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녀 강도살인에다 택시기사 ‘강도·보복살인’ 기소…위조 아파트 매매계약서 담보로 부친에 돈 빌려
그렇지만 살인과 강도살인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수사가 다소 난항을 겪었다. 우선 전 동거녀 살인사건에선 시체와 흉기 등 결정적인 증거를 수사기관이 확보하지 못해 시신 없는 살인사건이 될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택시기사 살인사건에선 음주운전 전과 4범으로 실형까지 살았던 이기영이 음주운전 발각 또는 신고를 우려해 살인했다는 동기가 확실해 강도살인 혐의의 입증이 어려울 수 있다.
그렇지만 결국 검찰은 추가 수사를 통해 보다 강력한 혐의로 이기영을 기소했다. 1월 19일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전담수사팀은 이기영을 강도살인,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상 보복살인, 사체 유기, 사체 은닉, 절도, 사기 및 여신전문금융법 위반, 정보통신망법 위반, 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농약’ ‘폰 잠금해제’ 검색, 계획적 살인 증거로
우선 전 동거녀 살인사건에 ‘강도살인’ 혐의가 적용됐다. 이기영은 2022년 8월 3일 오후 경기 파주시 주거지에서 동거녀 A 씨(50)의 머리를 둔기로 10여 차례 내리쳐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시신을 파주시 공릉천변 일대에 유기해 사체유기 혐의도 적용됐다.
검찰은 살해 동기를 휴대전화와 신용카드 등을 빼앗을 목적으로 봐 강도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이기영은 둔기를 집어던졌는데 동거녀가 사망한 우발적인 사건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경찰은 이기영의 주장을 근거로 ‘살인’ 혐의만 적용했는데 검찰은 휴대전화와 신용카드 등을 빼앗을 목적의 ‘강도살인’으로 봤다.
결정적인 배경은 추가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새로운 증거들이다. 우선 이기영이 범행을 앞두고 ‘먹으면 죽는 농약’ 등의 독극물 관련 내용을 인터넷에서 검색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검찰은 우발적인 살인이 아닌 계획적인 살인으로 봤다. 다만 농약 등 독극물을 실제로 구입하진 않았다.
또한 ‘휴대전화 잠금해제 방법’ 등을 검색했다는 점은 금전적 목적으로 한 강도살인 혐의를 입증하는 증거가 됐다. 실제로 이기영은 전 동거녀 A 씨를 살해한 뒤 A 씨 휴대전화 유심(USIM)을 빼 자신의 휴대폰에 끼워 넣어 잠금해제를 시도하고, ATM(현금자동입출금기)으로 피해자 계좌 잔액을 인출했다. 게다가 이기영이 범행 직후 ‘파주 변사체, 공릉천 물 흐름’ 등을 검색한 사실도 드러났다.
또한 이기영이 거주하던 집에서 결정적인 증거인 비산흔을 발견됐다. 비산흔은 외부 충격으로 몸에 상처가 발생하면서 피가 튄 흔적을 의미한다. 최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경찰에 이기영 주거지인 아파트 벽면에 남은 비산흔이 동거녀 A 씨의 DNA와 일치한다는 감정 결과를 통보했다. 이기영은 ‘홧김에 자전거 장비를 던졌는데 퍽 맞아서 쓰러져 죽었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지만 비산흔이 이기영의 살인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인 범행 증거가 될 전망이다.
#음주운전 발각 우려 ‘보복살인’ 동기 분명
전 동거녀를 살해하고 4개월여 뒤인 2022년 12월 20일에는 이기영이 택시기사 B 씨(59)를 살해했다. 경찰은 이 사건에 강도살인 혐의를 적용했는데 검찰은 여기에 특가법상 보복살인 혐의를 추가했다.
음주운전 전과 4범으로 2019년 11월 적발된 네 번째 음주운전으로 징역 1년의 실형을 살고 출소한 이기영은 또 음주운전이 적발될 경우 실형이 불가피했다. 이에 택시기사의 신고로 음주운전이 발각되는 것을 우려해 살인했다는 동기가 분명히 존재한다.
검찰은 당시 이기영에게 숨진 택시기사에게 합의금과 차량 수리비를 줄 경제력이 없었는데 속여서 자신의 거주지로 데려와 살해했다는 점에서 특가법상 보복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이기영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점 등을 미뤄 돈을 빼앗겠다는 계획도 있었다고 봐 강도살인 혐의까지 적용됐다.
