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증거 충분하고 인멸 가능성 크지 않아”…‘성급’ 지적받은 검찰 신중 수사로 영장 재청구할 듯
하지만 압수수색 후 첫 구속영장 청구부터 기각되면서 검찰 수사는 암초를 만났다. 돈을 건넨 전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 강래구 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법원은 “주요 혐의에 대한 증거는 일부 수집돼 있다고 보인다. 증거 인멸 시도는 없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강래구 씨의 진술 확보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검찰은 강 씨 영장을 재청구하는 한편, 민주당 내 돈 흐름을 하나하나 확인해 나갈 계획이다.
#송영길 귀국 “당장 수사 받을 수도 있다”
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에 대한 책임을 지고 탈당 의사를 밝힌 송영길 전 대표. 2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서 만난 취재진들에게 “이런 일이 발생해 국민 여러분과 당원 동지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이면서도 “이제 도착했으니 상황을 파악해보겠다. 제가 모르는 상황이 많이 있다”고 일부 혐의를 부인했다.
송 전 대표는 귀국 전 프랑스에서 만난 취재진들에게도 ‘알지 못했던 일’이라며 선을 그었던 상황. 검찰은 송 전 대표의 발언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송 전 대표의 발언이 ‘정치인의 언론 플레이’인 만큼, 형사 사법 절차 안에서 대응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특수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 출신 변호사는 “원래 정치 관련 수사를 할 때 정치인들의 인터뷰를 예의주시하는데, 그 이유는 소환 조사 등에서 어떻게 변호 전략을 짜고 올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함”이라며 “정치인이 하는 인터뷰는 유권자들에게 하는 말이기에 믿지 않는다. 우리는 증거를 토대로 사실관계를 확인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검찰 측은 “2021년 전당대회에서 9400만 원이 뿌려졌다는 돈 봉투 의혹은 이미 확보한 인적, 물적 증거만으로도 사건의 전말이 드러난 셈”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수사팀은 송 전 대표가 관련 혐의를 지속적으로 부인하고 있는 만큼, 송 전 대표를 빠르게 소환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더 확보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강래구 구속영장 기각에 신중해진 검찰
현재 검찰은 이정근 민주당 전 사무부총장의 휴대전화에서 확보한 녹음파일 내용과 진술 등을 토대로 사실관계를 규명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핵심 피의자인 전 수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 강래구 씨에 대한 첫 번째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약간의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강 씨는 돈을 건넨 쪽이기에 검찰 입장에서는 진술 협조를 꼭 받아야 했던 인물. 하지만 강 씨는 소환 조사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고, 이에 검찰은 영장 청구 카드를 꺼내들었다. 검찰이 적용한 혐의(정당법 위반)는 2021년 3∼5월 민주당 윤관석 의원, 이정근 전 부총장(구속기소) 등과 공모해 전당대회에서 송 전 대표를 당선시키기 위해 총 9400만 원을 살포, 선거인 등에게 금품 제공을 지시·권유하고 직접 제공했다는 것이다.
강 씨는 9400만 원 가운데 8000만 원을 대전 지역 사업가 등으로부터 조달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이 가운데 6000만 원은 윤관석 의원을 통해 같은 당 의원 10∼20명에게 전달됐고, 선거운동 독려 등을 목적으로 지역상황실장들에게 2000만여 원, 지역본부장들에게 총 1400만여 원을 전달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윤재남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4월 21일 강 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을 마친 뒤 “현 단계에서 피의자를 구속할 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각을 결정했다. 윤 부장판사는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압수수색 이후 피의자가 직접 증거인멸을 시도했다거나 다른 관련자들에게 증거인멸 및 허위사실 진술 등을 하도록 회유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수사에 영향을 줄 정도로 증거를 인멸했다거나 장차 증거를 인멸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피의자가 그동안 소환조사에 임해왔고, 주거·지위 등을 감안할 때 도망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요 혐의에 대한 증거는 일정 부분 수집돼 있다고 보이고, 추가로 규명할 부분 등을 감안할 때 현 단계에서 피의자를 구속하는 것은 방어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반발했다. 서울중앙지검은 곧바로 “금품 살포 전체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피의자가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공범들과 말맞추기 및 회유를 시도한 정황이 드러났다”며 “피의자가 대부분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증거인멸 우려가 명백히 인정되는 점을 고려할 때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결정 및 사유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검찰은 다시 영장을 청구하는 방향으로, 보완 수사를 진행 중이다.
영장전담재판부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검찰과 법원이 내놓은 워딩을 종합하면, 검찰은 확보한 증거를 토대로 혐의가 확실함을 강조하는 동시에 증거 인멸 우려가 있으니 구속해야 한다고 법원을 설득했고, 법원은 이에 대해 ‘증거는 충분히 확보됐고, 증거 인멸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며 기각한 셈”이라며 “검찰이 다시 영장을 청구해 받아내려면 증거 인멸 시도를 더 입증하거나, 말맞추기를 하려 한 과정을 더 증명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청구 영장 기각 시 속도 늦어질 듯
사건 첫 구속영장부터 기각되면서 검찰 안팎에서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일단 수사팀은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치는 상황.
하지만 강래구 씨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마저 기각될 경우 정치권의 반발 등 적지 않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윤관석 의원, 이성만 의원을 포함한 나머지 공여자들에 대한 조사에 앞서 공여자 측인 강래구 씨의 진술을 확보하는 게 중요한데, 영장이 기각되면 강 씨가 진술에 협조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의 최대 수혜자이자 최종 책임자인 송 전 대표와 수수자들로 범위를 확대하려던 검찰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민주당 전당대회 당시 돈을 살포한 캠프 측의 의사결정 과정을 수사하는, 전형적인 돈 흐름을 쫓는 사건”이라며 “돈에는 꼬리표가 달려있지 않기 때문에 돈을 건넨 쪽의 진술을 받아내는 게 중요하다. 강래구 씨의 영장이 기각되자 검찰이 즉각 입장문을 낸 것 역시 향후 재판에서 유죄를 받아내는 데 있어 강 씨의 진술 협조가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