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재판부 “인적분할과 동일한 결과 초래, 의제배당 해당”…투자자 측 항소, 국세청 상대 행정소송 가능성도
#의제배당 포함 여부 두고 치열한 법리 다툼
4월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단독 재판부는 AT&T 투자자들이 대신증권, 삼성증권, 유안타증권, 미래에셋증권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서 원고(투자자) 패소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8월 약 90명의 AT&T 국내 투자자들은 배당소득이 아닌데 증권사가 세금을 징수했다며 12곳의 증권사를 상대로 공동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증권사들이 위치한 권역에 따라 서울중앙지법과 서울남부지방법원으로 재판이 나뉘었는데, 이중 대신증권, 삼성증권, 유안타증권, 미래에셋증권에 대한 서울중앙지법 판결이 처음 나온 것이다. 아직 남부지법 재판은 변론도 열리지 않았다.
앞서 지난해 3월 AT&T는 미디어 사업부를 떼어내 비상장 미디어 자회사인 워너미디어스핀코(스핀코)를 설립했다. 이후 스핀코는 다른 나스닥 상장사인 디스커버리와 합병해 신설법인인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WBD)를 세운다고 발표했다. AT&T는 스핀코로부터 분할 대가로 스핀코 주식을 받았고, AT&T는 AT&T 주주들에게 AT&T 주식 1주당 스핀코 주식 1주 비율로 주식을 분배했다. 이후 디스커버리가 스핀코와 합병하면서 그 대가로 스핀코 주주들(AT&T 주주 포함)에게 스핀코 주식 1주당 WBD 주식 0.24주를 교부했다. 국내 AT&T 투자자들은 주식 배당 기준일인 지난해 4월 5일 이후 스핀코 주식을 받았고, 같은 달 8일 스핀코가 디스커버리와 합병하자 WBD 주식으로 교환됐다.
기획재정부(기재부)는 국내 AT&T 투자자들이 받은 WBD 주식은 소득세법에 따라 의제배당에 해당하며 배당소득세는 시가로 평가해야 한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의제배당은 세법상 현금 배당은 아니지만 현금 배당과 동일하게 주주에게 경제적 이익이 발생했다고 간주하는 것으로 과세 대상이다. 유권해석에 따라 증권사들은 AT&T 투자자들로부터 원천징수 방식으로 세금을 거뒀다. 그러나 일부 AT&T 투자자들은 과세 대상이 아니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에서 핵심 쟁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소득세법 제17조 2항 6호에 따라 AT&T 투자자들이 받은 주식을 의제배당으로 볼 수 있느냐다. 소송을 제기한 투자자 측은 AT&T 주주가 스핀코로부터 주식을 취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의제배당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소득세법에서 명시한 의제배당이 되려면 거래형태가 분할신설법인(스핀코)이 분할법인(AT&T) 주주에게 직접 주식을 교부하는 ‘인적분할’ 형태여야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거래형태는 오히려 분할법인(AT&T)이 일단 분할신설법인(스핀코)의 주식 전부를 취득했기 때문에 ‘물적분할’에 가깝다는 것이 투자자들의 주장이다. 인적분할과는 절차와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증권사 측은 실질적으로 인적분할과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맞섰다. 결과적으로 AT&T 주주들은 스핀코의 주식을 분배받아 스핀코를 100% 병렬적으로 지배하게 됐기 때문에, AT&T가 스핀코를 인적분할한 결과와 동일한 효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따라서 AT&T 주주들이 받은 스핀코 주식은 인적분할 거래를 통해 받은 의제배당의 유형으로 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또 다른 쟁점은 AT&T 주주들이 받은 스핀코 주식이 수익분배 성격이 있는지 여부다. 소득세법은 수익분배 성격이 있어야 배당소득에 해당한다고 규정한다. 투자자 측은 스핀코 주식을 받은 것 자체에 수익분배 성격이 없다고 주장한다. 기업구조 개편에 따라 단순히 주주들의 투자 형태가 바뀌었다는 입장인 셈이다.
서울중앙지법 1심 재판부는 증권사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이 사건 분배 거래의 결과 AT&T가 스핀코를 인적분할한 것과 동일한 결과를 초래했으므로 의제배당에 해당한다고 보이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소득세법에 따른 인적분할로 인한 의제배당과 유사한 경우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이어 “이 사건 분배 거래가 종국적으로는 기업 구조조정의 목적으로 시행됐다고 하더라도 원고(투자자)들에게 인적분할과 경제적 실질이 유사한 소득을 창출한 이상 수익분배의 성격이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국세청 상대 행정소송 가능성도
투자자 측은 4월 18일 서울중앙지법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투자자 측 변호를 맡은 허진영 법무법인 윤성 변호사는 “조세법률주의와 의제배당을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는 판례 법리상 항소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판단했다. 의제배당은 배당이 아닌 것을 배당으로 보겠다는 것으로, 규정하는 문언이 정확해야 한다. 소득세법에는 인적분할로 인한 배당만 배당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확대 해석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향후 투자자들은 세무당국을 상대로 따로 행정소송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당초 국세청은 2020년도 질의회신을 통해 ‘분할법인이 존속하는 경우로서 소각 등으로 주식이 감소되지 않는 스핀오프에 의한 분할의 경우는 소득세법에 따른 의제배당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는데, 기재부가 지난해 다른 해석을 내놓은 셈이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배당소득 원천징수로 인해 종합소득세 세액과 각종 제세공과금이 함께 오르는 효과가 나타난다고 지적한 바 있는데, 이를 문제 삼으려면 국세청을 상대로 따로 행정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한편 최종 판결이 나오면, 유사한 사례에서 국내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배당소득세 징수 여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관련 세법상 규정은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7월 세법개정안 발표를 앞두고 검토 대상에 올릴 안을 이제 막 판단하는 과정이다. 해당 사안도 향후 검토 후 보완 필요성이 있으면 7월 중 결정이 나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