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문제 중국 내정이자 핵심 이익, 참견 말라”…국내 정치권 ‘자해 외교’ vs ‘중국 심기경호’ 여야 공방
윤 대통령의 인터뷰 발언은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 검색어 1위에 오를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그만큼 민감한 사안을 언급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중국 당국과 언론은 윤 대통령 발언에 대해 합동 공세를 펼치고 있다. 윤 대통령 인터뷰 발언이 한·중 외교전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윤 대통령 인터뷰는 한미정상회담을 일주일가량 앞두고 보도됐다. 중국 현지에선 이 발언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전개될 ‘양안 문제’ 논의의 예고편이 아니냐는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4월 20일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 발언을 저격했다. 왕 대변인은 “세계에는 오직 하나의 중국만 있다”면서 “대만은 중국 영토 불가분 일부”라고 강조했다. 왕 대변인은 “대만 문제는 순전히 중국 내정이자 중국 핵심 이익 중에서도 핵심”이라면서 “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중국 자신의 일이며, 타인의 말참견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중국 국무위원인 친강 외교부장은 실명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 윤 대통령을 향한 견제 수위를 높이는 발언을 쏟아냈다. 친 외교부장은 4월 21일 한 포럼에 참석해 “최근 ‘무력이나 협박으로 대만해협 현상을 일방적으로 바꾸려 시도한다’는 등 언급을 많이 듣는다”면서 “이런 발언은 최소한의 국제 상식과 역사 정의에 위배된다. (발언의) 논리는 황당하고 결과는 위험할 것”이라고 했다.
친 외교부장은 대만 문제와 관련해 “우리는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면서 “대만 문제에서 불장난을 하는 자는 반드시 타 죽을 것”이라고 했다. 맥락상 윤 대통령을 겨냥한 초강경발언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당국 핵심 관계자들의 ‘강경 발언’에 대해 엄호 사격을 개시하는 양상이다. 4월 23일 환구시보는 ‘한국 외교 국격 산산조각 나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냈다. 환구시보는 “윤석열 대통령이 대만 문제에 부적절한 발언을 한 뒤 한국이 취한 일련의 외교적 조치는 이해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분노를 일으킨다”면서 “한국 외교부는 한국 측이 대만 문제에 개입한 사실에 대해 중국 측에 설명하거나 사과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환구시보는 “한국 지도자가 미국을 방문하기 전 이 같은 발언을 한 것은 미국에 충성심을 보인 거라 해석하게 한다”면서 “중국을 모욕하고 도발해 미국 환심을 사려는 행태”라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4월 24일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윤석열 정부는 외교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만 문제에 예민하지 않다는 것이 자국(한국) 전문가들의 분석”이라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한국은 한미동맹을 강화해 외교적 지위를 높이려 하겠지만, 미국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한국 외교활동 운신 폭을 크게 제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관영 차이나데일리는 사설을 통해 “윤 대통령이 아무리 미국 눈치를 살피려 했더라도 대만 문제를 한반도 비핵화 같은 국제 문제로 규정하는 것은 한국이 준수하기로 한 ‘하나의 중국’ 원칙에서 벗어나 중국 내정에 간섭하고 중국 측 핵심 이익을 훼손하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고 했다.
중국 당국과 언론이 윤 대통령을 향한 파상공세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시진핑 국가주석은 이번 이슈에 직접적으로 참전하지 않고 있다. 4월 25일 정재호 주중대사는 시 주석에게 윤 대통령 메시지를 전달했다. 메시지엔 시 주석 연내 방한을 기대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중국 당국과 언론이 강력한 견제구를 연이어 던지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방한 기대’ 메시지를 보낸 이면엔 복잡한 외교 함수가 얽혀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 한 소식통은 “중국 당국과 엘리트층 내부에선 여전히 본인들을 대국(大國), 한국을 인근 소국(小國) 중 하나로 보는 시각이 주를 이룬다. 사실상 한국을 길들여야 할 대상으로 보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서 “이런 인식을 기반으로 하면 소국 지도자가 대국을 찾아와야 마땅하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나라 대 나라’라는 인식 아래 외교 관례상 시 주석이 한국을 방문하길 기대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소식통은 “그동안 시진핑의 한국 대통령 길들이기는 공개적이면서도 암암리에 이뤄졌다”며 이렇게 말했다.
“시진핑 주석 방한은 2014년 7월이 마지막이었다. 이후 한국 정상은 약 5차례 중국을 방문했다. 2015년 9월 3일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톈안먼(천안문) 망루에 올라 중국 전승절 70주년 기념식을 시 주석 바로 왼쪽에서 관람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중국의 핵심 파트너가 됐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었겠지만, 중국 입장은 달랐다. ‘소국 중 가장 좋은 대우를 해주는 것’이라는 일종의 생색내기용 조치로 풀이될 수 있다. 이후 박근혜 정부가 사드를 도입하며 한중관계가 급랭하기 시작했다.”
소식통은 “문재인 정부 들어선 한국 정부가 중국 측에 친밀감을 표현하지만, 중국 측이 이를 거부하는 인상이 강했다”면서 “2017년 12월 한중정상회담 당시 ‘혼밥 논란’을 비롯한 중국 측 홀대를 비롯해 대통령 수행기자단 폭행 사건에 대해 별다른 항의를 하지 못한 것은 중국의 ‘대국론’을 더욱 굳히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소식통은 “중국 측 외교 당국자가 윤 대통령을 비판하는 상황 역시 대국 지도자가 직접 소국 지도자 발언을 견제할 수 없다는 식 체면치레로 볼 수 있다”면서 “그런데 윤 대통령은 강경 발언에 이어 ‘이번엔 네가 와야지’라는 메시지를 보낸 셈”이라고 했다. 그는 “겉으로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강대강 대치’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지는 말이다.
“한중관계는 상당히 애매하다. 중국은 한국을 향해 중요한 일이 벌어지면 미국 편을 든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중국 역시 중요한 일이 생기면 한국과 북한 사이에서 북한 쪽 손을 들어준다. 인접국이다 보니 수출입 규모가 적지 않아 완전히 척을 지기도 어렵다. 이번 강대강 대치가 향후 양국 외교적 측면, 양국 경제 교류, 국제정세 등 다양한 요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 어려운 국면으로 돌입하는 형국이다.”
국내 정치권에서도 윤 대통령의 로이터통신 인터뷰 발언을 두고 공방이 벌어졌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4월 22일 “윤 대통령이 양안 문제에 부주의하게 발언해 평지풍파를 일으킨 책임이 크다”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과 적대관계를 자초하는 윤 대통령 ‘자해 외교’는 글로벌 중추 국가는커녕 글로벌 외교에서 우리 협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 사태를 대체 어떻게 수습하려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 발언을 비판한 더불어민주당을 역으로 비판했다. 김민수 국민의힘 대변인은 “윤 대통령 발언은 당연한 것”이라면서 “우리나라 공당인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대만 문제 불개입 원칙을 천명하라’고 한 것이 더 기가 막힌 일”이라고 맞받아쳤다.
김민수 대변인은 “이 대표와 민주당은 대한민국 국격이 우선인지 ‘중국 심기경호’가 우선인지 국민 앞에 정확한 입장을 밝혀 달라”면서 “2021년 5월 문재인 전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통해 ‘대만해협에서 평화와 안정 유지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공식화했다”고 반박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