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생존자 엄마들 모여 거리 아닌 무대서 투쟁…“배우 꿈꾼 아이 대신 공연” “세월호 잊지 말아 주세요”
노란리본은 세월호 참사 피해자 및 생존자 엄마들로 구성된 극단이다. 세월호 참사 이듬해인 2015년 참사를 겪은 엄마들은 심리 치유를 위해 바리스타 수업을 시작했다. 바리스타 수업이 끝날 무렵, 수업이 끝나면 엄마들이 다시 집 밖으로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다른 것들도 배워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연극도 배우면 재밌겠다’고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은 곧바로 그 다음 주 연극수업으로 이어졌다. 희곡읽기로 시작된 모임은 어느덧 다섯 번째 작품을 공연하는 극단 노란리본이 됐다. 극단 걸판 출신의 김태현 감독이 7명의 엄마들과 함께 연극을 만들어가고 있다.
예진엄마 박유신 씨는 “처음에 연극을 하겠다고 했을 때 가족이 응원을 많이 해줬다”며 “뮤지컬 배우를 꿈꾸던 아이 대신 엄마인 제가 무대에 오르는 것을 아이 아빠가 많이 응원해줬고, 공연도 많이 보러 와줬다”고 말했다. 엄마들이 연극을 하는 것에 대해 응원의 목소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동수엄마 김도현 씨는 “연극을 처음 시작했을 때가 2015년인데 그 당시 세월호 유가족들이 모두 활발하게 투쟁할 때였다”며 “중요한 피켓팅 활동이나 집회활동이 있을 때 연극 공연 일정이 있어서 못 가는 경우가 있다 보니 처음에 연극을 한다고 했을 때 유가족들의 반응이 썩 좋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연극을 하는 것에 대해 일부 유가족들과 입장 차이가 있었으니까 연극 연습이 없거나 공연이 없는 날은 더 열심히 집회활동에 참여했다”고 덧붙였다.
좋지 않은 시선도 많이 받았지만 엄마들은 연극을 통해 4·16을 기억하고, 관객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미경 씨는 “사람들이 우리가 하는 연극을 보고 아파하고, 공감해줬다”며 “공연을 계속 이어가다보니 나중에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도 응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도현 씨는 “우리가 공연하는 것도 하나의 투쟁이고, 우리 아이들과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보여줄 수 있다는 걸 인정받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고 전했다.
연극은 엄마들에게 암묵적으로 강요됐던 ‘유가족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이기도 했다. 무대에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슬픈 모습이 아닌 자유롭게 웃고 노래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었다. 이미경 씨는 “어느 순간 ‘타인이 생각하는 세월호 유가족의 모습을 내가 계속 보여줘야 하는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런 생각을 하니까 제 자신을 슬픔 속에 가두게 되더라”라고 털어놨다. 그는 “연극을 하면서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연극 무대에 올라 춤추고 노래하며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나니까 ‘유가족다움’, ‘피해자다움’이라는 프레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며 “연극이 아니었다면 슬픔과 고통을 어떻게 견디면서 지낼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엄마들이 오른 연극 무대는 벌써 300회가 넘는다. 수많은 연극 공연을 했지만 단원고등학교에서 했던 공연은 엄마들에게 잊을 수 없는 무대다. 김도현 씨는 “단원고등학교는 피해 현장이어서 공연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하지만 공연을 마치고 나서는 정말 단단해져서 우리가 어떤 공연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블랙리스트와 예술검열이 있었던 박근혜 정부 시절 광화문 블랙텐트에서 했던 공연도 엄마들에게 뜻 깊은 무대였다. 블랙텐트는 블랙리스트로 분류된 연극인들이 예술검열에 맞서 세운 임시 공공극장이다. 박유신 씨는 “예술인들이 광화문 광장 텐트에 노란리본을 초청해서 공연을 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며 “롱패딩을 입고, 담요를 둘러도 추운 겨울날이었는데 우리 공연을 보겠다고 줄을 길게 서 있는 걸 보고 너무 감동 받았고 힘이 됐다”고 전했다. 이미경 씨도 “예술인들이 마련한 무대에서 공연을 할 수 있어서 더 특별했던 것 같다”며 “그때 예술의 힘을 많이 느꼈고, 노란리본이 예술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노란리본이 하는 연극은 주로 세월호와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다보니 엄마들이 연극 연습을 하고, 공연을 할 때마다 힘든 마음을 추스르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엄마들은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아달라는 의미로 극단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수인엄마 김명임 씨는 “세월호 진상규명이 될 때까지 사람들 기억 속에서 세월호를 잊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의미로 연극을 하고 있다”며 “관객들이 연극을 통해 세월호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엄마들은 세월호 유가족들 중 연극 활동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영한다고 전했다. 이미경 씨는 “연극을 쉽지 않게 생각해서 선뜻 오시는 분이 없다”며 “저희는 항상 열려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극단 노란리본 김태현 감독 “엄마들 연기 자체만으로 엄청난 울림 줘”
세월호 참사 엄마들과 함께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노란리본)’을 이끌어가는 김태현 감독은 엄마들 사이에서 나오는 불만을 수용하고,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함께 연극을 한 지 벌써 8년째다.
