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승인 시 가족관계 확인 안해…저리 전세대출 받아 사업자금 등으로 유용하는 사례 적잖아
이에 대해 은행 관계자는 “은행 등의 대출기관에서는 굳이 당사자가 말하지 않는다면 집주인과 세입자가 부모와 자녀 관계임을 알 길이 없어 대출이 실행되는 상황”이라며 “혼인신고 전 상대방 부모와 전세계약을 하는 경우라면 금융기관에서는 더더욱 임대인과 임차인이 부모 자식 관계라는 관계성을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보통 한 세대가 거주하는 아파트의 경우는 이런 대출이 불가능하지만 여러 세대 거주가 가능한 단독주택이나 다세대 주택의 경우에는 이런 일이 쉽게 일어날 수 있다. 실제로 한 세대만 거주가 가능한 단독주택 구조라 하더라도 대출 시 실사까지 나오지는 않기 때문에 공간의 일부를 따로 전세를 주는 식으로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이 부동산 관계자의 설명이다.
혹은 애초에 부모 집의 전세보증금을 높게 올려놓고 은행에서 저리로 전세대출을 받은 뒤 전세보증금을 일부 치르고 남는 자금은 자녀에게 돌려주어 다른 곳에 활용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애초에 부모 집으로 들어가 함께 살기로 결정한 신혼부부가 전세대출을 받아 사업자금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창업을 준비 중인 B 씨는 결혼과 함께 출산을 앞두고 있어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 함께 살 계획이었는데 사업 자금이 모자라 집 주인이 부모임을 숨기고 전세를 사는 것처럼 꾸며 전세대출을 받아 사업자금으로 썼다.
위장 전세대출을 받기 위해 친척집 등이 이용되기도 한다. 지방에서 대학을 마치고 서울로 취직한 C 씨는 단독주택인 친척집을 이용해 은행에서 2억 원의 전세대출을 받은 뒤 친척으로부터 그 돈을 다시 돌려받고 실제로는 회사 근처에 회사 명의로 월세를 얻어 살았다. B 씨는 전세대출로 받은 자금을 투자에 활용했다.
현재 시중은행에서는 청년이나 신혼부부에게 평균보다 저렴한 이자로 전세대출을 해주고 있다. 5대 은행 중 하나인 S 은행의 경우 만 19세~34세 이하 무주택 청년 세대주에게 임차보증금의 90% 범위 내에서 10억 원까지 대출해 주고 있다. 보통 청년전세대출이나 신혼부부를 위한 전세대출은 청년층과 신혼부부의 주거 안정을 위해 국가에서 은행 등 금융기관에 금리를 지원해 주는 상품이 많아 일반 대출에 비해 한도는 높고 금리는 낮은 편이다.
2021년 IMF는 한국 전세제도가 금융시스템에 위험을 줄 수 있다는 경고를 한 바 있다. 전세자금 대출이 다른 용도로 쓰여 대출금 상환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세입자가 전세자금 대출을 다른 곳에 쓰게 되면 전세보증금이 보존되지 못할 가능성이 생기고 연체가 연속적으로 발생하면 금융시스템에 위기까지 올 수 있다는 경고였다. 하지만 업계에선 “IMF가 한국의 전세제도를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은행 관계자에 따르면 이런 꼼수는 오래전부터 지속돼 왔다. 특히 청년층과 신혼부부의 경우 저리로 전세대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집주인인 부모가 대출자금을 받아 다시 자녀에게 돌려주는 방식으로 자금을 유용하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고 했다. 혹은 이미 세대 분리한 자녀가 단독주택에 사는 부모 집에 위장전입 하는 방식으로 전세대출을 받아 집주인인 부모가 이 자금을 이용할 수도 있다. 은행에서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기도 하고, 진짜 모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자녀가 부모 집에 세입자로 들어가는 상황에서의 전세대출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부모뿐 아니라 형제자매 등 가족 명의로 된 집에 세입자로 들어갈 때도 전세대출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임대인과 임차인이 부모 자식이나 형제 관계임을 의도적으로 숨긴다면 이를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
시중은행 대출 관계자는 “혼인 전 단독주택에 사는 시부모나 처가에 전세로 들어가게 된다면 전세대출을 해주는 은행 입장에서는 이를 걸러낼 수 있는 방법이 딱히 없다”며 “2년 뒤 계약 갱신을 할 때 걸러낼 수도 있겠지만 부모와 자녀가 의도적으로 이를 숨기고자 한다면 그냥 넘어가는 수가 많다”고 말했다.
은행에서 전세대출을 해줄 때 신혼부부의 가족관계증명서를 모두 확인한다면 양가의 부모 집으로 전세를 들어가며 전세대출을 실행하는 경우를 걸러낼 수 있지만, 현재 전세대출 과정에선 가족관계증명은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가족관계증명을 확인하기 전까지 현재로선 막을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