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사업체서 반려견 혈액 90% 독점 공급…국가 관리나 헌혈 문화 정착 필요성 제기
사람처럼 반려견도 교통사고, 빈혈, 외과 수술 등 문제가 발생했을 때 수혈을 받는다. 이때 수혈을 책임지는 개를 '공혈견'이라고 한다. 공혈견은 주기적으로 피를 제공하며 살아간다. 수의학계, 동물권단체 등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대부분 공혈견에게 반려견 수혈을 의존하고 있다. 공혈견이 많은 반려견의 생명을 구하고 있지만 보호제도는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 공혈견 수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 관계자는 “공혈견 수, 관리 등에 대한 실태조사는 이뤄진 적이 없다”고 전했다.
공혈견 보호에 대한 지적은 그간 꾸준히 제기돼 왔다. 2015년 10월 동물권단체 ‘케어’와 동물권행동 ‘카라’가 강원도에 위치한 공혈견 사육장을 직접 찾아가 방치된 동물들의 실태를 폭로하면서 공혈견 보호·관리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동물권 단체들이 공개한 공혈견 사육시설 영상에는 뜬장(공중에 떠 있는 철창)에서 비위생적으로 방치된 공혈견들의 모습이 담겼다.
해당 사육장은 민간 사업체인 한국동물혈액은행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동물권 단체 등에 따르면 한국동물혈액은행은 국내 반려견 혈액 공급의 90%를 차지하며 독점 유통하고 있다. 국내의 각 동물병원에서 한국동물혈액은행에 필요한 혈액을 요청하면 병원 측에서 혈액형 등 혈액 조건에 맞춰 채혈된 공혈견의 피를 동물병원으로 보내준다.
한국동물혈액은행은 2018~2019년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사육장 환경을 개선했다며 현장 사진을 게재했다. 다만 사육 중인 공혈견 수, 나이 든 공혈견 처리 방법 등 정보는 전하지 않았다. 2019년 이후에는 개선된 공혈견 사육 환경이 유지되고 있는지 문의가 쇄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정보를 밝히지 않았다. ‘일요신문i’는 지난해 6월부터 지난 26일까지 한국동물혈액은행 측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지자체는 한국동물혈액은행 운영 방식에 손쓸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 고성군청 관계자는 “두세 달 전쯤 (공혈견 사육 환경 관련) 민원이 많이 들어와 환경부서 등과 함께 (사육장에) 다녀왔는데 개들이 뜬장에 있었지만 사육시설에 대한 법 규정이 없어 불법이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공혈견 사육장이 (업체 소유의) 사유지에 있고 또 공혈견 보호에 대한 법이 없어 우리(지자체)도 적극적으로 관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동물혈액은행의 운영이 계속 논란이 되면서 공혈견 보호·관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수의학계와 동물권 단체는 공혈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실질적인 대책에 대해서는 의견차가 있다. 수의학계는 반려견 헌혈 문화에 동의하지만 당장 공혈견을 없애는 것은 무리라고 조심스레 말한다. 대한수의사회 관계자는 “동물 혈액을 상업적으로 생산하기보다 헌혈 캠페인을 활성화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도 “공혈견 보호가 필요하다는 데 적극 동의하지만, 현재로서는 의료 현장에서 (동물)혈액이 부족해 공혈견을 바로 없애기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동물권 단체는 공혈견 보호·관리 주체를 민간 사업체가 아닌 국가가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영환 케어 대표는 “(한국동물혈액은행에서) 동물혈액 채취와 공혈견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밝히지 않아 자세히 모르는 상황”이라며 “애초에 (공혈견을 통한 혈액 채취를) 민간 사업체에 맡겨선 안 됐다. 국가가 관리 주체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헌혈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헌혈견협회 관계자는 “공혈견을 통한 동물혈액 유통을 반대해 (한국)헌혈견협회를 설립했다”며 “병원에서 혈액을 주문하면 공장에서 찍어내듯 수혈해 (혈액을) 택배로 보내는 시스템이 아닌 건강한 반려견을 통해 (보호자 동의 하에) 헌혈을 진행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