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위부 포함 근로자 150여 명 숙소 마련 계획 포함…정보 공작 거점 활용 가능성 있어 ‘허무맹랑’ 분석도
북한의 옥류관 본점은 평양 중심을 타고 흐르는 대동강변에 위치해 있다. 강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 옥류관을 상징하는 요소 중 하나로 꼽힌다. 300m 거리엔 북한 3대 세습을 상징하는 랜드마크 만수대 언덕이 위치해 있다.
옥류관 반경 1km 이내엔 조선노동당 본부, 김일성 광장, 최고인민회의 등 주요 시설이 위치해 있다. 자타공인 북한 최고급 레스토랑이다. 옥류관이 자랑하는 주요 메뉴는 평양냉면이다. 2018년 9월 열린 제3차 남북정상회담 당시엔 남측 수행단들이 옥류관에서 오찬을 가지면서 화제 중심에 섰다.
2018년 10월 4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10·4 정상선언 11주년 공동기념행사 참석 차 방북했다. 2박 3일 방북 일정 과정에서 이 전 부지사는 북한과 6가지 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굵직한 합의 내용은 경기도 주최 국제학술대회에 북측 대표단 참여, 황해도 스마트팜 사업 추진, 옥류관 국내 1호점 유치 등이었다.
2018년 11월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조선아태위) 부위원장은 북측 대표단을 이끌고 경기도 고양시 소재 한 호텔에서 열린 ‘2018 아시아태평양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에 참석했다. 경기도와 아태평화교류협회(아태협)가 공동으로 주최한 국제대회였다. 국제대회가 열리던 날 오전 리종혁과 북측 대표단은 이재준 전 고양시장과 대형버스에 동승해 호수공원 인근을 둘러봤다. 옥류관 1호점 유치와 관련한 이야기가 오간 물밑 접촉으로 알려졌다.
2018년 12월 25일 조선아태위는 경기도 고양시에 옥류관 등 다양한 남북협력사업 시설을 건설하는 데 동의하는 동의서를 발급했다. 동의서에 따르면 조선아태위는 남측 아태협이 경기도 고양시에 건설하려 하는 옥류관과 대동강맥주생산능력확장사업, 호텔 및 봉사시설 건설사업 등 여러 협력사업들을 주관해 남측 해당 업체들을 선정해 추진하는 데 동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사실상 옥류관 1호점 입지로 경기도 고양시가 확정되는 흐름이었다.
그러나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뒤로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옥류관 분점 유치 가능성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2020년 6월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사건이 벌어진 뒤로 옥류관 분점 유치는 백지화 수순을 밟았다. 옥류관 국내 분점 유치에 대한 열기가 사그라든 2021년 9월 7일 고양시의회에선 다시 옥류관 이야기가 나왔다.
이날 열린 고양시의회 임시회에서 김수환 전 고양시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이재준 전 고양시장을 향한 질의를 통해 옥류관 유치 상태가 답보상태인 점을 지적했다. 김 전 시의원은 옥류관 분점 유치 사업과 관련해 각종 질문을 던졌다. 그는 “옥류관 운영이 남북평화협력을 위한 노력 일환으로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가 정상화 시발점이 될 수 있도록 고양시가 북한과 교류, 평화경제 지원 시설 유치에 앞장서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했다.
김 전 시의원 질의에 이재준 전 고양시장은 “옥류관 부지는 고양시가 최적지라고 생각하고, 이에 대해선 리종혁 (조선아태위) 부위원장도 이견이 없었다”면서 “우선은 호수나 강을 마주하고 있는 곳에 옥류관이 들어와야 한다는 얘기고, 여기(호수공원 인근 부지)를 택한 것은 경기도와 고양시 협업을 함께 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이 전 시장은 “옥류관 근무자가 150여 분 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근무자 숙소가 별도로 있어야 한다. 여기에 보위부 직원들이 와 있고 옥류관을 운영하면서 근무하는 150명을 관리하며 북한과 하는 사업을 저는 계획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역을 떼어놓고 다른 지역을 생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리종혁 부위원장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방송국, 인프라 이런 것들이었다.”
여기서 이 전 시장이 언급한 보위부는 북한 국가안전보위부를 의미한다. 북한이 사회를 통제하는 목적으로 만든 정보기관 중 하나로 대주민 정치사찰을 담당하는 조직이다. 북한 ‘백두혈통’ 지배체제를 뒷받침하는 핵심 기관으로 꼽힌다. 이 전 시장은 옥류관 유치 계획과 관련해 보위부 직원 상주도 계획에 포함시켰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 전 시장은 리종혁 부위원장과 나눈 상세한 대화 내용을 덧붙였다. 그는 “(리종혁에게) 비상시도 얘기했다”면서 “비상시에 문제 생기면 한강에 그냥 뛰시면 30분이면 개성에 떠내려가시니까 안심하시라. 그리고 매일같이 신선한 채소를 관리인 없이 경의선으로 보낼 때 전용선으로 해줄 수 있는 곳은 일산역이 유일하다. 그래서 여기서 하면 된다고 말씀 드렸다”고 했다.
