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금 400억 원 끌어모아 부동산·슈퍼카 등에 탕진…암호화폐 시장 침체되자 돈 갚으려 ‘폰지 사기’ 행각
한때 캐나다에서 ‘암호화폐 투자의 귀재’라고 불린 에이든 플레터스키(23)의 사기 행각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투자자들로부터 끌어모은 돈을 코인에 투자하기는커녕 유흥비와 사치품 구입에 탕진한 그는 지난해 결국 파산신청을 하고 현재 조사를 받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왜 그에게 거액을 맡겼을까.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플레터스키가 암호화폐 및 외환 투자를 미끼로 끌어모은 돈은 총 4150만 캐나다달러(약 400억 원)였다. 이 가운데 그가 실제 투자에 사용한 돈은 2% 정도인 67만 캐나다달러(약 6억 5000만 원)에 불과했다. 나머지 돈은 모두 슈퍼카나 전용기, 명품시계 등을 구입하거나 혹은 부동산을 매입하는 데 사용됐다. 고급 휴양지로 여행을 떠나거나 요트를 빌리는 데도 흘러들어갔다.
2021년 9월에는 한정판 모델인 ‘맥라렌 세나’를 무려 160만 달러(약 20억 원)에 구입했는가 하면 BMW M8, 포르쉐 박스터, 아우디 e-트론과 S5, 벤틀리 벤테이 등 최소 10대의 슈퍼카를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다이아몬드가 박힌 롤렉스를 비롯해 파텍 필립 등 20만~40만 달러(약 2억~5억 원)가 넘는 고가의 명품시계도 대여섯 개 소유했다.
이처럼 그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동영상과 사진을 보면 그가 얼마나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전용기를 타고 마이애미로 휴가를 떠나거나, 호화 요트를 타고 항해를 나가거나, 바다 위에서 제트스키를 타기도 했다. 또는 친구들과 함께 값비싼 와인과 굴을 먹거나, 콘서트장의 맨 앞줄 좌석에 앉아서 부를 뽐내기도 했다. ‘머신건 켈리’와 같은 유명인사들과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다. 9만 5200명의 팔로어들은 이런 그를 가리켜 진정한 ‘암호화폐의 왕’이라고 치켜세우면서 부러움과 찬사를 보냈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젊은 빌 게이츠’라고 부르기도 했다.
채권자들의 돈은 부동산 투자에도 사용됐다. 현금과 자동차를 보관하고 있던 창고 임대료로 약 36만 2000달러(약 4억 7000만 원)를 썼으며, 온타리오주 벌링턴과 아약스에 위치한 저택을 각각 100만 달러(약 13억 원)와 550만 달러(약 70억 원)에 사들였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에게 지급한 돈도 94만 달러(약 12억 원)에 달한다.
한 피해자의 변호를 맡고 있는 노먼 그루트는 그의 사치 행각을 가리켜 “마치 돈을 불사르듯 써댔다”고 표현했다. 조사 결과 지금까지 피해를 당한 것으로 파악된 사람은 140명이며, 피해액은 총 2000만 달러(약 260억 원)다. 하지만 그루트 변호사에 따르면 이는 빙산의 일각이다. 플레터스키가 폰지 사기를 벌였다고 주장하는 그는 “일부 고객들이 투자한 돈은 다른 고객들을 위한 가짜 수익금으로 사용됐다”면서 “투자자들이 입은 손실은 아마 그보다 두 배는 더 많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렇게 잃은 돈이 전부 회수될지는 불투명하다. 지난해 7월, 암호화폐 시장이 급락하면서 불안에 떨기 시작한 채권자들이 앞다퉈 돈을 돌려줄 것을 요청하자 파산신청을 한 플레터스키는 그때부터 슈퍼카를 비롯한 자산을 하나둘 매각하기 시작했다. 은행 계좌와 카리브해 벨리즈에 개설한 암호화폐 계좌에 있는 유동자산도 전부 처분해버렸다. 그루트는 “채권자들 가운데는 실제 자신의 돈이 거래된 내역을 문서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다. 투자자들은 송금 기록은 가지고 있지만, 그 후에 그 돈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기록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현재 파산 절차를 밟고 있는 플레터스키를 상대로 피해 보상을 제기한 채권자는 29명이다. 가장 먼저 피해를 접수한 사람은 토론토 부동산 중개업자인 사차 싱이었다. 그는 지난해 7월, 자신이 투자한 456만 캐나다달러(약 44억 원)를 돌려받기 위해 플레터스키의 계좌를 즉시 동결해줄 것을 법원에 요청했다.
