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고발 아닌 수사의뢰 놓고 김 대표는 ‘위기모면’ 경찰은 ‘시간끌기’ 의구심
4·5 재보궐 선거는 국회의원 1곳(전주을), 교육감 1곳(울산), 기초단체장 1곳(경남 창녕군)을 비롯해 광역의원 2곳, 기초의원 4곳 등 전국 5개 시·도, 9개 선거구에서 실시됐다. 김기현 대표 체제에서 처음 치른 선거에서 국민의힘은 사실상 참패했다.
전국에서 유일한 국회의원 재선거인 전북 전주을에서는 강성희 진보당 후보가 39.07%를 득표해 당선됐다. 국민의힘의 김경민 후보는 득표율 8.0%로 6명 후보 중 5위에 그쳤다. 국민의힘은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 당시 전주에서 15%대를 득표한 바 있다. 약 1년 만에 득표율이 반 토막 난 셈이다.
김 대표로선 울산 기초의원과 교육감 보궐선거 패배가 뼈아팠다. 울산 남구나 보궐선거에서 최덕종 민주당 후보가 50.6% 득표를 기록, 43.39%의 신상현 국민의힘 후보를 따돌리고 당선됐다. 울산시교육감 선거에서도 진보 성향 천창수 후보가 61.94%의 득표율로 보수 성향 김주홍 후보(38.05%)에 승리했다.
전북 전주는 김기현 대표가 취임 후 첫 현장 최고위원회 개최 지역으로 택할 만큼 공을 들였던 곳이다. 울산의 경우 김기현 대표 지역구이자, 시장을 지낸 ‘정치적 고향’이다.
그러자 국민의힘 내부에선 김기현 대표 리더십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김 대표는 당 소속 지자체장인 김영환 충북도지사와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산불 술자리’ ‘산불 골프연습’ 부적절한 행동 및 김재원 조수진 태영호 최고위원의 발언,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당 개입 논란 등 잇따라 터지는 논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도 직면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법 리스크’가 김 대표의 입지를 더욱 좁게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 대표는 현재 울산KTX 연결도로 노선 변경 압력, 대통령실의 전당대회 개입 의혹 등과 관련해 직간접적으로 이름이 거론된다.
우선 전당대회 개입 의혹에 대해서는 안철수 당시 후보 측이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 지난 3월 22일 공수처가 김영호 전 캠프 청년 대변인을 고발인 신분으로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KTX 연결도로 노선 변경과 관련된 수사는 경찰로 넘어갔다. 이 건은 2007년 울산KTX 역세권 연결도로 노선이 당초 계획과 달리 김 대표 소유 임야를 지나도록 휘었고, 이 과정에서 김 대표가 1800배에 가까운 시세차익을 얻었다는 내용이다.
양이원영 민주당 의원이 2021년 10월 의혹을 처음 제기했다. 이후 국민의힘 전당대회 첫 TV토론회에서 황교안 당시 후보가 이 문제를 다시 꺼내들며 ‘후보직 사퇴’를 촉구했다. 안철수 천하람 후보도 “대장동 판박이” “울산 이재명”이라고 가세했다. 민주당에선 양이원영 황운하 의원을 중심으로 ‘김기현 의원 땅투기 및 토착·토건비리 의혹 진상조사 태스크포스(TF)를 가동, 진상규명에 목소리를 높였다.
의혹 제기가 이어지자 김 대표 측은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황교안 안철수 후보, 민주당 양이원영 황운하 의원에 대해 3월 2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수사 의뢰했다. 국가수사본부는 3월 7일 사건을 울산경찰청에 배당했다.
당초 정치권에서는 김 대표 측이 전당대회가 끝나고 같은 당 경쟁자인 황교안 안철수 후보에 대해 수사의뢰를 취하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에 대해서도 여전히 수사의뢰를 해놓은 상태다. 김기현 캠프에서 법률지원단장을 맡았던 김기윤 변호사는 “4명에 대해 수사의뢰를 따로 철회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김 대표 측이 수사의뢰한 대상은 국민의힘 황교안 안철수 후보와 민주당 양이원영 황운하 의원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힘 소속의 2명만 수사의뢰 취하를 하면 정치보복이라는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다보니 황교안 안철수 후보도 취하하지 않은 것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사건 배당은 수사의뢰 5일 만에 신속히 이뤄졌지만, 한 달이 넘도록 수사는 진척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사건은 현재 울산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에서 담당하고 있다.
수사의뢰인에 대한 조사도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윤 변호사는 “경찰이 계속 수사 중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경찰에서 조사를 받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수사의뢰를 받은 안철수 양이원영 황운하 의원 측 관계자들도 “울산경찰청으로부터 따로 연락받은 바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김기현 대표 측에서 고소·고발이 아닌 수사의뢰를 한 점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하는 시선도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김 대표가 울산땅 의혹이 정말 억울하고 결백을 밝히고 싶었으면 고소·고발을 했을 텐데, 왜 수사의뢰를 했는지 모르겠다”며 “고소·고발과 수사의뢰는 조치의 무게감이 다르다. 고소·고발은 형사소송법상 접수한 수사 관계자들이 일정시간 안에 사건을 처리해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하고, 그 결과를 당사자에 통보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고발 주체나 고발기관 모두 부담이 크다. 반면 수사의뢰는 처리기간 및 통보와 관련한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의 야권 관계자는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하려면 먼저 울산땅 의혹이 허위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이에 대한 수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집권여당의 당대표를 경찰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며 “김기현 대표 측도 전당대회 과정에서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수사의뢰를 한 것이고, 경찰 입장에서도 규정이 약한 수사의뢰를 통해 사건을 계속 끌 수 있어 서로에게 윈윈인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김기현 대표는 앞서 2021년 10월에도 해당 의혹을 제기한 양이원영 의원을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지만, 서울경찰청이 ‘혐의 없음 불송치’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김 대표 측이 이의신청을 해 검찰로 넘어갔다. 이 사건 역시 검찰이 처분을 내리지 않고 머물러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양이원영 의원은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검찰도 따로 연락 온 것이 없다”고 말했다.
같은 사건에 같은 혐의로 경찰에서 한 차례 무혐의 처분을 받은 바 있는 만큼, 다시 무혐의 처분이 내려진다면 김 대표는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 이에 고소가 아닌 수사의뢰의 형식을 취했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수사의 속도가 나지 않는 것에 대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한 관계자는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라며 “수사 중인 사안은 말하기가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