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임료 입금 빨라 저연차 변호사들 사이서 인기…정순신 아들 사건 판사 출신 전관 변호사 선임은 이례적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가 ‘아들 학폭(학교 폭력)’ 논란으로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가 내놓은 해명이다. 정 변호사는 아들의 법적 대응(소송)을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판사 출신 변호사에게 맡겼다. 물론 법원은 정 변호사 측의 요구(전학 처분 취소)를 받아들여주지 않았지만, 변호사 시장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입을 모아 얘기한다. 최근 학교 폭력 이슈가 불거지면서, 자연스레 법조계에서도 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장단점이 명확한 게 변호사시장 내 학폭 사건”
통상적으로 학교 폭력(학폭)이 발생하면 가벼운 사안은 학교에서 자체 처리한다. 학교가 나서 가해자와 피해자 간 화해를 중재한다. 화해가 이뤄지지 않으면 지역 교육지원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로 넘어간다. 여기서부터는 사안이 조금 중대해진다. 자칫하면 학생부에 기록이 남기 때문이다.
10년 전 정부가 도입한 학폭 대책 가운데 가장 효과적이라 평가받는 부분이다. 학폭위 심의에 따라 가해자로 판단이 되면, 1호(서면사과)부터 9호(퇴학) 처분까지 받게 된다. 이 가운데 4호 이상(3호 이하 조건부 기재)은 학생부에 그 기록이 남고 대학 입시 수시 전형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 심지어 9호(퇴학)의 경우 학생부 내 기록이 대학 입학한 뒤에도 삭제되지 않고 평생 남는다.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은 언어폭력 등으로 8호 처분을 받았고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한 케이스다.
처음 도입됐을 때에는 ‘학교 내 조정 시스템’ 정도였다면 대입에서 학생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면서 대응도 더 전문화되고 있다. 기록이 남지 않는 1~3호(서면사과) 조치의 경우 학폭위 수준에서 끝나는 게 일반적이지만, 학폭위에서 그 이상 조치를 내릴 경우 가해학생이나 보호자는 행정심판을 청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전학 또는 퇴학처분에 대해 이의가 있는 학생 또는 그 보호자는 시·도학생징계조정위원회에 재심 청구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를 선택하는 가해학생이나 보호자도 늘고 있다.
특히 이때는 거의 모든 케이스가 ‘변호사들 조언’을 원한다고 한다. 시·도학생징계조정위원회에는 변호사가 조정위원으로 참여하는데, 관련 경험이 있는 변호사들을 선임해 보다 전문적인 대응을 원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학생부 기록 때문에 대학 입시에서 불이익을 우려한 학부모들의 행정심판이나 소송은 늘어나고 있다. 가해자가 행정심판을 청구한 사례는 2017년 518건, 2019년 828건, 2020년 475건, 2021년 682건이었다. 하지만 가해자 측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낮다. 인용률은 통상적으로 15~20% 수준에 그친다.
#자연스레 커지고 전문화되는 변호사 시장
자연스레 변호사 시장에서 ‘학폭’도 전문화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학폭위 이후 불복 과정에서 변호사들이 개입했다면, 이제는 아예 학폭위 때부터 적극적으로 변호사들이 개입해 변호를 맡고 있다는 설명이다. 시장에서는 로스쿨 출신으로 나이가 비교적 어린 변호사들이 사건을 주로 맡고 있는데 이는 시장에서 500만~1000만 원 정도에서 이뤄지는 선임료 때문이기도 하다.
학폭 사건을 전담한 적이 있는 한 로스쿨 출신의 40대 변호사는 “지인의 부탁으로 학폭위 때부터 사건을 맡아 변호를 한 적이 있다”며 “2주 안에 학폭위 결정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대응이 빨라야 한다는 점, 또 피해자와 가해자, 목격자의 진술 사이에서 ‘명백한 증거’를 찾아내야 한다는 점 등이 학폭 사건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장점도 한 가지 꼽았다. 다른 어떤 사건들보다 의뢰인의 ‘입금’이 빠르다는 것. 그는 “대학교 입시에 불이익을 원치 않는 학부모의 마음이 반영되기 때문에 의뢰인의 원하는 것도 많지만, 그만큼 입금도 정확하다. 경험상 입금이 가장 빠르고 정확했던 사건이 학폭 사건”이라며 “적지 않은 경우들이 소송까지 가지만 결과를 뒤집기가 쉽지 않다 보니 변호사 입장에서 난이도는 높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때문에 변호사 업계에서는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 사건을 판사 출신 전관 변호사가 맡은 것을 놓고 ‘이례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학폭 사건은 의뢰가 와도 아예 맡지 않는다는 게 많은 전관 변호사들의 원칙”이라며 “사건의 특징도 그렇지만 사건 자체의 가액이 낮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차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 역시 “학폭 사건 의뢰가 온 적이 있지만 다른 곳으로 가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며 “전관 출신들 가운데 학폭 사건을 맡는다고 한 경우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네이버 등에 ‘학폭 변호사’로 검색을 할 경우,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대거 광고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학폭위 참여하는 위원을 기피신청하기 위한 방법이나, 승소한 경우를 설명하며 사건 선임을 위한 광고를 하는 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가해자 측에는 가해 여부 확정, 형사처벌로 번질 가능성 차단, 학교 측의 적절한 처분 등을 주로 제시하고, 피해자에게는 가해자 학생의 가해 사실 확정, 적절한 행정 및 형사상 처벌 조처 방법을 제안하는 게 일반적이다. 일부 로펌에서는 이런 부분을 기반으로 한 학폭 매뉴얼까지 갖춰 놓고 대응하고 있다고 한다.
대한변호사협회도 학폭 사건의 전문성을 고려, 학교폭력을 전문분야로 등록한 변호사들을 선정하고 있다. 현재 17명이 활동하고 있는데, 학교폭력 전문분야 변호사는 대한변협 심사를 거쳐 선정된다. 최소 변호사 경력 3년 이상이고, 최근 3년 안에 학폭 사건을 10건 이상 수임하고, 대한변협 교육을 수료해야 심사를 통과할 수 있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최근 사건으로 가해자 측의 변호사 시장이 많이 언급되는데 적지 않은 전문 변호사들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더 제대로 내고, 증거를 모으기 위해 일한다”며 “학폭 사건의 피해자들이 더 제대로 된 조언을 받고 싶다면 학폭 관련 전문성이 있는 변호사를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