그가 처음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건 지난해 초였다. 친구의 소개로 2021년 4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플레터스키에게 거액을 맡긴 그는 한 달 뒤 투자금의 일부를 인출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플레터스키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돈을 내주지 않았다. 이에 점점 더 걱정이 되기 시작한 그는 조사를 해보았다. 그 결과 이 20대 청년이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한 은행 계좌 가운데 일부가 거짓이며, 몰래 고급 승용차 몇 대를 처분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결국 의심 끝에 싱은 채권추심을 의뢰했고, 한 달 후 다른 투자자들 역시 자신들이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앞다퉈 동참했다. 많은 사람들이 적게는 수만 달러에서 많게는 수십만 달러까지 투자한 일반인들이었다.
파산 절차가 시작됐지만 그렇다고 돈을 잃은 사람들의 분노가 가신 건 아니었다. 지난해 12월, 플레터스키가 한밤중에 괴한에게 납치됐다 풀려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그의 부친은 “아들은 3일 동안 납치된 후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서 고문과 폭행을 당했다. 그들은 몸값으로 300만 캐나다달러(약 29억 원)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돈을 잃은 일부 투자자들의 소행이라고 의심했다.
그렇다면 평범한 컴퓨터광처럼 보였던 플레터스키는 어떻게 투자자들을 속일 수 있었을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부유하고 교육 받은 엘리트처럼 보이기 위해 소셜미디어(SNS)를 적극 활용했다. 자칭 ‘크립토 킹(암호화폐의 왕)’이라고 홍보하면서 수익을 뽐냈으며, 해외 투자사인 ‘AP 프라이빗 에퀴티 리미티드’를 비롯해 몇몇 투자회사를 운영한다고도 주장했다.
피해자들 가운데 한 명인 다이앤 무어(65)는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을 통해 플레터스키를 소개받았다. 나는 그 청년을 완전히 믿었다”며 허탈해 했다. 손주들의 교육비를 위해 모아두었던 6만 캐나다달러(약 5800만 원)를 전부 맡겼지만 지금 그의 수중에 남은 돈은 1만 캐나다달러(약 950만 원)가 전부다.
당시 플레터스키가 자랑스럽게 제시한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모든 자본 소득은 70(무어) 대 30(플레터스키)으로 배분되며, 만일 투자금 손실이 발생할 경우 초기 투자금을 전액 보장해준다고 했다. 또한 격주로 10~20%의 수익금을 지급해준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동안 한 푼도 받지 못한 무어는 “그가 정말로 투자를 했는지조차 모르겠다”면서 “이 모든 게 그의 계획이었고, 단지 나를 포함해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속셈이었나”라며 분을 삭지 못했다.
플레터스키가 곤란에 처하기 시작한 건 2021년 11월 암호화폐 시장이 침체되기 시작하면서였다. 투자금을 잃으면서 문제에 직면한 그는 기존의 투자자들에게 돈을 갚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서 돈을 빌리는 수법, 즉 폰지 사기를 시작했다. 손실액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와 관련, 플레터스키는 “욕심이 앞섰고, 그래서 점점 더 공격적인 포지션을 취하게 됐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나 그때 그 시점에서는 불가능했던 수익을 추구하다 보니 더 많은 손실이 발생했다”고 털어놓았다. 또한 “2021년 말과 지난해 초에 마진 콜과 투자 실패로 대부분의 돈을 잃었다”고도 주장했다.
