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윤 이사진 영입해 서슬 퍼런 정권과 발맞추기…정치권 인맥도 ‘순혈 KT’ 훈장도 없어 내부 단속 숙제
윤경림 사장은 대표 후보 선정 즉시 ‘지배구조개선TF’를 조직하고 윤석열 대선 캠프 출신인 임승태 전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을 이사회에 영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KT 이사회 구성원 상당수는 여전히 친문 성향으로 평가 받는다. 최대주주도, 이사회도 윤 사장의 견제 세력인 셈이다. 뿐만 아니라 윤 사장이 순혈 KT맨이 아니라는 이유로 리더십에 대한 우려까지 나온다.
#차기 KT 대표에 윤경림 사장 낙점
KT 이사회는 지난 3월 7일 윤경림 사장을 차기 대표 단수 후보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KT는 이어 8일 임시 이사회를 통해 윤 사장의 대표이사 임명안, 임승태 전 사무처장의 사외이사 임명안 등을 포함한 정기주주총회 안건을 의결했다. KT는 오는 3월 31일 주주총회를 열고 안건에 대한 투표를 거친다.
윤경림 사장에게는 당장 주주총회 통과부터가 난관이다. 앞서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은 KT 대표 최종 후보 4인이 선정되자 “이권 카르텔을 유지하려는 수법”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윤 사장에 대해서는 ‘구현모 아바타’라는 표현을 써가며 원색적으로 공격했다. 이어 대통령실까지 KT를 겨냥해 “공정하고 투명한 거버넌스가 이뤄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KT 차기 대표직에는 외부 인사 18명과 사내 인사 16명 등 총 34명이 지원했다. 이후 구현모 대표가 스스로 물러나며 33명에 대한 심사가 이뤄졌다.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 김성태 대통령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자문위원,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등 여당 국회의원 출신도 후보에 포함됐다. 통신업계와 정치권에서는 “윤심을 받은 전 국회의원들이 한 명도 최종 후보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 여권이 역정을 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통신업계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윤경림 사장을 반대할 것으로 전망한다. 현재 KT의 주요 주주는 국민연금(지분율 8.53%), 현대자동차그룹(7.79%), 신한금융그룹(5.48%) 등이다. 당초 현대자동차와 신한금융은 구현모 대표의 우호지분으로 분류됐다. 구 대표 재임 기간 지분교환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 대표가 물러날 상황에서 두 회사가 윤 사장 취임을 지지할지는 미지수다. 현대차와 신한금융 역시 국민연금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는 재벌 기업으로 승계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 정권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신한금융지주는 당장 여권 압박에 조용병 전 회장이 연임을 포기했다”며 “정권이 서슬 퍼런 칼날을 휘두르고 있는 와중 윤 사장을 맘 놓고 지지할 수 있는 회사들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정치권 외풍 버틸 수 있을까
윤경림 사장이 꺼내든 카드는 친윤 이사진 영입이다. 우선 임승태 전 사무처장이 KT 신임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임 전 사무처장은 윤석열 대선캠프에서 상임경제특보를 맡았고, 지난 3월 8일에는 KDB생명 대표로도 내정됐다.
그러나 KT 이사회에는 여전히 전 정권 출신 인물들이 남아 있어 여당 공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관측도 따른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김대유·유희열 KT 사외이사다. 김대유 사외이사는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정책수석을 지냈고 유희열 사외이사는 문재인 전 대통령 대선캠프에서 활동한 바 있다. 김 사외이사와 유 사외이사의 임기는 각각 2024년 3월, 2025년 3월까지다. 하지만 이강철 전 KT 사외이사가 최근 사퇴한 만큼 김대유·유희열 사외이사의 중도사퇴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강철 전 사외이사는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을 지냈다.
친여 성향 인물이 추가적으로 이사회에 등장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임승태 전 사무처장이 사외이사 후보자에 이름을 올렸음에도 대통령실의 ‘이권 카르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 7일 국무회의 마무리 발언에서 “국민을 약탈하는 이권 카르텔에 맞서 단호하게 개혁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 날인 8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도 “기득권 이권 카르텔은 확실하게 뿌리 뽑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KT를 염두에 둔 발언이 아니냐는 해석이 뒤따랐다.
KT가 주주총회에 올린 사외이사 임기가 모두 1년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통상 사외이사 임기는 3년이다. 1년 후 사외이사 대다수가 물갈이될 수 있는 셈이다. 통신업계 다른 관계자는 “1년 동안 KT에 대한 ‘길들이기’에 들어간 후 내년 주주총회에서 3년 임기의 사외이사를 앉히면 윤석열 정부가 끝나는 2027년 5월 직전에 이들을 재선임시킬 수 있다”며 “KT를 장기간 완벽하게 장악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내부 단속도 중요
윤경림 사장의 리더십은 시작도 하기 전부터 도전을 받고 있다. 한 KT 계열사 관계자는 “KT 대표직을 두고 3년마다 외풍 논란이 나오는 것은 익숙하지만 당장 주총 통과부터가 어려운 경우는 이례적이다 보니 내부에서도 어느 라인에 서야 할지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차기 대표 선임이 미뤄지며 지난해 연말 임원인사도 내지 못한 KT 내부의 눈치싸움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라는 후문이다.
윤경림 사장은 LG데이콤(현 LG유플러스)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하나로텔레콤(현 SK브로드밴드)을 거쳐 40대에 접어든 2006년에야 KT에 합류했다. 이후에도 CJ그룹, 현대차그룹 등으로 이직했다가 KT로 복귀한 인물이다.
통신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윤경림 사장은 아직도 평균 근속년수가 20년을 넘고 공채 파워가 강한 KT에서는 이단아 같은 인물”이라며 “차라리 이석채 전 KT 회장과 같은 힘 있는 정치권 낙하산이나 삼성전자 사장이라는 경력을 지닌 황창규 전 KT 회장 같은 인물이 내부 단속에는 유리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 인맥도 없고, 순혈 KT맨이라는 훈장도 없는 윤 사장의 사내 권위가 취약하다는 시각이다.
윤경림 사장도 이를 의식했는지 현 정부에 협조할 뜻을 내비쳤다. 윤 사장은 소감문을 통해 “정부와 주주의 우려를 충분히 공감하고 있으며 후보자로서 주총 전까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맞춰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며 “정부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참함으로써 KT가 국민기업으로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내부 단속 등에 대해서는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