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실리콘 가격 하락 탓 상업 가동 ‘0회’…사우디 법원이 파산신청 기각 투자비용 회수 난망
#‘기대는 컸는데’ 결국 PTC 파산 신청
KCC는 2008년 ‘실리콘 원료·제품의 제조·가공 및 판매’를 사업 목적에 추가하고 폴리실리콘 사업에 진출했다. 폴리실리콘은 태양전지에서 빛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전환시키는 실리콘 결정체들로 이루어진 물질을 뜻한다. KCC는 당시 회사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연간 3000톤(t) 규모의 폴리실리콘 생산 설비를 마련하기로 했다. 또 KCC와 현대중공업이 51 대 49의 비율로 출자한 합작법인 KAM을 설립했다. KAM 역시 연간 3000t 규모의 폴리실리콘을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KCC는 2010년 폴리실리콘 사업 확장의 일환으로 사우디아라비아 회사 MED와 합작 법인 PTC를 설립했다. PTC는 사우디아라비아 현지에 위치한 폴리실리콘 생산 업체로 KCC와 MED가 50 대 50의 비율로 출자했다. 이처럼 KCC는 당시 국내·외 폴리실리콘 사업에 최소 1000억 원 이상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KCC가 폴리실리콘 사업을 차기 성장동력 중 하나로 주목하고 대대적인 투자를 한 셈이다.
정몽진 KCC 회장은 PTC 설립 당시 “이번 합작 투자는 주요 메이저 기업이 주도하는 글로벌 폴리실리콘 시장에서 생산 규모와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 지배력을 강화해 선도 업체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PTC는 정몽진 회장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PTC는 당초 2013년 말까지 사우디아라비아 현지에 연간 3000t 생산이 가능한 폴리실리콘 공장을 건설하고, 2014년에 상업 가동을 실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공장은 예정보다 늦은 2015년에야 완공됐고, 상업 가동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폴리실리콘 가격이 너무 낮아 상업 가동을 실시하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상황이었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KCC는 결국 2018년 PTC에 투자한 금액을 손상차손 처리하는 등 사실상 PTC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다.
KCC는 지난해 말 사우디아라비아 현지 법원에 PTC의 파산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PTC가 제대로 사업을 하지 못해 법인을 존속할 의미가 없었다. 문제는 PTC가 자금을 차입할 때 KCC가 보증을 섰다는 것이다. KCC에 따르면 PTC 관련한 KCC의 금융보증부채는 총 1억 9204만 달러(약 2500억 원)에 달한다. KCC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4673억 원이었다. KCC로서는 부담이 될 수 있는 수준이다.
안 그래도 KCC는 2019년 모멘티브머티리얼스를 30억 달러(약 3조 9180억 원)에 인수하면서 재무 부담이 커진 상태다. KCC의 부채비율은 2018년 말 56.16%에서 지난해 9월 말 150.54%로 94.38%포인트(p) 상승했다. 양다은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KCC에 대해 “주택 및 건설경기 침체 및 글로벌 경기 둔화 등 비우호적인 향후 업황 전망을 감안할 때 단기간 내 대규모 인수 이전의 재무 안정성을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KCC는 PTC 채권단과 협의를 통해 보증부채를 상환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 법원의 PTC 파산 신청 기각이라는 돌발 변수가 생겼다. KCC 입장에서는 PTC가 파산한 후 설비 매각 등을 통해 그간의 투자비용을 조금이라도 회수할 수 있는 쪽이 유리하다.
수익을 내지 못하는 PTC가 유지될 경우 발생하는 법인 운영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PTC 공장이 존재하는 이상 최소한의 관리비와 운영비는 필요하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PTC는 2021년 진행한 사업이 없음에도 446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PTC가 파산하지 못한 채 적자가 이어지면 KCC도 자금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와 관련, KCC 관계자는 “파산이 기각된 이유를 파악하고 (파산을) 재추진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폴리실리콘 사업 실패한 이유는?
KCC와 현대중공업의 합작법인 KAM 역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현대중공업은 2013년 KAM 지분 49%를 무상소각하면서 폴리실리콘 사업에서 철수했다. 이에 반발한 KCC는 소송을 통해 현대중공업으로부터 1176억 원의 배상금을 받아냈다. KCC는 이후 KAM을 흡수 합병했지만 결국 국내 폴리실리콘 사업을 중단하기로 했고, 생산 설비도 매각했다.
KCC가 폴리실리콘 사업에 진출한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는 폴리실리콘 사업의 암흑기로 불리는 시기였다. 폴리실리콘의 가격은 2008년 kg당 400달러(약 52만 원)가 넘었다. 그러나 2009년에는 kg당 100달러(약 13만 원) 아래로 떨어졌고 2012년 이후로는 20달러(약 2만 6000원)도 채 되지 않는 금액에 거래되고 있다. 이 때문에 웅진폴리실리콘, 한국실리콘 등 다른 폴리실리콘 업체도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현재 국내 폴리실리콘 생산 업체는 OCI뿐이다. OCI의 폴리실리콘 생산 능력은 연간 3만 5000t에 달한다. KCC와 규모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또 OCI는 경쟁사보다 상대적으로 빠른 2006년 폴리실리콘 사업에 진출했고, 상대적으로 쉽게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폴리실리콘을 생산하는 OCI 베이직케미컬 사업부는 수년간 적자를 면치 못하다가 최근 들어서야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폴리실리콘 가격이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고, 비중국산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태양광 업계 관계자는 “2008년 전후로 폴리실리콘 제조업체들이 생산 규모를 증설하고, 신규 업체가 진입하는 등 폴리실리콘 생산량이 급증했다”며 “비슷한 시기 폴리실리콘을 적게 쓰거나 아예 쓰지 않는 태양전지가 개발되면서 수요도 줄었고, 경쟁력이 없는 업체는 살아남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