그의 변호를 맡은 마이클 사이먼 변호사는 ‘CBC 토론토’에 출연해 “의뢰인에게 돈을 맡긴 사람들의 주장은 상당 부분 과장되어 있다”고 말했다. 요컨대 어린 나이에 많은 돈을 버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 돈을 맡겼지, 결코 이쪽에서 먼저 돈을 요구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이먼은 “놀랍게도 아무도 암호화폐 시장이 폭락할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지, 또는 플레터스키처럼 젊은 사람에게 이런 위험한 투자를 맡겨도 될지를 고려하지 않았다”면서 피해자들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투자에 실패했다’는 주장과 달리 이를 입증할 서류들, 즉 거래 내역 및 은행 명세서를 증거로 제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 내역이 기록돼 있냐는 질문에 플레터스키는 “나는 그렇게 체계적인 사람이 아니다. 때문에 재정 상태를 꼼꼼히 기록해두지 않았으며, 부채나 지불 금액에 대한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플레터스키의 부모도 사실 아들의 범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파산관재인인 롭 스텔저는 부모도 아들의 사기 행각을 통해 110만 캐나다달러(약 10억 원)가 넘는 이익을 챙겼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고급 승용차 두 대와 81만 2000캐나다달러(약 8억 원)의 현금이 포함돼 있다. 다만 부모는 “아들이 성공적인 투자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믿었을 뿐”이라고 말하면서 구체적인 사기 내용에 대해서는 까맣게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플레터스키를 도운 공범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인 콜린 머피(26) 역시 현재 조사를 받고 있다. 그는 플레터스키와 함께 폰지 사기 행각을 벌이는 동시에 홀로 다른 사기를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 주로 투자자들에게 돈을 받아 플레터스키에게 송금해주는 자금 조달책 역할을 맡았지만 이 돈을 중간에서 가로채 탕진한 혐의다.
그의 호사스런 생활은 SNS를 통해 전부 들통이 났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람보르기니를 몰고 다니거나, 눈이 내린 도로에서 메르세데스 벤츠를 타고 시속 250km로 질주하거나, 나사우에서 제트 스키를 타기도 했다. 또한 할아버지의 집에 ‘현금이 가득 든 상자’를 보관하고 있으며, 이 돈은 전부 다른 투자자들을 위해 보관하고 있는 수익금이라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나면서 투자자들이 수익을 현금화해줄 것을 요청하자 머피는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다. 연락하는 횟수가 뜸해지더니 급기야 투자금을 전부 탕진했다고 털어놓았다. 기가 막힌 소식에 온타리오주 오샤와에 거주하는 두 명의 피해자는 지난해 12월, 27만 캐나다달러(약 2억 6000만 원)의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앞서의 피해자 변호인 그루트는 “피해를 입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암호화폐가 상승기에 접어들었을 때 ‘탐욕 또는 흥분’에 휩싸여 플레터스키에게 돈을 맡겼다. 그가 매주를 ‘위닝 위크’라고 부르며 투자자들에게 5~7%의 수익률을 약속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포브스’마저 “온라인 트레이딩 세계를 이해하고 이를 통해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열정적인 젊은 게이머의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부추겼다.
하지만 그루트는 그럴수록 신중하게 접근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만약 말도 안 될 정도로 너무 좋은 것이라면, 그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면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분야에 투자해서는 절대 안 된다. 매주 5%의 이자를 받는 투자는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 23세의 어린 청년이 차세대 빌 게이츠일 리가 없었다. 이렇게 투자할 때는 보수적인 성향인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루트는 파산신청 외에도 투자자들이 돈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은 온타리오 증권위원회에 신고하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는 않다. 그는 “시간이 흘러갈수록 증거가 사라질 가능성은 높아진다. 그리고 그만큼 돈이 회수될 가능성도 낮아진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나마 현금으로 투자한 사람들은 속이야 쓰리겠지만 형편이 나은 편에 속한다. 문제는 대출을 받아 건넨 경우다. 이런 경우 빚더미에 앉게 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그루트는 말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