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 관료 출신 전 씨 최근 검찰 수사 스트레스 호소…이재명 “검찰의 미친 칼질” 여당 “이 대표가 비극 끝내라”
#전 씨, 검찰 수사 스트레스 호소
3월 9일 오후 6시 45분쯤 이재명 경기도지사 재임 당시 초대 비서실장이었던 전 아무개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전 씨 아내가 “현관문이 잠긴 채 열리지 않는다”며 119에 신고했고, 구급대원들이 문을 강제 개방한 뒤 숨져 있는 전 씨를 발견해 경찰에 인계했다. 경찰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현장 정황 증거 등을 토대로 정확한 사건 경위를 수사 중이다.
전 씨는 1978년 성남시에서 공직을 시작해 성남시 수정구청장, 성남시 행정기획조정실장 등을 역임한 정통 관료 출신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성남시장이던 시절 행정기획조정실장을 지냈다. 이 대표가 2018년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이후엔 당선인 비서실장, 도지사 비서실장 등을 맡았다. 이후 경기주택도시공사(GH)에서 경영기획본부장을 지내다 사장 직무대행을 했다. 2022년 12월 말 전 씨는 검찰 조사를 받은 뒤 GH에서 퇴직했다.
이 대표 측 한 인사는 “이 대표와 전 씨가 원래 알고 있던 사이는 아니었다. 성남시장에 당선된 이 대표가 전 씨의 업무 능력을 상당히 높이 샀다. 일처리가 꼼꼼하고, 성격도 소탈해서 조직에서의 신망이 높았다. 어느 자리에 가도 업무를 파악하는 능력이 빨랐다. 그래서 이 대표가 경기도로 갔을 때도 전 씨에게 러브콜을 보냈다고 한다”면서 “그동안 세간에 잘 알려져 있진 않았지만 이 대표가 만약에 대통령이 됐다면 무조건 같이 청와대로 들어갔을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귀띔했다.
3월 10일 경찰에 따르면 전 씨가 쓴 노트 6쪽 분량의 유서가 현장에서 발견됐다. 유족 측은 유서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서에는 ‘열심히 일만 했을 뿐인데, 검찰 수사 대상이 돼 억울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다. 전 씨 유족은 경찰 조사에서 “최근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됐는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또 유서엔 이 대표를 향해 “이제 정치를 내려놓으시라. 더 이상 희생은 없어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것으로도 전해졌다.
전 씨는 이재명 대표 ‘성남 FC 후원금 의혹’ 구속영장 청구서에 공범으로 적시된 인물이다. 이 대표가 성남시장 재직 시절인 2015~2018년 두산건설, 네이버, 차병원, 농협, 알파돔시티, 현대백화점 등의 기업에 부지 용도변경 등을 대가로 성남 FC에 160억여 원의 후원금을 내도록 했다는 것이 의혹의 골자다. 검찰은 전 씨와 관련해 “2022년 12월 26일 성남 FC 사건과 관련해 한 차례 영상녹화 조사를 진행했다. 이후 별도의 조사나 출석요구는 없었으며, 그 외 검찰청에서도 조사나 출석요구는 없었다”고 밝혔다.
민주당에선 검찰의 먼지털이식 수사, 피의사실 유출 등이 전 씨에게 압박으로 작용한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한다. 3월 9일 오전 5시 1분 조선일보는 전 씨가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모친상에 조문하면서 “쌍방울과 북한 측의 경협 합의서 체결을 축하하며 대북 사업의 모범이 되면 좋겠다”는 취지의 말을 했고, 수원지검이 쌍방울 관계자로부터 그와 같은 진술을 확보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이후 약 13시간 44분 뒤 전 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에 대해 일요신문은 수원지검에 질의했으나 어떤 답변도 오지 않았다.
전 씨는 2022년 2월 대선 기간엔 이재명 대표가 GH 합숙소를 선거사무소로 사용했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2023년 3월 6일 우종수 경기남부경찰청장은 ‘GH 합숙소 선거사무소 사용 의혹’ 관련해서 “검찰의 보완 수사 요청이 있었다.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1월 31일 검찰은 일부 사안에 대해 보완 수사를 요구하면서 이헌욱 전 GH 사장에 대한 경찰 사전구속영장을 반려했다. 이 전 사장은 2020년 8월 기존 GH 합숙소의 계약 기간이 남아있는데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 자택 바로 옆집을 전세금 9억 5000만 원에 2년간 임차하도록 지시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는다. 전 씨는 사망 이전에 이와 관련한 경찰 조사를 받지는 않았다고 한다.
3월 10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경기도의회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전 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에 대해 “그야말로 광기다. 검찰의 이 미친 칼질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며 “아무리 비정한 정치라고 하지만 이 억울한 죽음을 두고 정치도구로 활용하지 말라. 이게 검찰의 과도한 압박수사 때문에 생긴 일이지, 이재명 때문인가. 수사당하는 게 제 잘못인가. 제가 만난 공직자 중에 가장 청렴하고 성실하고 헌신적이고 유능했던 공직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자랑스러운 공직생활의 성과가 검찰 조작 앞에 부정당하고 지속적인 압박 수사로 얼마나 힘들었겠나”라고 검찰을 작심 비판했다.
3월 10일 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도 “고인은 비서실장이었다는 이유로 이재명 대표 관련 검찰 수사에 반복적으로 이름이 올랐다. 검찰은 단독보도 뒤에 숨어 확인되지 않은 사실과 범죄혐의자들의 일방적 진술을 유포하며 고인의 명예를 짓밟았다. 특히 조선일보는 고인이 극단적 선택을 한 날 아침, 검찰의 일방적 주장을 토대로 고인이 김성태 모친상 관련 부정한 일에 연루된 것처럼 보도했다”며 “사망한 전 씨는 ‘성남 FC 후원금 의혹’ 사건과 관련돼 검찰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극 원인은 무리한 강압수사·조작수사”라고 입장문을 발표했다.