이 전 시장은 리종혁에게 ‘3·1 항일음악제’ 참석을 권유한 에피소드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이 전 시장은 “우리는 일제강점기 있었던 항일운동가를 다 복원해 놨지만, 김일성을 중심으로 하는 좌파 독립운동가 분들은 우리가 복원을 못했다”면서 “그것을 당신(리종혁 부위원장)이 해주고 함께하는 것이 3·1운동 100주년(2019년) 항일음악제다. 함께 오시라(고 제안했다)”고 했다.
이 전 시장에 이어 관련 질의에 답한 고양시 평화미래정책관은 “옥류관 사업은 남측이 자본을 투입해 인프라를 구축하더라도 북측 음식 제조기술과 식자재로 북측 인력이 수시로 남측으로 왕래해 운영하는 남북경협 형태라고 생각한다”면서 “단순히 남측 인력과 식자재만으로 운영될 경우 그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으며 그저 대형 식당을 운영하는 것에 그칠 것”이라고 했다. 고양시가 북한 인력을 수급해 옥류관을 운영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까지가 2021년 9월 7일 고양시의회 회의 내용 일부다. 2020년 6월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사건, 2020년 9월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등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된 데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북한 국경이 폐쇄된 지 1년 이상이 지난 시점이었다. 고양시 한 관계자는 “사실 대북 관계가 좋지 않았던 시점에 이 정도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질 정도였으니, 고양시가 옥류관을 유치하려는 의지는 진심이었다”면서 “다만 남북관계 경색이 길어지면서 옥류관 분점 유치는 사실상 판타지로 남게 된 상황”이라고 했다.
정보기관 출신 대북 소식통은 “고양시의회 회의에서 언급된 내용처럼 150명 정도 북한 현지 근로자가 국내에서 일하려면 최소 3명, 통상 5명 정도 보위부 직원들이 파견돼야 한다”면서 “보위부 직원들은 주로 매니저급 근로자를 통해 모든 근로자들의 동향을 주시하는 역할과 보고서를 작성하는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함께 파견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소식통은 “보위부도 보위부지만 북한 근로자가 국내에 들어올 경우 정찰총국 산하 직원이 옥류관 직원으로 위장해 근로하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보위부 직원을 포함한 북한 근로자 숙소를 국내에 마련한다는 발상 자체가 상당히 위험할 수 있는 요소”라고 지적했다.
그는 “보위부, 정찰총국 등 위험요소를 배제하더라도 일반 근로자들이 국내에 들어오게 된다면 김일성 사상을 전파하고 은연중에 북한 체제에 대한 친밀감을 높이는 등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면서 “일반 주민을 통해 체제 정당성을 전파하는 이른바 ‘적화 사업’”이라고 했다.
다른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는 통상적으로 레스토랑을 정보활동 거점으로 삼는 방식 공작 패턴을 보이는데, 옥류관이 실제 한국에 들어섰다면 그런 거점이 됐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다”면서 “옥류관 유치 추진 관련 내용을 보면 최근 중국 비밀경찰 의혹으로 화제가 됐던 중식당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의미 있는 거점으로 활용이 가능한 규모로 보인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옥류관 유치 계획은 그럴듯하지만 허무맹랑한 요소가 더 많다. 남북 합작으로 옥류관 유치 추진을 합의한다고 해도 정부가 허가를 내줄 수가 없는 구조”라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최근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 ‘스마트팜 사업비용’, ‘방북비용’ 등은 일시불 현금 전달이다. 그런데 옥류관 분점 같은 경우는 북한에 정기적으로 일정 자금이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캐시플로 역할을 할 수 있다. 로또복권과 연금복권같이 특성이 다르다. 국제사회는 정기적으로 북한으로 돈이 흘러가는 걸 더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정부 차원에서 최종적으로 승인하기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승인할 가능성이 만무한 로드맵이다.”
또 다른 대북 소식통은 “사실 보위부 직원 상주 방안 같은 경우에는 남북 분단 국면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면서 “고양시가 북측에 러브콜을 보내면서 얼마나 유치 의사가 있는지를 강조하는 일종의 수단으로 보위부 직원 국내 상주 계획을 구상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2018년 당시 경기도가 제시한 대북협력 방안은 아태협이 계획했던 로드맵과 거의 흡사하다”면서 “아태협 안을 경기도가 추진하면서 경기도 산하 기초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관련 사업을 유치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경쟁이 심화하다 보니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계획이 기초지자체 내부에서 논의된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