인한 점 등은 영장 청구 필요성의 근거로 거론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검찰 관계자는 “수뇌부가 판단할 몫이지만, 지금은 영장을 청구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노웅래 민주당 의원 체포동의안 때처럼 공개적으로 이재명 대표의 혐의와 증거를 언급하는 게 필요한 상황”이라며 “이번 체포동의안이 부결되더라도 대장동 사건, 또 변호사비 대납 의혹처럼 이어질 사건들을 위해 민주당의 방탄국회가 여론의 지탄을 받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사건 혐의의 경중도 중요하지만, 민주당 내 분위기와 여론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의 ‘입’을 주목하고 있다. 자본시장 다른 관계자는 “김 전 회장 관련 언론에 공개된 의혹들은 김 전 회장과 정치권의 관계 가운데 5분의 1도 드러나지 않은 것”이라며 “검찰이 김 전 회장으로부터 수사 협조 결정을 받아낸다면 이재명 대표 및 대북 송금 관련 수사는 8부, 9부 능선을 넘은 셈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