서울중앙지검 고위 인사는 일요신문에 “특별한 입장은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전 씨가 한 차례 정도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는 보고를 받았다. 쌍방울 의혹과 관련해선 아직 조사 여부가 정해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면서 “다만, 이 대표를 향한 강압 수사 때문에 전 씨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며 검찰을 비판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논리가 상식에서 벗어난다. 국민들이 과연 받아들일까. 검찰은 공직자로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할 뿐”이라고 했다.
#이 대표 주변 인물 사망 사례 5명
이재명 대표 주변 인물이 사망한 사례는 전 씨를 포함해 총 5명이다. 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은 검찰에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다음 날인 2021년 12월 10일 숨진 채 발견됐다. 유 본부장은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중심에 있는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관계사인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와 천화동인 5호 소유주 정영학 회계사로부터 한강유역환경청 로비 명목으로 2억 원의 뒷돈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었다. 유 본부장은 12월 14일 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을 예정이었다.
2021년 12월 11일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는 유 본부장 사망에 대해 “자꾸 검찰이 본질을 남겨두고 주변을 두드리는 수사를 하다가, 결국 누군가가 검찰에 강압 수사를 원망하면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한다”며 “명복을 빈다. 비통한 심정이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조속히 특검을 추진해야 한다”고 입장문을 냈다.
2021년 12월 21일엔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1처장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관련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은 2021년 10월부터 12월 9일까지 김 처장을 4차례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김 처장은 2015년 3월 화천대유가 대장동 개발 민간사업자로 선정될 당시 1, 2차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김 처장은 숨진 당일 성남도시개발공사로부터 중징계 의결 통보를 받기도 했다. 그해 9월 민간인 신분으로 공사를 찾아온 정민용 변호사에게 비공개 자료를 열람시켜줬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2021년 12월 22일 김 처장 유족들은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 사무실 앞에서 “공사 측이 김 처장만 콕 찍어 징계처분을 내렸다. 꼬리 자르기 하려는 것 아니냐”며 “이 회사에서 유일하게 김 처장만 고소했는데, 충격적이었다. (회사가) 모든 책임을 김 처장한테 다 뒤집어씌우려고 고소한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어 “지금까지 검찰에서 계속 조사를 받았고 거기에 뒤따르는 책임을 윗사람들이 아무도 지려고 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2021년 12월 22일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한 방송에서 “(김 처장을) 시장 재직 당시 몰랐다”며 “하위 직원이었으니 당시에 아마 팀장이었을 것이다. 도지사가 돼 재판을 받을 때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해 12월 23일 국민의힘 ‘이재명 비리 국민검증특별위원회’ 소속 이기인 성남시의원은 이 후보가 2015년 성남시장으로서 김 처장과 해외 출장까지 다녀왔다며 두 사람이 함께 찍힌 사진을 공개했다. 같은 날 사법시험준비생모임(사준모)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이 후보를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3월 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재판장 강규태)는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의 첫 공판을 진행했다.
2022년 1월 12일 이재명 대표 ‘변호사비 대납 의혹’을 최초 제보한 이 아무개 씨가 서울의 한 모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다음날 13일 이 씨의 사인이 심장질환에 따른 대동맥 박리 및 파열로 보인다는 경찰의 1차 소견이 나왔다. 이날 이 씨 유족 측은 빈소가 차려진 서울 양천구 한 병원 장례식장에서 브리핑을 열고 “부검 결과가 나온 만큼 고인의 죽음에 대한 억측을 멈춰 달라”며 “유족들은 지금까지 추측 보도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만큼 이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고 말했다.
앞서 2021년 10월 ‘깨어있는시민연대당’은 이 씨가 확보한 녹취록을 근거로 이재명 대선 후보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 후보 사건에 참여한 변호사가 현금 외에 쌍방울그룹으로부터 3년 후에 팔 수 있는 상장사 주식 20억 원 상당을 받았으며, 사실상 쌍방울 측이 이 후보의 변호사비를 대신 내줬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사건은 현재 수원지법 제11형사부(부장판사 신진우)에서 공판이 진행 중이다.
이재명 대표 배우자 김혜경 씨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과 관련해 조사를 받은 40대 남성은 2022년 7월 26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외부 침입 흔적이 없는 점과 기타 현장 상황 등을 토대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남성은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남부경찰청에 출석해 한 차례 참고인 조사를 받았으나, 피의자로 전환될 가능성은 없었다는 것이 경찰 설명이다. 법인카드 유용 의혹 관련한 공판은 수원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황인성)에서 심리 중이다.
여당에서는 이재명 대표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3월 10일 김기현 국민의힘 당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를 둘러싼 죽음의 그림자가 연속되고 있어 섬뜩한 느낌을 금할 수 없다”며 “민주당 대표로서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적합한지에 대한 많은 심사숙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이재명 전 성남시장과 관련한 관계인들이 왜 이렇게 다섯 번째나 목숨을 버리는 결정을 하는지 우리도 궁금하고, 이 대표의 입장을 듣고 싶다”고 했다. 성일종 정책위의장은 원내대책회의에서 “이 대표의 주변에서는 끔찍한 죽음의 랠리가 공포영화가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며 “국회의원의 방탄 뒤에 당을 방패로 삼아 요새를 구축하고 있는 이 대표만이 6, 7번째 죽음을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