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수준 선수들이 각자 기량을 겨루는 유럽리그는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박진감이 넘친다. 매순간 흥분과 긴장감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가끔은 도를 넘는 태클이 나오기도 하고 고의성 있는 반칙도 보인다. 정말 두 선수가 운동장에서 격투를 벌이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든다. 그럼에도 선수들은 결국 룰을 지키면서 90분간의 사투를 마감한다.
경기가 끝나면 예외 없이 양 팀 선수들은 서로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한다. 등을 쓰다듬으면서 동지애, 동업자 정신을 아낌없이 표현한다. 양 팀 선수들끼리만 이런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 아니다. 심판, 양 팀 스태프에게까지 선수들은 포옹과 격려, 존경을 진심으로 표현한다.
방금 전까지 그라운드에서 사투를 벌였던 선수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서로서로에 대한 애정과 존중은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경기장에서 직접 경기를 보는 사람이나 TV를 통해 경기를 시청하는 수억 명의 시청자에게도 충분히 감동을 느끼게 해준다. 축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게 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친구가 있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그 친구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조언이었다.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와이프하고 가벼운 입맞춤을 해. 출퇴근하는 시간이나 아니면 식탁에서 식사 전에 해봐. 제일 좋은 건 말이야. 가족여행 가는 차안에서 차가 신호에 걸려 잠시 멈추었을 때 뒷자리에 있는 아이들이 볼 수 있게 아내와 입맞춤을 하는 거야.”
난 “애들 앞에서 민망하게 무슨 입맞춤을 해”라며 마뜩찮게 대답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가족 여행을 가는 중 친구 말이 생각났다. 신호 정지 중에 아내에게 “사랑해요”라고 말하며 볼에 입맞춤을 했다.
순간 뒷자리에 있던 딸들이 “오호, 파이팅”이라며 환호를 해줬다. 정신과 의사의 말은 아빠랑 엄마랑 사이가 좋다는 걸 딸들이 인지하는 순간 자녀들은 더할 나위 없는 안도감과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가끔 아내와 입맞춤을 하지만 이젠 딸들은 그냥 그러나 보다하고 더 이상 환호를 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딸들이 아빠와 엄마의 관계를 불안해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요즘 뉴스에 대정부질문을 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이 장관이나 총리를 상대로 국정현안에 대한 질의응답을 이어간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너무나 불안하다. 그리고 두렵고 무섭다. 걱정도 된다. 그들에게 동료의식, 동지애, 동업자 정신은 찾아보려 해도 찾아볼 수가 없다.
여야 의원이 청문회를 하거나 상임위원회를 열어 질의, 응답이나 토론을 할 때에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무섭고 두렵고 걱정된다. 물론 현안을 두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거나 정책 방향, 제도 개선 등에 대해 서로 논리를 앞세워 추궁하고 설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이 쏟아내는 언어엔 상대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 인정이 보이지 않는다. 분노와 저주의 언어만 난무한다. 정말 앞으로 전혀 안 볼 사람들처럼 보인다. “저들은 동업자가 맞나, 서로 동료라고는 생각하고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는다.
언어는 사람의 의식을 지배한다고 한다. 그리고 정치인이라면, 리더라면 정제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인과 유튜버의 언어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안타까운 국민이다. 광화문에서 모인 사람들과 서초동에서 모인 사람들로 나라가 두 동강이 나는 현상을 지켜봤다. 남북으로 분단된 것도 모자라서 광화문, 서초동으로 끼리끼리 우리 편 아니면 적이 되는 상황을 지켜봤다.
경기가 좋지 않다. 금리는 오르고 무역수지 적자는 역대급이라고 한다. 정치인과 정책 결정권자는 이 험난한 시기에 우리가 믿고 의지해야 대상이다. 그들이 국민들 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열정과 더불어 서로를 존중하고 격려하는 따뜻한 포옹을 보여줘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제발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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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