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 사업 추진 일부 지역 재건축 선회 움직임…단지별로 사업성 따져보고 현실적 한계 수용해야
#재건축할 수 있으면 누가 리모델링 하나요?
1기 신도시 중 하나인 경기도 안양시 평촌지역 아파트 곳곳에는 ‘리모델링 신속한 산업 진행으로 평촌 최고의 랜드마크로 만들겠습니다’, ‘리모델링 조합창립총회 개최를 응원합니다’ 등의 현수막이 붙어있다. 지은 지 30년이 지난 26개의 노후 아파트 단지에서 리모델링을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1기 신도시를 중심으로 리모델링 준비를 멈추고 재건축으로 선회하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수도권 지하철 4호선 범계역 인근 한 아파트에 산다고 밝힌 한 주민은 “거주하는 곳이 초역세권이라 이번에 용적률 규제를 최대한으로 풀어줄 것으로 보고 재건축 쪽으로 맘을 돌렸다. 대지지분이 너무 낮아 사실상 재건축 가능성이 없던 아파트들도 간을 보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국토교통부가 2월 7일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발표한 이후부터다. 국토부가 준비한 법의 골자는 재건축 안전진단 완화와 주거지역 용도 변경 및 용적률 상향 등이다. 도심이나 역세권에서는 최대 500%까지 용적률을 늘릴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용적률 규제를 완화하면 일반분양 물량을 늘릴 수 있게 돼 조합원들이 분담하는 재건축 사업비가 줄어든다. 수익성이 높아지는 셈이다. 정부가 발표한 ‘노후계획도시’에 포함되는 지역은 성남시 분당, 고양시 일산, 부천시 중동, 안양시 평촌, 군포시 산본 등 5개 1기 신도시를 비롯해 수도권 택지지구, 지방 거점 신도시 등이다.
그간 리모델링의 인기가 높았다. 한국리모델링협회에 따르면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아파트 단지들은 2019년 37개에서 2020년 54개, 2021년 94개, 2022년 137개로 꾸준히 늘었다. 문재인 정부 때 재건축 규제가 강화된 탓에 리모델링 시장이 활성화된 셈이다. 여경희 부동산 R114 수석연구원은 “대부분 주민들은 재건축을 선호하지만 리모델링이 재건축보다 연한이 짧아도 추진할 수 있는 등 규제가 덜 빡빡해 리모델링으로 선회한 단지들이 꽤 있었다”며 “이런 단지들에서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가 풀리니까 다시 재건축으로 움직인 것”이라고 말했다.
재건축이 리모델링보다 인기가 높은 이유는 사업성이 높기 때문이다. 리모델링은 일반적으로 기존 세대수의 15% 이내에서만 세대수를 늘릴 수 있다. 재건축과 달리 일반분양을 늘려 수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조합원 분담비가 늘어나는 구조다. 오래된 내력벽 또한 그대로 남겨놔야 하기 때문에 안전을 장담하기 어렵고 트렌드와 맞지 않는 구조가 나온다는 문제점도 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재건축할 수 있는데 누가 리모델링하려고 하겠느냐. 이미 마무리 단계면 모를까 이제 막 추진위 만들고 있던 초기 단계에 있던 아파트 단지들은 당연히 재건축으로 가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장밋빛 전망 일러…현실적인 한계 주목해야
하지만 리모델링에서 재건축으로 과감하게 돌아서기에는 체크해야 할 사안이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선 역세권을 제외한 아파트 단지들은 용적률 혜택을 보기 어려우리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용적률을 높여주는 대신, 임대주택이나 공원을 기부채납해 공공기여하는 방식이 논의되고 있지만 이 부분 역시 구체적이지 않다. 한국리모델링협회 한 관계자는 “희망적인 내용이 워낙 돋보이지만 사실 현실적으로 모든 주민에게 고루 혜택이 가게끔 용적률을 올려줄 수는 없다”며 “구체적인 안이 나온 후에 단지별로 분석을 해서 신중하게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가 1기 신도시 등을 광역적인 차원에서 정비하겠다는 기조인 만큼, 그 과정이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도로나 인프라 정비, 이주 수요 수용 등에 대한 대비책 등의 과제가 선결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인만 소장은 “일반 재건축 조합도 복잡한데 1기 신도시는 더 복잡하다. 예컨대 분당의 경우 느티마을, 한솔마을, 샛별마을 중 어디에서 먼저 재건축을 하고 용적률을 어떻게 적용할지도 다 분쟁의 씨앗이 될 것”이라며 “선결과제가 너무 많아서 완전히 끝나기까지 30년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상대적으로 안전한 선택인 리모델링을 확정하는 경우도 있다. 평촌리모델링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3월 2일 한가람세경아파트에서 리모델링주택조합이 설립됐고 재건축을 고민하던 목련 3단지아파트도 지난해 11월 총회에서 리모델링을 재추진하기로 확정했다. 이형욱 평촌리모델링연합회 회장은 “재건축으로 선회하겠다는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리모델링이 재건축보다 사업 진행이 훨씬 빠른 데다 정부가 선거 때만 좋은 조건을 갖고 와서 대책 없이 희망적인 얘기를 한다고 본다. 주민들도 반신반의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기존에 이미 용적률이 높은 곳들은 사업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밖에 없고 모든 아파트 단지에 500% 용적률을 적용해 줄 수도 없다”며 “현실적으로 재건축 사업이 어려운 곳들은 시기를 놓치기 전에 리모델링으로 가는 게 낫다”고 말했다.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지적을 듣던 리모델링 관련 법규도 완화 움직임이 일고 있다. 2021년 8월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이어 지난해에는 1월 6일 같은 당 김병욱 의원이 ‘공동주택 리모델링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다만 두 법안 모두 아직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문턱을 아직 넘지 못하고 있다.
김병욱 의원실 관계자는 “대선 이후 정치일정이 빠듯해지는 바람에 법안 소위가 거의 열리지 않아 심사가 이뤄지지 못했다. 아직 순서가 되지 않아서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제 슬슬 논의가 되는 시점”이라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