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13일 방송되는 KBS '자연의 철학자들' 42회는 '도시숲, 멈춰 서면' 편으로 사려 깊은 관찰을 통해 자연에 다가가는 도시숲의 다정한 새 관찰자 이우만 세밀화가의 '멈춤의 철학'을 만난다.
서울특별시 강서구 도심 속에 위치한 작은 산, 봉제산. 그곳을 찾아오는 새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종일을 보내는 이가 있다. 도시숲의 다정한 새 관찰자 이우만 씨(51)다. 우만 씨의 주요 관찰 장소는 섬이나 호수가 아닌 '도시'다.
도심 속 골목길 작은 나무에서 열매를 쪼아 먹는 새를 보며 출근하고 매일 뒷산을 걸으며 둥지를 살핀다. 시시때때로 창문 너머로 지나가는 새들의 안녕을 확인하고 기록하는 것이 그의 소중한 일상이다.
예술의 소재를 찾다가 새를 발견하고 관찰하기 시작한 경우는 아니다. 우연한 기회를 통해 여러 자연을 찾아가 볼 상황들이 그에게 주어졌고 어느 날 선물처럼 눈앞에 찾아온 새에게 자연스레 스며들고 매료됐다.
그렇게 새를 본격적으로 관찰하기 시작하면서 우만 씨는 그가 만난 새를 잘 표현해 전달할 수단이 필요했고 그 수단이 그에게는 '그림'이었다. 새를 만나기 전부터 그의 정체성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기에 새를 가장 편하고 자유롭게 잘 표현할 방법 또한 단연 그림이었다.
그는 최대한 자신이 만난 새를 왜곡 없이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렇게 표현하려 노력하다 보니 어느새 '세밀화가'라는 호칭까지 붙었다. 누군가에겐 조용하고 심심할 새를 만나는 시간이 그에게는 늘 설렘이고 행복이다.
새를 관찰하기 시작한 후 다양한 새를 보기 위해 전국을 누빈 이우만 씨. 희귀한 새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리면 어디든 달려갔다. 그렇게 마주한 새의 숫자는 계속해서 늘었지만 숫자가 늘면 늘수록 오히려 떳떳할 수 없었단다. 본 개체 수만 늘어났을 뿐 정작 깊이 아는 새는 별로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이후 새를 더 자주 만나는 것에 초점을 맞춰보자는 생각으로 도시숲 근처로 이사를 와 깨달았다. 도시숲 '뒷산'의 생태가 그가 그렇게 찾아다니던 '섬'과 많이 닮았다는 것을 말이다. 새들이 살기 위해 많은 나무와 드넓은 숲이 필요할 것 같지만 사실 새들은 배를 채울 소박한 먹이와 자기 몸을 숨기고 쉬어갈 작은 공간만 있다면 도시에서도 충분히 함께 살 수 있다.
별 것 아닌듯한 도시 속 작은 산과 녹지공간은 내륙을 통과하는 철새들에겐 숨을 돌릴 징검다리 휴식처가 되고 도시에 사는 새들에게는 귀중한 안식처가 된단다.
주변에 있는 뒷산과 놀이터에 찾아오는 새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안부를 묻는 것이 이제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 같다는 우만 씨. 그것이 그가 전국 여러 곳을 돌아다니기보다 도시숲의 새들에게 집중하고 매일 뒷산에 올라 새들을 기다리는 이유다.
이우만 씨의 작업실 문을 나서면 바로 봉제산 산책로가 시작된다. 집에서 작업실로 오는 길에 산을 둘러보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다가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면 즉흥적으로 가볍게 산책을 나서기도 한단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새를 관찰하기 가장 좋은 시간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는 점심시간이다.
인적이 드물어 주변 소음이 적어지는 점심시간에는 산이 자연스레 조용해져 새를 만나기 좋다. 우만 씨가 뒷산을 찾는 사람 중 가장 느리게 걷고 자주 멈추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빠른 걸음으로 걷다 보면 새들의 소리나 움직임을 알아채기 힘들 뿐 아니라 본의 아니게 새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고. 그는 되도록 새들의 일상을 방해하지 않으려 애쓴다.
멈춰 서서 귀를 기울이면 들을 수 있고 고개를 들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그는 말한다. 아주 가까이에서 꾀꼬리와 파랑새가 노래하고 다양한 산새들이 먹이활동을 하고 있는데,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우만 씨는 아쉽기만 하다. 새들이 전해주는 자연이 전해주는 생명력과 풍요로움을 먼저 맛본 그는 이웃에게도 '가만히 서서 주위를 둘러보라'고 권한다.
아파트 단지 주변엔 감나무가 많다.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에 심다 보니 새들은 그 열매를 먹기 위해 도심으로 찾아온다. 그때부터 감나무는 이우만 씨에게 단순한 감나무가 아닌 새를 만나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가 된다. 그것이 그가 강조하는 '관계 맺기' 관찰이다. 대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리게 되는 그림은 살아있다.
사진만 보고 형태만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보고 경험하여 그림에 생생하게 담아낼 때 진짜 생명력이 고스란히 전달된다고 그는 믿는다.
이우만 씨는 자연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법을 후대에 알려주는 것. 그것이 새들을 위한 것이자 인간을 위한, 모든 생명이 공생하는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새가 편안하고 활기찬 모습을 보면 자신도 행복하다고 하는 새를 아끼는 화가 이우만 씨.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일 새들의 안부를 묻고 새에 대한 걱정을 껴안고 살면서도 아직 새를 사랑한다고 말하기엔 부족하다고 말하는 사람. 새를 향한 그의 다정한 관찰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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