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법상 비자금 발견해도 추징금 환수 어려워…검찰 환수 의지 미약 속 언론 추적 보도 빛나
#전두환 손자 폭로 파장
전우원 씨는 3월 13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각종 영상 및 사진 등을 게시하기 시작했다. 영상에서 흰 셔츠를 착용하고 나타난 전우원 씨는 “저는 전두환 전 대통령 손자이자 전재용 씨 아들”이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전우원 씨는 “제 가족들이 행하고 있을 범죄, 사기 행각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 영상을 찍었다”고 설명했다. 전우원 씨는 전두환 일가뿐 아니라 지인들과 관련한 구체적인 신상을 언급하며 이들이 마약 투약, 성범죄 등 각종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3월 15일 전우원 씨는 일요신문과의 메신저 대화에서 아버지 전재용 씨(전두환 씨 차남)에 대해 “미국 시민권자가 되기 위해 법적 절차를 밟고 있다. 법 감시망을 벗어나기 위해 사기행각을 벌이며 지내고 있다”며 “전재만(전두환 씨 삼남)은 현재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서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다.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사업 분야다. 검은 돈 냄새가 난다”고 주장했다(관련기사 ‘깜짝 폭로’ 전두환 손자 메신저 인터뷰 “가족 비리, 내 계좌 추적이 답”).
그는 “제 할아버지(전두환 씨)가 학살자라고 생각한다. 그는 우리나라를 지킨 영웅이 아니라 범죄자일 뿐”이라며 “이 자(전재용)가 미국에 와서 어디 숨겨져 있는 비자금을 사용해 겉으로는 선한 척하고 뒤에 가서 악마의 짓을 못하도록 여러분이 꼭 도와 달라. 저도 죄인이고 제 죄는 달게 받겠다”고 호소했다. 전우원 씨 폭로에 대해 전재용 씨는 언론을 통해 “우리 아들이 많이 아프다”고 했다.
#현행법상 추징금 환수 어려워
1997년 4월 전두환 씨는 내란·뇌물수수 등 혐의로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 원을 확정 받았다. 전 씨가 내란혐의 재판 과정에서 “억울하다. 왜 나만 갖고 그래”라고 한 발언은 지금도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그해 전 씨는 12월 특별사면으로 석방됐으나 추징금 납부를 거부했다. 당시 전 씨가 추징금 2205억 원 중 532억 원을 납부한 뒤 “통장에 29만 원밖에 없다”고 한 것 역시 유명한 일화로 남았다. 532억 원도 자진 납부가 아닌 검찰에서 찾아서 받아낸 추징금이었다.
검찰은 전두환 씨 추징금 환수 시효를 넉 달 남긴 2013년 6월 ‘전두환 일가 미납추징금’ 특별환수팀을 출범시켰다. 앞서 서울, 광주광역시 등 전국에서 추징금 미납분 및 불법재산 환수를 촉구한 데 따른 조치다. 2013년 5월 24일 국회의원 25명은 ‘전두환 전 대통령 은닉재산 진상조사 및 추징금 징수 촉구 결의안’을 공동 발의했다. 국회는 그해 6월 추징금 시효를 2020년까지 연장하는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공무원범죄에 대한 몰수 특례법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특별환수팀은 전두환 일가와 그 친인척을 겨냥해 수십여 곳을 전방위적으로 압수수색하고 수사했다. 전재용 씨가 설립한 소프트웨어개발사 ‘웨어벨리’의 설립자금과 운영방식, 실소유주 등과 관련한 수사도 그중 하나다. 검찰은 웨어벨리에 전두환 씨 비자금이 유입된 사실을 확인하고 회사를 인수한 손삼수 씨로부터 5억 5000만 원을 환수했다. 또 컨설팅 회사 ‘비엘에셋’ 등 전두환 일가가 운영 중인 사업체에 대출해준 저축은행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2014년 10월 특별환수팀은 출범 이후 1년여 동안 추징금 554억 원을 환수했다고 밝혔다.
