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준석계’ 전원 컷오프 통과 ‘친윤계’는 현역 3인 탈락…‘이준석 한계’에 갇힐 경우 향후 정치행보 걸림돌
당초 정치권에서는 3·8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윤석열 대통령과 이준석 전 대표 대리전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용산 대통령실이 김기현 당대표 후보를 중심으로 ‘친윤계’ 후보들을 사실상 ‘낙점’하자 이준석 전 대표도 침묵을 깨고 나와 친이준석계 후보들의 지원사격에 나서면서다.
1차전은 이 전 대표 완승으로 끝난 분위기다. 2월 10일 발표된 컷오프(예비경선)에서 당대표에 출마한 천하람 후보, 최고위원 김용태 허은아 후보, 청년최고위원 이기인 후보 등 친이준석계로 분류되는 후보들은 모두 본경선에 진출했다. 반면 최고위원 도전장을 냈던 박성중 이만희 이용 등 친윤계 현역의원 3명은 고배를 마셨다.
친이준석계 후보들의 선전엔 이준석 전 대표 역할이 컸다는 게 정가의 중론이다. 2022년 10월 당대표직 상실 이후 잠행을 이어오던 이 전 대표는 전당대회 과정에서 친이준석계 후보들의 후원회장을 자처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재개했다.
소셜미디어(SNS)에 다시 활발히 글을 올리고 방송 출연 빈도를 높이며 친이준석계 후보들을 알렸다. 당권에 도전할 것으로 전망됐던 나경원 유승민 전 의원이 대통령실과 ‘윤핵관’ 압박에 불출마를 선언하며 갈 곳 잃은 ‘비윤’ 표심이 이준석 전 대표를 중심으로 결집됐다. 그 결과 친이준석계 후보들이 모두 컷오프에서 살아남았다. 이 전 대표는 친이준석계 후보 전원이 본선에 진출한 결과에 대해 2월 10일 “이제 오늘부터 꿈은 이루어진다”고 소감을 밝혔다.
여권 한 관계자는 “친이준석계 후보 면면을 보면 일반 당원들에 인지도가 높은 편은 아니다. 천하람 변호사가 이준석 전 대표 후광이 없었다면 당대표 선거에 도전할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느냐”며 “이준석 전 대표라는 구심점이 있었기에 후보들이 비윤과 2030세대 당원들의 주목을 받고 표를 끌어 모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청년 정치인은 “이준석 전 대표의 ‘빅 스피커’ 능력을 다시금 확인했다. 어떻게 이슈를 만들고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키는지를 알고 있다. 친이준석계 후보들은 그 덕을 톡톡히 봤다”며 “민주당에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저런 이슈를 만들어내고 동료 청년들을 이끌 수 있는 젊은 정치인이 없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준석 전 대표 홍보 전략이 후보들에게 도움이 되겠느냐는 의문이 나온다. 이 전 대표가 본인의 ‘선거 전문가’로서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후보들을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천하람 후보는 2월 7일 열린 전당대회 비전발표회에서 정견발표를 하며 ‘대통령공천 불개입’ ‘공천자격고사 의무화’가 적힌 족자를 펼쳐 보이며 정책공약을 설명했다. 허은아 후보도 ‘대변인단 공개선발’ ‘정치발언 자유보장’이 적힌 족자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시킨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 전 대표는 “시킨다고 할 사람이 아니다. 아이디어 제공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전했다. 두 후보 측도 정책토론 과정에서 족자 공약 아이디어를 공유했다고 설명했다.
친이준석계 네 후보는 2월 10일 컷오프 발표 이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개혁을 위한 당원들의 열망, 우리가 이어가겠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감사인사와 지지를 호소했다. 또한 후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춤을 추는 ‘천아용인편 응원 홍보 영상’을 만들기도 했다. 특히 이 영상은 준비과정부터 결과물까지 이 전 대표 SNS를 통해 전해졌다. 정치권에선 이러한 기획이 모두 이 전 대표 작품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윤석열 대선 캠프에서 활동했던 국민의힘 한 관계자 말이다.
“최근 '이준석계' 후보들을 보면 이준석 전 대표가 홍보를 총지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방법들이 지난 대선에서 이준석 전 대표가 윤석열 당시 후보에게 제안했던 비단주머니 등 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선 당시에도 윤석열 후보 홍보 방법을 두고 당내에서 논란이 많았다. 윤 후보를 알리는 데 효과적이지 않고, 오히려 이 전 대표만 더 돋보인다는 지적이었다. 결국 이 전 대표와 윤 후보 사이에 갈등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현재 친이준석계 후보들은 이 전 대표의 인지도에 업혀 가다보니 불만을 갖긴 힘들다. 하지만 고민은 많을 것이다.”
후보들의 향후 정치행보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앞서 민주당 청년정치인은 “이준석 전 대표는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세대·남녀 갈라치기, 분열의 정치로 한계점을 명확히 보여줬다. ‘이준석계’ 후보들이 대중 정치인으로 성과를 내려면 통합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이준석 전 대표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실제 천하람 후보의 경우 ‘이준석의 부산물’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지 않느냐.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지분을 챙기지는 못할망정, 이 전 대표와 한 두름으로 묶이는 상황”이라고 했다.
천하람 후보는 이준석 전 대표가 본인의 SNS에 올린 천 후보 지지 홍보물로 인해 ‘성적 비하’ 논란에 휩싸였다. 이 전 대표는 2월 8일 “가즈아 이제 시작”이라며 ‘천하람, 찍어야, 자유로운 정치발언, 지킵니다’라는 구호가 적힌 천 후보 선거운동 포스터를 공개했다. 이 전 대표가 공개한 포스터는 총 3장이었는데, 첫 장은 ‘천’ ‘찍’ ‘자’ ‘지’ 폰트만 붉은색으로 처리했고, 2번째와 3번째 포스터는 포스터 제목이 ‘천찍자지’로 기재돼 있다. 남성의 성기를 표현하는 속어가 포스터 슬로건에 담긴 것.
문제가 심각해지자 천 후보는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다. 2월 13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2017년 대선 때 홍준표 당시 대선후보가 공식 홍보자료로 썼던 것인데, 그렇게까지 큰 문제가 되겠느냐 생각했던 것 아닌가 싶다”며 “더 신경 쓰면서 선거를 진행하겠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준석 전 대표는 해당 포스터가 올라온 SNS 게시물을 삭제하지 않고 있다.
이 전 대표의 정치적 재기를 위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우려에 대해 친이준석계 후보 측은 일축하고 있다. 천 후보 측 관계자는 “천 후보와 이 전 대표는 정치적 뜻이 같기 때문에 함께하는 것”이라며 “앞서 지적이 있지만 그것을 돌파하는 것도 후보의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허 후보 측 관계자는 “인지도 높고 영향력 큰 후보들이 모인 것이 아니다. 가치를 공유하고 소신 있는 사람들이 연대하는 과정”이라며 “그러한 우려는 친이준석계가 힘을 모으는 것을 두려워한 반대 진영 사람들이 호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용태 후보 역시 “이준석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서 내가 컷오프를 통과했다는 견해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며 “후보 각자가 당원 호응도나 인지도 측면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나를 선택해주신 당원들은 내가 가진 비전과 지난 지도부 최고위원으로서 행보에 대해 전반적인 평가를 내려주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