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닥타닥’ 정겨운 화목난로로 불멍부터 밀키트 조리까지…눈 소리 들으며 잠드는 낭만도
물론 겨울에는 화장실 왔다갔다 하기도 다른 계절보단 좀 더 불편하고 씻기도 좀 더 번거롭고 밥 해먹기도 좀 귀찮다. 하지만 불편하고 귀찮은 것 다 치우면 겨울 주말엔 집에서 겨울잠만 자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고생스러울 것 같은 겨울 캠핑에 ‘매운 맛’만 있는 건 아니다. 텐트만 쳐도 일단 반 이상 왔다. 요즘엔 5분 안에 칠 수 있는 1~2인용 미니멀 텐트도 다양하고, 텐트계의 거실이라 불리는 ‘쉘터’도 빠르고 쉽게 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예전처럼 텐트 치는 데 한참을 애쓸 필요도 없다. 다만 텐트를 고정시키는 팩을 언 땅에 박아야 할 경우 팩이 잘 들어가지 않아 당황할 수도 있는데 ,그럴 땐 물을 끓여서 살짝 부어주면 한결 수월하다.
텐트나 장비가 없어서 캠핑을 못 떠난다는 핑계도 요즘 같은 세상엔 별로 통하지 않는다. 모든 장비가 미리 설치되어 있는 글램핑을 이용할 수도 있고, 최근 중고거래마켓에는 얼마 쓰지 않은 중고 캠핑장비도 많이 나와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한참 유행했던 캠핑은 방역이 완화되고 해외여행이 풀리자 캠퍼들이 대거 해외로 눈을 돌리면서 중고 장비도 넘쳐난다.
캠핑장비는 굳이 새것을 사지 않아도 중고마켓에서 사서 써보고, 다시 중고마켓에 팔면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더구나 겨울에는 장비가 간소해야 여러모로 에너지를 아낄 수 있으니 여름이나 가을처럼 ‘갬성’ 좇는다고 이것저것 다 구비할 필요도 없다. 또 인기 있던 캠핑 사이트도 요즘엔 코로나 시국보다 구하기 쉬워졌다. 물론 캠핑 인구가 절대적으로 줄어드는 겨울에는 대부분의 캠핑 사이트가 주말에도 늘 한가하긴 하다.
서론이 길었다. 겨울 캠핑을 춥지 않고 훈훈하게 보낼 수 있는 핵심은 사실 화목난로에 있다. 말하자면 화목난로는 겨울 캠핑의 주인공이자 꽃이다. 텐트나 쉘터 안에 장작을 때는 화목난로를 피우는데, 요즘엔 2인용 텐트에도 설치가 가능한 미니멀한 화목난로부터 캠핑뿐 아니라 단독주택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화목난로까지 규모와 목적에 따라 캠핑용 화목난로가 다양하다.
화목난로는 텐트 밖으로 연통을 연결해서 설치하는데, 텐트에 미리 연통 지름에 맞춘 구멍만 뚫어 놓으면 설치는 조립식으로 의외로 간단하다. 일단 화목난로를 설치하고 불만 피워 놓으면 내내 훈훈하고 아늑한 캠핑을 즐길 수 있다.
불 피우는 것도 사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화목난로 안에 장작과 함께 고체연료를 넣고 여름에 들고 다니는 미니 선풍기로 바람을 넣어주면 잘 붙는다. 단, 장작은 너무 수분기가 많거나 너무 바싹 마르지 않은 것이 좋다. 수분기가 많으면 불이 잘 붙지 않으면서 매운 연기를 내고, 너무 바싹 말라 있으면 불은 잘 붙지만 장작이 너무 빨리 타 버린다. 사람 살아가는 모양새와 다르지 않다.
장작을 피워 놓고 보니 문득 “광에 연탄만 가득 채워 놓아도 겨울 보낼 마음이 든든하다”던 어릴 적 엄마의 말이 떠오른다. 텐트 안에 화목난로 하나 피워 놓으니 1박 2일 텐트에서 겨울 하룻밤 나야 하는 마음이 한결 든든해진다.
모닥불 하나에 의지하는 저녁, 한 살을 더 먹고 보니 “타닥타닥” 장작 타들어가는 소리가 유난히 더 정겹다. 이 또한 어릴 적 외갓집 놀러 가 듣던 아궁이의 소리 아니었던가. 무언가 곱씹을 일도 추억 할 일도 점점 더 많아진다. 한참 난로 안의 장작 타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눈은 아득해지고 머릿속에 가득 찼던 무용의 공상과 잡념들도 장작과 함께 타버리고 만다. 무심히 불티만 남기고 사그라지는 장작 위에 다시 나무를 포개어 얹는다. 다시 애써 돌이켜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깊은 명상에 잠긴 사이에도 어김없이 ‘꼬르륵’ 배꼽시계가 울린다. 솔직히 겨울캠핑에선 손에 물 한 방울 묻히고 싶지 않다. 불편한 낭만을 좇아 온 캠핑이지만 문명의 이기를 실컷 활용해볼까. 집에서 재료를 다듬어 오는 게 귀찮다면 밀키트가 신의 한수다.
안주로 좋은 스테이크, 감바스 같은 서양식부터 뜨끈한 국물이 제격인 오뎅탕, 알탕, 부대찌개도 좋다. 삽겹살 밀키트에는 곁들일 야채까지 골고루 들어있다. 없는 메뉴를 찾는 게 더 어려운 요즘의 밀키트 시장이다. 캠핑 오기 전날 밤 앱(애플리케이션)으로 주문해 새벽에 문 앞에 와 있던 밀키트를 아이스박스 포장채로 ‘업어온’ 참이다. 밀키트는 겨울 캠핑을 한결 수월하고 간편하게 한다. 1회용품을 쓰는 건 마음에 좀 걸리지만 집에서 배달음식을 시켜 먹을 때 보다는 죄책감이 덜하다.
반 야생의 저녁식사를 위해선 냄비와 프라이팬만 준비하면 된다. 화목난로는 시골 아궁이처럼 난방 역할을 하면서도 조리용 불 역할도 훌륭히 해낸다. 화목난로 위에 프라이팬을 얹고 스테이크나 삽겹살을 굽고, 옆에선 오뎅탕을 끊인다. 옛날 다방처럼 물 한 주전자 올려놓으면 밤새 가습기 역할을 거뜬히 하고 뜨끈한 물과 차를 내내 마실 수 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불멍’과 함께 ‘텐트 이자카야’를 즐기다 보니 졸음이 밀려온다. 난로와 간격을 띄운 후 매트를 깔고 그 위에 애벌레 모양의 두툼한 동계용 침낭을 깔고 캡슐 속으로 들어가듯 각자의 침구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화목난로 덕분에 밤새 훈훈한 공기로 전혀 춥지 않았지만 그래도 추위가 걱정이라면 침낭 안에 핫팩이나 뜨거운 물을 담은 실리콘 자루를 넣고 자면 한결 더 뜨끈한 잠자리가 된다. 전기를 쓸 수 있는 캠핑장에선 매트 위에 전기장판을 깔기도 한다.
밤이 되자 운 좋게도 소복소복 눈이 내린다. 눈 내리는 소리를 제대로 듣고 싶다면 겨울 캠핑을 떠나보라. 캠퍼들이 북적이지 않는 고요한 자연 속 텐트 위로 떨어지는 눈 소리가 정말로 ‘소복소복’하고 들린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