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 합병 대비한 ‘숫자 맞추기’ 분석…4년 만의 배당과 자회사 수혈도 인수합병 행보 추측
#대한항공, 마일리지 개편 무리수 둔 이유
대한항공이 최근 마일리지 공제 기준을 ‘지역’에서 ‘운항 거리’로 바꾸겠다는 내용의 스카이패스 제도 개편안을 내놓으면서 질타를 받았다. 운항 거리가 긴 장거리 노선 중심으로 마일리지 공제율을 높이는 바람에 소비자 혜택이 축소됐다는 불만이 나왔기 때문이다. 마일리지로 이용할 수 있는 좌석 수는 늘리지 않았다는 점도 비난을 가중시켰다. 소비자들의 민원이 빗발치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나서 압박하자 대한항공은 마일리지 개편안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런데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낸 상황에서 비용 절감을 위한 개편안을 내놓았다는 점은 의외라는 분석이다. 윤문길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경영이 굉장히 어려운 시점도 아니고 거꾸로 고객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이벤트를 해도 모자랄 판이다. 인수합병과 관련해 시장에서 독점 문제를 우려하는 타이밍에 오해를 자초했다”고 말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 또한 “결합 심사 승인이 나면 자연스럽게 아시아나와 마일리지를 통합하면서 전체적인 개편안을 내면 되는데 왜 이렇게 성급했는지 의아하다. 너무나도 강한 자신감을 보여준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개편 취지에 대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마일리지 제도를 20년간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마일리지 개편이 부채비율 개선을 위한 조치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마일리지는 회계 장부상 ‘이연수익’이라는 이름의 부채로 인식된다. 고객에게 항공권을 제공해줄 때 청산되는 빚이므로 항공사 입장에서는 마일리지 소모를 촉진할수록 전체 부채 규모 줄이는 효과가 크다. 대한항공의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은 8392억 원인데 마일리지 부채는 2조 6830억 원이다. 그렇다보니 대한항공 3분기 부채 비율은 258% 수준이다.
특히나 인수합병 앞두고 재무구조 개선이 중요한 숙제로 꼽히기 때문에 이번에 무리수를 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인수 대상 기업인 아시아나의 부채비율이 보통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시아나 역시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낸 것으로 잠정 실적을 공시했으나 지난해 3분기 연결재무제표 기준 부채 비율이 1만 928%까지 치솟았던 점을 고려하면 합병이 성사될 경우 대한항공이 만만찮은 부담을 지게 될 상황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아시아나가 자본금이 7000억 원인데 부채가 12조 원이다. 대한항공이 합병하면 부채비율이 합병회사 기준으로도 크게 오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와중에 대한항공은 중장기 배당정책을 발표했다. 대한항공은 3년간 당기순이익의 30% 이내에서 주주에게 환원하는 배당정책을 유지할 계획이며 여력이 생기면 배당 상향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2018년 이후 4년 만의 배당인 데다 배당금은 약 2701억 원 규모로 역대 최대 규모다. 합병을 앞두고 곳간을 채워야 할 시점에 주주 달래기에 나선 셈이다. 이윤철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규제 기관의 허가 여부가 인수합병의 관건인 만큼 대한항공이 경영에 대한 낙관적인 자신감을 보여줌으로써 ‘잘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역대급 배당금이지만 실제로 재무구조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진 않으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의 증권사 연구원은 “배당을 많이 한 건 아니다. 이번엔 15% 수준인데 코스피 평균 기준에 비해 높은 건 아니기 때문에 부담이 적다”며 “코로나 기간에 역대급 실적을 낸 데다 그간 배당을 못했으니 항공주 위상 제고를 위해서라도 배당이 필요했던 시점”이라고 말했다.
#자회사 수혈 배경은…본격 합병 준비?
대한항공이 최근 자회사 수혈에 집중하고 있는 점도 인수합병을 염두에 둔 행보로 분석된다. 대한항공은 2월 20일 자회사 한진인터내셔널코퍼레이션(HIC)의 7억 2000만 달러(9343억 원) 규모 유상증자에 참여한다고 공시했다. HIC가 대한항공에 갚아야 할 돈을 상환할 수 있게끔 지원한 것이다. 이 경우 HIC의 부채비율은 기존 2108%에서 61%로 감소한다. 또 대한항공은 자회사 왕산레저개발의 406억 원 규모 유상증자에도 참여한다고 공시했다. 왕산레저개발도 이 금액을 차입금 상환에 사용한다.
HIC와 왕산레저개발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실적이 악화하며 대한항공에서 줄곧 매각 검토를 해 왔던 곳이다. 대한항공은 2020년 이사회에서 왕산레저개발 지분 전량 매각 추진을 결의하기도 했다. 관광업이 회복세를 보이는 시점을 틈타 차입금을 대신 갚아주고 기업가치를 손봐 매각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윤철 교수는 “대한항공의 경영적인 큰 방향은 당분간 재무건전성을 강화시키는 데 맞춰질 거다. 합병을 염두에 두고 재무와 경영 안정화를 도모하는 게 우선순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지난 2월 20일 자회사인 케이에비에이션에도 출자하겠다고 공시했다. 대한항공은 케이에비에이션에 항공기 2대와 헬기 사업 전체를 양도하고 891억 원 가치의 신주를 취득한다. 케이에비에이션은 대한항공이 아시아나와의 통합을 염두에 두고 출범한 것으로 분석되는 자회사다. 2021년 12월 출범했으나 아시아나와의 통합이 예상보다 지연되면서 1년 넘게 수익활동을 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영업활동에 시동을 건 것이다.
다만 올해 실적이 지난해만큼 좋을 수는 없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2021~2022년 실적 호조를 이끌었던 화물사업이 시황 하락세로 돌아선 탓에 매출 감소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노선 리오프닝이 임박하면서 항공사들의 운항횟수 증가가 화물사업 비수기인 1분기와 맞물려 화물운임 하락세를 가속화하리란 전망도 나온다. 윤문길 교수는 “여객 수요가 증가하면서 상반기 실적을 견인하겠으나 외항사까지 공급이 다 정상화되면 상황이 지금과 크게 달라질 것이다. 올 하반기부터 다시 2019년처럼 치킨게임이 시작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대한항공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고 비정상적으로 매출 비중에서 화물이 늘어난 구조였는데 원래는 여객 매출액이 화물보다 훨씬 높았다”며 “여객 수요 회복을 통해 향후 수익 창출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