김태현 감독은 안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극단 ‘걸판’과 ‘동네풍경’을 거쳐 현재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노란리본)’을 이끌고 있다. 그는 전문 연극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연극을 시도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마을 극단, 청소년 극단, 실버 극단 등을 만들어 연극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세월호 엄마들이 연극을 하고 싶어 한다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김태현 감독은 “언젠가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연극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것이라고 여겼다”며 “그런데 참사 발생 1년 반쯤 지난 2015년 10월에 엄마들이 연극을 너무 하고 싶어 한다는 연락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갔다”고 말했다.
그는 “막상 가니까 연락을 받은 것과 달리 엄마들이 연극을 하고 싶어하는 모습이 아니어서 엄청 당황했다(웃음)”며 엄마들과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김 감독은 “연극은 어렵지 않고, 재밌고 쉬운 것이라고 엄마들을 설득하면서 연극 수업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엄마들의 웃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며 “세월호 유가족들이 일상에서 웃을 수 있는 기회를 연극을 통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태현 감독은 자신이 그간 경험했던 다른 극단들과 달리 노란리본만이 가진 특별함이 있다고 했다. 김 감독은 “노란리본 배우들은 모두 사연을 가지고 있다. 가끔 연출가로서 손 안 대고 코푼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며 “어머님들을 무대에 올려서 ‘대사를 해주세요’라고 했을 뿐이고, 어머님들이 그 대사를 무대에서 했을 뿐인데 관객들은 엄청난 에너지와 감동을 받는다. 노란리본은 존재 자체가 엄청난 사연을 품고 있어서 어머님들이 무대에서 연기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에게 주는 울림이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태현 감독은 연극인으로서 세월호 엄마들과 함께 연극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연극인들이 굉장히 많고, 안산에서 연극하는 연극인들도 꽤 많은데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저에게 어머님들과 연극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주어져서 어머님들께 너무 감사하다”고 전했다.
김태현 감독은 엄마들과 연극을 하면서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었다고 했다. 김 감독은 “처음에 엄마들과 연극을 할 때 어떤 단어를 쓰면 안 되고 어떤 단어를 쓸 수 있는지, 디렉팅을 어느 정도까지 해도 하는 건지에 대한 곤란함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머님들께 교복을 입혀도 되나’, ‘광화문에서 겪었던 수모를 그대로 대사에 담아도 되나’, ‘어머님들께 나쁜 말을 쏟아내던 사람을 연기하게 해도 되나’ 이런 고민이 많았다”고 전했다.
실제로 엄마들은 단원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무대에 오르고, 본인들이 들었던 비난의 말들을 대사로 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김태현 감독에게 ‘잔인하다’, ‘어떻게 세월호 엄마들에게 교복을 입힐 수가 있냐’ 등의 말들이 돌아왔다. 김 감독은 “어머님들도 본인들에게 나쁜 말을 쏟아냈던 사람을 연기할 때 굉장히 힘들어 하셨다”며 “그게 연극의 한 장면으로 표현됐을 때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머님들과 충분히 같이 소통하면서 이겨내고, 견뎠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태현 감독은 내년에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그동안 창작했던 다섯 개의 작품을 연속으로 공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올해 다섯 번째 작품을 만들어 공연하고 있다”며 “예전에 어머님들이 했던 작품들을 또 보고 싶어 하는 분들도 많아서 내년에는 10주기에 맞춰 그동안 창작했던 다섯 개 작품을 5주 연속으로 공연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