‘웨어벨리’와 ‘비엘에셋’은 최근 전우원 씨가 비자금 세탁 창구로 지목한 곳이다. 3월 16일 전우원 씨는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비엘에셋’ 지분 20%, ‘웨어밸리’ 비상장 주식들, 준아트빌이라는 고급 부동산이 자신의 명의로 넘어왔다”며 “모두 몇십억 원대 규모”라고 밝혔다(관련기사 [인터뷰] ‘전두환 손자’ 전우원 “내 계좌를 추적하고 처벌하라”).
결국 전두환 일가는 검찰의 전방위적 수사에 백기를 들었다. 2013년 9월 10일 전재국 씨(전두환 씨 장남)는 서울중앙지검에서 “그간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저희 가족 모두를 대표해 머리 숙여 사죄 드린다”고 고개를 숙인 뒤 “부모님이 살고 있는 연희동 자택을 포함해 미납 추징금 1672억 원을 모두 자진 납부하겠다”고 추징금 자진 납부 계획서를 발표했다. 하지만 전 씨 측은 완납 계획에 포함된 연희동 자택 등에 대한 자진 납부를 거부하면서 불복 소송에 나섰다.
이런 가운데 2021년 11월 23일 전두환 씨가 사망하면서 미납 추징금은 고스란히 사회적 빚으로 남았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에 따르면 검찰이 환수한 전두환 씨 재산은 1249억 원이다. 전체 추징금(2205억 원)의 57%로, 미납 추징금은 956억 원에 달했다. 1997년 추징금이 확정된 후 24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절반 가까이 환수되지 못한 셈이다.
현행법상 전두환 씨 남은 추징금을 환수하기는 어렵다. 당사자가 숨져도 재산을 추징할 수 있도록 한 ‘전두환 재산 추징법 3법’이 2020년 발의되긴 했지만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소급 적용을 두고 위헌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현행 형사소송법상 미납 추징금 집행 절차는 당사자가 사망하면 중단된다. 대법원도 2022년 7월 고 전두환 씨 셋째 며느리 이윤혜 씨가 검찰을 상대로 낸 서울 연희동 집 별채 압류처분 무효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압류 자체는 적법하지만, 국고로 환수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3월 16일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도 기자들과 만나 “최근 전두환 손자에 대한 언론 보도를 알고 있고 살펴보고 있다”며 “추징금의 경우 당사자가 사망하면 상속이 안 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추징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전우원 씨의) 발언 내용 중 범죄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보고 있다는 차원이다. 본인이 잘못한 부분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지켜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원석 검찰총장은 문재인 정부 2018년 5월 해외범죄수익환수합동조사단 단장으로서 유력 인사들의 해외 재산 추적에 착수한 바 있다. 전두환 씨 역시 리스트에 오른 주요 인사 중 한 명이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한 고위 인사는 일요신문에 박근혜 정부 시절 전두환 일가 수사 과정에서 부적절한 외압이 있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관련기사 전두환 추징금 새로운 국면…해외 은닉재산 결정적 제보 확인 중).
#검찰, 추징금 환수 의지 있었나
특별수사팀 출범 이전 검찰은 2004년 전재용 씨 조세포탈 사건 수사를 마지막으로 더는 전두환 일가 재산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에 검찰의 추징금 환수 의지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2012년 11월 6일 회의록에 따르면 당시 서영교 민주당 의원은 “언론에 나온 것 뒷북치지 말고, (검찰이) 제대로 먼저 찾아서 ‘우리 이것 찾아냈다’고 언론에 좀 내달라”고 검찰을 추궁했다. 이에 권재진 당시 법무부 장관은 “찾아낸 부분도 사실은 있다. 일일이 언론에 다 안 나와서 그렇다”고 반박했다.
