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개선 첫걸음이라는 점은 성공적…가슴에 와닿는 비전 제시해야 국민 마음 열릴 것”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3월 16일부터 3월 17일까지 한일정상회담을 통해 마주 앉았다. 하지만 한일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여론의 시선은 따갑다. 3월 22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데이터리서치가 공개한 여론조사(쿠키뉴스 의뢰, 3월 19~20일 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오차범위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 한일외교에 대한 평가에 대해 응답자 58.6%가 잘못했다고 답했다. 잘했다고 답한 비율은 38.8%였다.
반면 일본에선 한일정상회담 관련 긍정 여론이 부각되고 있다. 3월 20일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3월 17일부터 19일까지 18세 이상 일본 유권자 10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 보도에 따르면 응답자 65%가 한일정상회담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했다.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비율은 24%였다.
3월 21일 윤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한국이 선제적으로 걸림돌을 제거해 나간다면 일본도 호응해 올 것”이라면서 “한일 양국 정부는 각자 자신을 돌아보면서 한일관계 정상화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을 제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 사회에는 배타적 민족주의와 반일을 외치면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한다”면서 “일본은 이미 수십 차례에 걸쳐 우리에게 과거사 문제에 대해 반성과 사과를 표한 바 있다”고 했다. 한일관계 관련 윤 대통령 행보를 받아들이는 여야의 시각은 정반대다.
국민의힘은 국익 확보를 위한 노력이라는 취지로 회담 성과를 부각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굴욕 외교, 굴종 외교, 백기 투항 등 단어를 통해 윤 대통령 외교 행보를 강하게 비판했다.
일요신문은 정치권 최대 화두로 떠오른 한일관계 이슈와 관련해 3월 24일 일본 전문가 최운도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2021년까지 독도연구소장 등을 지낸 최 연구위원은 국내 일본 연구 권위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최 연구위원은 “한일관계가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양국 정치권과 여론에 존재하는 분명한 인식 차이를 인지하고, 현실적인 방법으로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기존 갈등이 있었던 부분은 ‘관리’를 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하면서도 국익과 관련한 부분에선 한일 양국이 미래 가치를 공유할 필요성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최 연구위원과의 문답이다.
―최근 강제징용 관련 ‘제3자 변제안’에 대한 한일합의를 어떻게 바라봤나.
“먼저 한국과 일본이 어떤 인식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에 집중했다. 한일 간 가장 큰 인식 차이는 식민지배 불법성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여기다 일본은 1965년 한일합의를 통해 모든 과거사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 뒤론 한국 측 배상 요구가 관철된 적이 없다. 개인 피해자들의 심정을 이해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일본 측 배상을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한일정상회담은 어떻게 봤나.
“강제징용문제 해결 의지를 보이면서 한일관계 개선을 하겠다는 첫걸음으로서는 만족스러운 성과로 볼 수 있다. 지난 11년 동안 하지 않았던 정상회담을 개최했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윤석열 대통령을 5월 열릴 예정인 G7 정상회담에 초대하겠다고도 했다. 한일관계엔 한국과 일본의 입장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국제사회에서도 유심히 바라보는 부분이다. 일본에선 정상회담 관련 긍정론이 부각되고 있다. 당장 일본 입장이 급하게 선회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한일관계 개선 첫걸음이라는 차원에서 생각해보면 성공적이다.”
―그런데 한일외교 이슈 관련 윤석열 정부 부정 평가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난다.
“각종 한일 갈등으로 인한 감정의 문제로 인한 현상으로 본다. 그렇게 쉽게 변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국민 여론 수렴 절차가 충분하지 못했던 부분도 있다. 하지만 국제 정세 등 현실적인 부분을 바라봤을 때는 한일관계 개선을 통한 국익을 추구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전격적으로 합의에 나선 것엔 정부 자체적 판단도 있겠지만, 국제사회 수요를 충족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국제사회에선 한일갈등보다 중국·북한을 둘러싼 안보 리스크를 더 중요한 이슈로 바라본다. 그 첫 실마리를 한국에서 풀었다는 데는 의미가 있다.”
―일본은 한국에 “골대를 바꾼다”는 표현을 쓴다. 정권마다 바뀌는 한일관계 정책 기조를 비판해 왔다.
“일본 정치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패전 이후 정권교체가 최소화된 사회다. 한국은 수평적 정권교체가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완전한 민주주의국가인 반면, 일본은 그렇지 못하다. 정권이 바뀌는 것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일본은 한국의 대일 정책변화를 신뢰 못한다고 할 게 아니라 한국 정권교체에 따라 정책 변화도 가능하다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식민지배에 반성을 주도하는 자세도 요구된다. 그뿐 아니라, 한국에서 한일관계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정권이 들어섰을 때 관계 개선에 속도를 올리는 융통성도 필요하다.”
―일본 정치권 특징이 궁금하다.
“일본은 야당이 무너지면서 사회 전반에 우익 견제세력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왕으로부터 선사받은 일본이 아름다운 역사를 지녀야 한다는 집착이 있다. 문제 있는 역사를 수용하기 어려운 구조다. 그간 일본은 국제사회 압박이나 외부 충격이 있을 때 의미 있는 입장 변화를 보였다. 우리 정부나 정치권은 이런 일본의 특성을 이해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
―독도, 일본 교과서 문제, 강제징용, 위안부 이슈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한일관계 개선은 시기상조라는 시선이 있다.
“언급한 각종 이슈들과 관련해 일본이 우리 요구에 100% 맞춰 갈등을 해결할 가능성이 있겠나. 이 문제들은 한일관계에 있어 무조건 해결해야 할 문제라기보다 관리해 나가야 하는 부분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우리 정부 입장에선 국익 추구와 갈등 관리를 분리해서 접근하는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지향하기 위한 선결과제는 무엇일까.
“대통령, 외교부 장관 등을 비롯한 정부 주요 관계자들이 주도해 한일관계 개선에 따른 미래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좋은 게 좋은 거다 이런 식 접근이 아니라, 한일관계가 개선됐을 때와 개선되지 않았을 때 차이점을 시각적으로 구체화해 보여줘야 한다. 가슴에 와닿을 만한 비전이 제시 돼야 국민들의 마음이 열릴 것이라 본다.”
―독도연구소장을 지낸 이력도 있는데, 한일관계 협력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일은 상당히 중요하다. 그러나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하면서 한일 양국이 시너지를 창출하는 것도 중요해졌다. 갈등이 있는 부분에 대해선 우리나라 입장을 명료하게 관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일본이 입장을 바꾸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차원에서 갈등을 관리하는 것과 양국이 협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미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투트랙으로 진행해야 하는 요소라고 바라보고 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