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고용 대신 ‘최저임금 이하 수준’ 부담금 지불 선호…“기금 점점 쌓이는데 적절히 활용 못 해” 지적도
장애인 의무 고용제는 국가‧지방자치단체와 50명 이상 상시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업주가 일정 비율 이상의 장애인 근로자를 의무적으로 고용하도록 하는 제도다. 국가 및 지자체와 공공기관의 장애인 의무 고용률은 전체 근로자의 3.6%이며, 민간기업은 3.1%다. 의무고용 인원에 미달하면 사업주는 미달인원에 따라 고용부담금을 내야 한다. 장애인을 한 명도 고용하지 않은 경우 부담금은 미달인원 1명당 월 201만 580원으로 이는 최저임금에 해당한다. 고용의무 인원의 4분의 1 미만을 고용했을 때는 미달인원 1명당 168만 9800원, 4분의 1 이상 2분의 1 미만을 고용했을 때는 144만 8400원, 2분의 1 이상 4분의 3 미만을 고용했을 때 127만 9420원이다.
민간기업의 장애인 의무고용 이행 비율은 2021년 기준 평균 약 40%다. 상시근로자가 △100명 미만인 기업의 장애인 의무고용 비율은 36.6% △100명 이상 299명 이하의 기업은 52.9% △300명 이상 999명 이하의 기업은 39.2% △1000명 이상인 기업은 32.1%였다. 상시근로자 수로 따졌을 때 가장 규모가 큰 기업들의 장애인 의무고용 비율이 가장 낮게 나타났다. 시중은행에서도 고용률을 달성하지 못해 부담금을 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6곳 주요 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장애인 의무고용 미달로 납부한 장애인 고용 부담금은 총 206억 9000만 원에 달했다.
정부기관·민간기업 등에서 장애인 의무고용을 지키지 않아 낸 고용부담금은 매년 쌓여가고 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장애인 고용부담금 징수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6년 4347억 1800만 원이었던 장애인 고용부담금 징수액은 2022년 7636억 8800만 원으로 늘어났다. 장애인 고용 부담금을 재원으로 조성된 장애인고용기금 여유 자금은 무려 1조 원이 넘는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1월 27일 발표한 ‘2023회계연도 예산・기금운용계획’에 따르면 올해 장애인 고용 기금 규모는 1조 9005억 원이며 이 중 8478억 원이 장애인 고용 지원과 장애인고용공단 운영을 위한 지출로 잡혀 있다. 나머지 1조 527억 원은 여유 자금 운용과 공공자금관리기금으로 예탁된다.
장애인단체 관계자들은 이렇게 쌓인 부담금에서 장애인 의무고용을 유도하기 위한 지출은 적다고 지적한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공단으로 들어오는 부담금에 비해 지출이 많지 않다고 알고 있다”며 “공단에서 장애인 취업 지원을 위한 비용으로 쓰고 있긴 하지만 큰 변화를 위한 대폭 지출은 없어 돈이 계속 묶여 있다”고 말했다. 유진우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대한민국에 누적된 장애인 고용부담금이 작년 기준 1조 원 이상이라고 들었으니 올해는 이보다 더 늘었을 것”이라며 “이 돈이면 장애인들에게 노동할 기회를 주고도 충분할 텐데,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영웅 한국장애인식개선교육원 원장은 “고용부담금은 전국에 있는 모든 기업체가 내고 있고, 계속 산더미처럼 쌓이고 있다”며 “공단에서는 고용부담금으로 장애인들이 다양한 직무에서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일부 사례만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변화하는 사회에 따라 장애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직무개발도 새롭게 해줘야 한다”며 “전문성이 없이 과거에 개발한 발달장애인 바리스타나 장애인 보호 자립장에서 단순 생산품 만드는 직무 등에만 지출이 들어가니까 모이는 고용부담금 대비 지출이 굉장히 적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그는 “돈은 돈대로 쌓이고 장애인 고용률은 크게 올라가지 않고, 기업은 기업대로 ‘부담금 내고 말지’는 식이니까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단의 장애인 직업영역개발사업 추진 현황에 따르면 2022년 개발된 직무로 호텔웰컴패키지관리원, 여행 짐 관리원, 드라마 콘텐츠 발굴원 등이 있다. 하지만 공단이 제공하는 교육훈련 정보를 확인해본 결과 이와 관련된 직무훈련은 거의 없었다. 2001년 0.96%였던 장애인 고용률은 2021년 3.1%까지 늘었지만 20년이라는 기간을 생각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김영웅 원장은 “돈으로만 장애인 고용률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장애인 일자리 창출과 인식 개선 교육에 전문성이 있는 조직과 컨설팅하는 공공기관을 운영해야 한다”며 “이 기관들을 총괄하는 대통령 직속 또는 17개 광역지자체장 직속 장애인위원회가 필요한데, 미국의 경우 이와 같은 기구를 통해 강력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진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사무처장은 “실질적으로 기업이 고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기업에서는 장애인이 어떤 직종에 적합한지 잘 모를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기업에 의무만 주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어떤 직무를 어떻게 줄 수 있는지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사무처장은 “기업에서 받은 부담금으로 인턴제를 확대해 장애인을 고용할 수 있는 기회들을 끊임없이 제공하고, 기업에서 장애인 근로자들이 어떤 직무를 잘 할 수 있는지 파악하도록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용주들은 우리 회사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보고 채용할 텐데 장애인은 ‘업무를 잘 하지 못 할 것이다’라는 오해가 오랫동안 누적돼 있어서 이런 인식 개선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다”며 “많은 기업이 고용률에만 초점을 두고 계약직으로 채용하거나 단기 일자리로 채용하는 등의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전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관계자는 “현행 부담금제도는 장애인 고용률이 낮은 기업일수록 더 많은 부담금을 내도록 설계돼 있다”며 “부담금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서는 연구 중에 있고, 부담금 상향에 대해서는 고용노동부와 같이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업에서 구인을 올려놓고 장애인 근로자를 못 뽑는 경우도 왕왕 있는데 공단 측에서 장애인 고용을 성공했던 사례를 공유하고 직무 분석을 하는 등 컨설팅 지원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