실제 언론은 전두환 일가 재산을 찾아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일요신문도 빼놓을 수 없다. 2004년 일요신문은 전재국 씨가 운영하는 (주)시공사 건물과 인접한 서초동 1628-67 일대 토지가 전두환 씨 본인 명의로 되어 있는 사실을 밝혀내 화제를 모았다. 보도 이후 검찰은 해당 토지에 대한 압류 절차에 들어갔고, 2006년 경매를 통해 1억 2000만 원을 추징했다.
이 밖에도 일요신문은 1996년 ‘전두환 과천 땅 투기 잡았다’(제190호)를 시작으로 △2001년 ‘전두환 손자 10억대 부동산 소유’(467호) △2001년 ‘전두환 16세 손녀도 10억대 부동산 보유’(468호) △2003년 ‘전두환 일가 부동산 최소 200억대’(573호) △2003년 ‘전두환 3남 100억대 빌딩 소유’(574호) △2011년 ‘전두환 장남 재국 씨 70억대 부동산 매입 단독공개’(1004호) △2012년 ‘전두환 장녀 이상한 부동산 거래’(1074호) △2013년 전재국 부인 정도경 2001년 매입 한남동 땅 비밀(1113호) △2015년 ‘전두환 일가 수상한 부동산 공매 단독보도’(1204호) 등을 보도하며 전두환 비자금을 추적해왔다.
검찰은 △2008년 채권 이자 4만 7000원 추징 △2010년 전두환 씨 강연료 300만 원 자진납부 등을 통해 추징금 시효 기간을 3년씩 연장해왔을 뿐이다. ‘재산형 등에 관한 검찰집행사무규칙’에 따르면 3년의 집행시효 안에 압류된 재산을 일부 추징 집행하게 되면 그 시점부터 3년의 추징 시효가 늘어난다.
2013년 6월 3일 뉴스타파는 전재국 씨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를 세워 전두환 씨 비자금을 빼돌렸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검찰에서 페이퍼컴퍼니를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그해 10월 21일 전재국 씨는 국회 국정감사에서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있는 페이퍼컴퍼니 블루아도니스를 설립한 것이 맞다”며 “설립 당시에는 해외신고 의무 여부에 대해서 그 내용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취지로 답했다. 이어 “그 당시 더 깊이 생각해서 예금을 했어야 했는데 송구스럽다.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노태우·전두환’ 대조되는 행보
전두환 일가는 노태우 씨 가족들과도 비교된다. 2013년 6월 노태우 씨 아내 김옥숙 씨는 “사돈과 친척에게 맡긴 비자금으로 미납 추징금을 납부하겠다”며 “추징금 완납은 노 전 대통령 개인의 의미를 넘어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가와 역사에 대한 빚을 청산하는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고 검찰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해 말 노태우 씨는 추징금 2397억 원을 완납했다.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강제 진압 등 과오를 사과하고 반성하는 모습도 보여왔다. 2019년 8월 23일 노태우 씨 아들 노재헌 씨는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한 뒤 사죄의 뜻을 밝혔다. 같은 해 12월과 2020년 5월, 2021년 4월에도 참배를 위해 광주를 방문해서 부친의 과오를 반성했다.
2020년 7월 노재헌 씨는 ‘중앙SUNDAY’ 인터뷰에서 “민주화운동으로 진상이 밝혀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한편으로 마음이 가벼워지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여전히 짐을 벗기 어려웠다”며 “(피해자와 유족들이) ‘이제 됐다’고 말씀하실 때까지 무릎을 꿇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전두환 일가는 사과는커녕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있었다. 3월 16일 전우원 씨는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전두환 씨가 5·18 민주화운동 관련 얘기를 한 적이 있나’라는 질문에 “5·18 민주화운동 관련 얘기나 돈에 관한 얘기는 가족끼리 절대 하지 않는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많아 그런 것들을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마다 돌아온 건 세뇌밖에 없었다. 그들은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폭동이었다’라거나, ‘할아버지는 국가의 영웅이자 아버지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으로 내몰려) 피해자가 됐다’고 가르쳤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