특가법 제5조의9에 보복살인이 규정돼 있는데 이 경우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형법상 살인 혐의(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보다 형이 더 무겁다.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는 강도살인(형법 제338조) 혐의보다는 형량이 낮은데 아무래도 검찰은 재판부가 강도살인 혐의를 유죄가 아니라고 판단할 상황에 대비해 특가법상 보복살인 혐의를 함께 적용해 기소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명의로 대출 받고 유가족까지 속여
이기영은 두 건의 살인사건을 저지른 뒤 피해자들의 휴대전화와 신분증, 신용카드 등을 통해 재산을 강탈했다. 경찰 수사 초기부터 이기영이 강탈한 피해자들의 재산 규모가 산발적으로 보도됐는데 이번 검찰 기소를 통해 피해 금액도 정리됐다.
우선 전 동거녀 A 씨 명의의 인터넷뱅킹에 접속해 36회에 걸쳐 3930만여 원을 자신의 계좌로 이체했고, A 씨 명의의 신용카드로 95회에 걸쳐 4193만여 원을 사용했다. 이후 택시기사 B 씨를 살해한 뒤에도 B 씨의 휴대전화와 신용카드 등으로 769만여 원을 사용했으며 4500만 원을 대출 받았다. 이렇게 이기영은 두 건의 살인사건을 저지른 뒤 두 피해자의 재산 1억 3392만여 원을 강탈했다. 이 부분에 검찰은 컴퓨터 등 사용사기와 사기 및 여신전문금융법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이외에도 편취 금액은 1000만 원이 더 있다. A 씨의 명의를 불법 활용한 범행이었는데 피해자는 이기영의 아버지다. A 씨 명의의 파주 아파트에 거주하던 이기영이 매매계약서를 위조해 이를 담보로 자신의 아버지에게 1000만 원을 빌린 것.
또한 2022년 3월 30일부터 5월 31일까지 코로나19 소상공인 방역지원금 1000만 원을 부정수령한 혐의도 함께 기소됐다. 이기영은 사업자등록만 하고 실제로 운영하지 않는 허위 사업체를 만들어 방역지원금을 수령했는데 이를 위해 허위의 매출 자료를 활용했다.
또한 이기영은 A 씨를 살해한 뒤 A 씨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이용해 지인 등에게 92차례에 걸쳐 메시지를 보냈으며, B 씨를 살해한 뒤에도 B 씨의 휴대전화로 마치 자신이 B 씨인 양 가족에게 132회에 걸쳐 메시지를 보냈다. 검찰은 이 부분에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피해자 예금 탕진한 뒤 아파트까지 노려
검찰 기소 과정에서 새롭게 추가된 혐의 가운데 하나인 사문서위조행사 혐의는 바로 앞서 언급된 이기영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1000만 원을 빌린 사안과 연관돼 있다.
이기영은 전 동거녀 A 씨의 예금을 모두 탕진하고 A 씨 명의 신용카드가 한도초과에 이르자 2022년 11월 자신이 거주하고 있던 A 씨 소유 아파트의 처분까지 시도했다. 이를 위해 매매계약서를 위조해 사문서위조행사 혐의가 추가됐다. 그렇지만 이 계획은 결국 실패했다. 대신 이기영은 위조한 매매계약서를 담보로 자신의 아버지에게 1000만 원을 빌렸다.
이기영은 경찰 수사 과정부터 자신의 범행이 부모나 가족에게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고 알려졌다. 이 때문에 신상정보 공개가 결정된 뒤에도 취재진 앞에서 극도로 얼굴 노출을 꺼렸다고 한다. 그런데 검찰 기소 과정에서 이기영의 아버지도 피해자로 알려져 눈길을 끌고 있다.
평소 이기영은 주변에 자신을 건물주 손자라고 소개하며 “우리 할아버지 돈 많다. 상속받을 예정이다. 아버지는 사업을 한다”고 재력을 과시하곤 했다. 그렇지만 이기영이 오랜 기간 생활고로 힘겨워했다고 알려져 이런 발언은 허세로 여겨졌다.
그렇지만 뉴스1 단독 보도에 따르면 이기영의 할아버지는 교육자 출신으로 실제 파주 일대 땅부자라고 한다. 꾸준히 부동산에 투자했는데 도시개발로 큰돈을 벌어 실제 건물 등을 소유한 재력가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어떤 이유 때문인지 이기영은 할아버지나 아버지로부터 별다른 재산을 물려받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려 왔다고 전해진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