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 확정될 경우 KT 당분간 대행 체제 가능성…윤심 업은 ‘낙하산 인사’ 실제로 선임될지 주목
#윤경림 사장의 급작스러운 사퇴 결심
KT 이사회는 지난 3월 7일 윤경림 사장을 차기 대표로 내정하고 3월 31일 주주총회에서 최종 확정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윤 사장이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KT는 당분간 대표 공백이 불가피하게 됐다.
KT 정관에는 ‘대표이사의 유고 시에는 직제규정이 정하는 순서에 따른 사내이사가 그 직무를 수행한다. 대표이사와 사내이사 전원의 유고 시에는 직제규정이 정하는 순으로 그 직무를 수행한다’고 명시돼 있다. 현재 KT 사내이사는 구현모 KT 대표와 윤경림 사장 등 두 명이다. KT는 오는 3월 31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서창석 KT 네트워크부문장(부사장)과 송경민 KT SAT 사장 등 두 명을 새로운 사내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구현모 대표는 일찌감치 사의를 표명한 만큼 서 부사장이나 송 사장 중 한 명이 KT 대표 직무대행을 맡을 전망이다. 차기 대표 선임 절차 등을 감안하면 KT는 당분간 직무대행 체제 경영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윤경림 사장이 당초 구상했던 KT의 비전이나 사업 방향 등도 원점으로 돌아갔다. 윤 사장은 지난 3월 7일 “지배구조 이슈와 과거의 관행으로 인한 문제들은 과감하게 혁신할 것”이라며 “네트워크와 디지털 인프라의 안정적 운용은 국민의 일상과 직결돼 있는 만큼 한순간도 흔들림이 없도록 챙길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대표 직무대행은 어디까지나 대행인 만큼 구체적인 비전이나 투자 방향 등을 제시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김홍식 하나증권 연구원은 “경영진이 교체되면서 향후 수익성 위주 경영 정책·배당 및 주주이익환원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며 “신임 대표의 성향 및 경영 비전이 투자가들에게 인지되기 전까진 혼란한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남중수 전 KT 대표는 2008년 11월 배임수재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면서 대표직을 사임했다. 이에 따라 서정수 당시 KT 부사장이 대표 직무대행을 약 4개월 동안 맡았다. 직무대행 체제로 전환되면서 KT의 당시 현안이었던 KT-KTF 합병, IPTV 투자 등도 당초 계획보다 일정이 미뤄졌다.
KT새노조는 윤경림 사장의 사퇴 소식이 알려진 직후 “KT의 혼란은 걷잡을 수 없게 됐고, 윤 사장이 대표 후보를 수락한 것이 무책임했던 동시에 이제 와서 사퇴하는 것은 비겁하다”며 “(KT 이사회는)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하며 고의의 정도가 있다면 배임 여부에 대해서도 관계당국이 수사할 필요가 있다”고 비판했다.
#KT의 미래는?
통신업계에서는 윤경림 사장이 KT 대표가 내정될 때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대통령실과 여당에서 윤 사장을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은 KT 대표 최종 후보 4인이 선정되자 “KT 내부에서는 구현모 대표가 수사 대상이 되자 사퇴하면서 자신의 아바타인 윤경림 사장을 세우려 한다”고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심지어 대통령실도 KT 대표 선임 과정을 놓고 “공정하고 투명한 거버넌스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시민단체 정의로운사람들은 지난 3월 7일 구현모 대표와 윤경림 사장을 일감 몰아주기와 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KT텔레캅의 일감을 시설관리업체 KDFS에 몰아주고, KT 사외이사에게 향응과 접대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은 즉각 해당 사건을 공정거래조사부에 배당했다. KT는 “KT텔레캅의 관리업체 선정과 일감 배분에 관여한 바 없다”며 “향응과 접대 등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검찰에 사건이 배당된 이상 윤경림 사장도 검찰 수사는 피할 수 없게 됐다. KT 업무에 집중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윤경림 사장은 비단 검찰 조사가 아니더라도 주요 주주의 반대로 대표 선임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KT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은 공식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윤 사장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2대주주인 현대자동차는 “대표 선임은 대주주의 의사를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의 뜻에 따르겠다는 것이다.
통신업계 일각에서는 정치권이 소위 ‘낙하산 인사’ 선임을 위해 윤경림 사장을 압박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KT 대표 공모 당시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 김성태 대통령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자문위원, 김종훈 전 새누리당 의원 등 친여 성향의 인물들이 다수 지원했지만 최종 후보에는 오르지 못했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성명을 통해 “(윤석열 정부는) KT가 자체적인 절차에 따라 결정한 후보를 내쫓고, 만든 자리에는 올드보이들이 줄을 서고 있다고 한다”며 “윤석열 정부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국가 경쟁력을 위한 KT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고, 전리품 나눠 먹기에만 혈안이다”라고 비판했다.
차기 KT 대표와 관련해서는 현재까지 윤곽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KT 대표 후보군 중 외부 인사로는 윤진식 전 장관과 김종훈 전 의원이 소위 ‘윤심’을 받은 인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IT 관련 경력이 없고, 70대라는 고령의 나이도 발목을 잡을 수 있다. KT 대표 지원 자격인 △경영·경제에 관한 지식과 경력이 풍부하고 △기업경영을 통한 성공 경험이 있으며 △최고경영자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갖추고 △정보통신분야의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보유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다. 이들 중 한 명이 KT 대표로 선임되면 윤석열 정부도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또 다른 반전도 있을 수 있다. 윤경림 사장은 이사회에서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24일 현재까지 이를 대외적으로 공표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윤경림 사장이 대표직을 맡기로 마음을 돌릴 가능성도 현재로는 배제할 수 없다. KT 이사회도 윤경림 사장의 사퇴를 만류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 KT 관계자는 “아직 들은 것이 없어서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