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했던 가치 넘어섰고 팬들 대한 도리 지키려 인수 포기…결과 통보받은 이수만 ‘이길 수 있는데 왜 그만하지’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3월 15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포럼 기조연설을 마치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예상대로 얼마 전 마무리된 하이브와 카카오의 인수전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방 의장에 따르면 하이브가 SM엔터 인수 카드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것은 2019년이라고 한다. 이후 두 차례 공식적인 제안을 넣었으나 거절당했다. 그런데 이번 인수전을 앞두고는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가 먼저 하이브에 연락을 취했다. “이수만이 하이브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항간의 소문은 거짓으로 확인된 셈이다.
방 의장은 “(SM엔터 지분 인수가) 굉장히 갑작스러운 발표 같지만, 저희도 갑작스럽게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의 연락을 받았다. 지분 인수 의향을 묻더라”면서 “짧게 토론한 뒤 이 전 총괄 프로듀서의 지분을 인수하면 평화적으로 인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뒤에 발생한 생각 이상의 치열한 인수전은 예상 밖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결정적으로 하이브가 인수 포기를 결정한 건 SM엔터 인수 금액이 당초 하이브가 예상한 가치를 넘어선 데다 아티스트와 팬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방 의장은 “저희가 처음 인수전에 들어갈 때 (생각했던) 가치를 넘어서는 상황이 벌어졌다. 시장이 과열되고 주주가치를 훼손하고 시장을 흔드는 전쟁으로 가면서 ‘들어갈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하이브나 카카오 모두 아티스트나 팬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인수하려는 것인데, 이를 배려하지 못했다. 인수전 자체는 골치 아프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매니지먼트를 하는 사람으로서 미안했다”고 덧붙였다.
결국 SM엔터는 카카오의 품에 안기게 됐다.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의 지분을 품은 하이브는 2대 주주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를 두고 ‘카카오의 승리’라는 표현에 대해 방 의장은 “인수전을 승패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건 동의하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방 의장은 “아무리 제가 말해도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저희가 들어가면서 SM엔터의 지배구조를 해결하는 데 기여했다는 데 만족한다”면서 “하이브는 팬덤을 한 곳에 모으고 확장시켜 나가는 플랫폼, 인수에서 후퇴하면서 우리 미래의 가장 중요한 축인 플랫폼에 대해 카카오와 협의했다는 측면에서 개인적으로 아주 만족”이라고 밝혔다.
이날 질의응답에 앞선 기조연설에서 방 의장은 플랫폼의 역할을 강조하며, 하이브가 네이버와 손잡고 운영 중인 위버스에 대해 의미를 부여했다. 이후 “향후 SM 아티스트들이 위버스에 입점하냐”는 질문을 받은 방 의장은 “아직 말씀드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빠른 시일 안에 실질적 협업이 되도록 준비 중”이라고 말을 아꼈다.
하이브가 SM엔터 인수전에서 한발 물러서면서, 하이브를 등에 업었던 ‘이수만의 SM’, ‘SM의 이수만’의 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하이브는 카카오와 인수전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합의를 본 뒤 이 소식을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반응을 묻는 질문에 방 의장은 “(이 전 총괄 프로듀서는) 특별히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고, ‘이길 수 있는데 왜 그만하지’가 다였다”고 밝혔다. 향후 하이브가 SM엔터 지분을 유지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실무자들이 돌아오면 길게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방 의장은 K팝 시장의 둔화와 역성장 문제를 화두로 던졌다. 그리고 BTS(방탄소년단)의 부재를 그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멤버들이 개별 활동을 하고 있으나 그룹 활동의 화력만 못하다. 2022년 12월 멤버 진의 입대를 시작으로 입영연기 취소를 신청한 제이홉이 입대를 앞두고 있는 등 당분간 그룹 활동은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방 의장은 “2025년을 (활동재개 시점으로) 정해진 해로 생각 안 해주셨으면 좋겠다”면서 “군대가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다녀온 뒤 준비도 필요하기 때문에 약속된 해는 아니다. 다만 이 희망이 붕 뜬 희망이 아니라 적극 노력하겠다고 양자가 합의한 바고, 하고 싶고, 필요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한편 방 의장은 이날 K팝 시장이 글로벌 무대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주류 시장에서 K팝의 인지도와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다양한 크리에이터가 공존할 수 있는 시스템 개선과 건강한 경영방식이 필요하며 △플랫폼을 개발하고 플랫폼을 품는 음악, 아티스트, 콘텐츠의 경계를 넓혀서 전 세계 팬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주요 K팝 회사들의 글로벌 음반·원 시장 매출 점유율은 2% 미만이다. 반면 유니버설뮤직그룹, 소니뮤직그룹, 워너뮤직그룹 등 3대 메이저 회사의 점유율은 67.4%에 이른다. “K팝 그룹은 골리앗과 같은 메이저 3개 기업들 틈에 있는 다윗과 같다”는 방 의장은 “글로벌 K팝 아티스트는 있지만 걸출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은 아직 없는 현실은 필연적으로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할 산업적 힘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안진용 문화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