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지자체에 지원 방안 구체적 내용 전달 안 돼…‘여론 무마용’ 성급한 발표 비난
정부가 취약계층의 난방비 부담 완화를 위한 난방비 지원 발표에 일선 지방자치단체(지자체)를 중심으로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행정 최전선인 지자체에 난방비 지급 방법 등 구체적인 내용이 전달되지 않은 탓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2월 15일까지 수차례에 걸쳐 난방비 지원 방안이 포함된 에너지바우처 대책을 발표했다. 앞서 대통령실은 난방비 폭등으로 정부에 대한 여론이 악화하자 지난해 12월 말 취약계층 에너지바우처 관련 ‘특별지원대책 수립’을 지시했다. 정부는 당시 5만 5000여 가구에 연탄 쿠폰과 등유 이용권 사용 가구의 지원 단가를 높이겠다고 했다. 하지만 전체 기초생활수급자 중 에너지바우처 미수급자가 많고, 차상위계층(기초생활수급자보다 월소득이 조금 많은 단계로 4인 가구 기준 약 270만 원 이하인 가구)에 대한 난방비 지원이 미흡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정부는 모든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에 난방비 지급액 59만 2000원을 매달 14만 8000원씩 4개월간 지원하겠다는 추가 대책을 발표했다.
에너지바우처란 취약계층의 에너지 부담을 줄이는 정책이다. 전기, 도시가스, 지역난방, 등유, LPG, 연탄 등 에너지 비용을 지원한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에너지바우처 신청 대상은 소득 기준과 세대원 특성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취약계층이다. 소득 기준이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 해당해도 세대원 특성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에너지바우처를 받지 못한다는 것. 이에 정부는 모든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에 난방비 지급액 최대 59만 2000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월 15일 정부는 요금 할인 대상 가구를 등유와 액화석유가스(LPG)를 사용하는 취약계층으로 확대하겠다고도 전했다.
하지만 정부가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마련하지 않은 채 사업 발표에만 치중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경기도의 한 지자체 공무원 A 씨(여·20대)는 “난방비를 지원해준다는 보도가 나온 뒤 취약계층 민원인을 중심으로 ‘(난방비를) 어떻게 받는 것이냐’ ‘언제쯤 난방비 지원금이 들어오냐’는 연락이 많이 온다”며 “구체적으로 지급 방법이나 시기에 대해 전달받은 내용이 없어 직접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 담당자에 연락해 물었더니 그쪽(산자부)에서도 방법이나 시기에 대해 아는 내용이 없어 당황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취약계층에 난방비 지원 등 에너지바우처는 절실한 제도인데 지급한다고 보도만 내면 어떡하나”라며 “이분들(취약계층)의 지원 제도를 직접 담당하는 행정 일선의 지자체 공무원들에게 구체적인 지원 방안이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산자부 관계자는 “난방비 소급분이 나갔을 텐데…”라며 “세부적인 부분은 지자체별로 상이할 순 있지만 컨트롤타워(중앙정부)에서 지자체나 행정복지센터로 전해지는 가이드라인(난방비 지원 방안)은 같다”고 말했다. ‘소급분이 지원됐다는데 현장에서 난방비를 받지 못해 지급 시기를 묻는 경우가 많다’는 질문엔 “지자체별로 크게 (지급 시기가) 차이 나진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현장의 혼란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서울의 한 지자체 공무원 B 씨(남·30대)는 “(행정센터 공무원들이) 공문을 통해서가 아닌 직접 난방비 지급 기사를 검색하거나 산자부 홈페이지를 통해 (난방비 지급 방안을) 파악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선 지원금 공백 기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난방비 지원 대책안이 수차례 바뀌면서 지원 대상에 추가된 수급자 파악에 시간이 걸리고, 지원금 지급 방법 및 시기가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아 행정 절차가 늦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지원금 지급 관련 행정 절차가 늦어지면 난방비 지급 기간도 밀릴 수 있다.
일선 공무원의 스트레스가 심각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난방비 지원 대책이 계속 변경되면서 취약계층 민원인 전화가 급증하고 민원인들이 일선 행정기관 공무원에게 직접 항의하고 있다. 앞의 A 씨는 “민원인 분들이 예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면서도 “간혹 우리(공무원들)도 (지급 방법 등이) 파악되지 않아 ‘아직 나온 내용이 없다’고 말씀 드리는데, ‘너희가 모르면 누가 아냐’는 식으로 험한 말씀들을 하실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호소했다.
무엇보다 에너지바우처 제도에 대한 구체적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비난 여론 무마용으로 운영됐다가는 정부의 복지 대책에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조언도 있다. 산자부가 지난 2월 24일 현장에서 난방비 지원 대책이 차질 없이 집행될 수 있도록 ‘난방비 지원대책 집행 TF’를 운영하겠다고 밝힌 만큼 중앙정부에서 일선 행정기관에 난방비 지원 방안에 대한 정확한 안내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 정부에서 난방비 폭등으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성급하게 (난방비 지원) 대책을 내놓은 감이 없지 않다”며 “취약계층 지원, 복지 문제 등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뢰다. 일선 행정 혼란을 막기 위해 체계적이고 정확한 복지 시스템이 작동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