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네이버 등 대화방 직접 들어가보니…“죽고 싶다” “힘내세요” “남성 회원 접근 공포감”
#누구나 입장 가능…‘늦은 밤 카톡’에 공포
‘우울증 갤러리’와의 전쟁이다. 경찰은 우울증갤러리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커뮤니티 일시 폐쇄를 요청했다. 하지만 방심위는 심의 의결을 보류했다. ‘사회적 공감대는 형성됐으나 법적 근거가 미흡하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갤러리를 운영하는 디시인사이드가 “게시판을 차단한다고 범죄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취지로 폐쇄 거부의 뜻을 분명히 해 논란이 커가고 있다.
디시인사이드의 대응을 놓고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크지만 우울증 갤러리만 문제가 아니라는 부분은 상당수가 동의하는 분위기다. 실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이나 네이버 밴드 등에는 우울감을 토로하는 이들의 공간이 여러 개다.
4월 23∼27일까지 일요신문은 대화방 3곳에 머물며 우울증 등을 호소하는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활동 모습을 관찰했다. 20∼30대 청년들이 절반 이상이었는데 신혼부부부터 10대 청소년까지 연령 분포는 다양했다. 적게는 50명, 많게는 400여 명에 이르는 커뮤니티였다.
취업 준비생들이 모인 한 방은 ‘신세한탄’을 콘셉트로 운영된다. 대부분 면접 등 불합격 후기와 심경 등을 공유했다. 구직자로서 나눌 수 있는 일상적인 대화가 많았으나, 그들 중에서도 유독 힘들어 하는 이들은 쉽게 눈에 띄었다.
한 회원은 “5년 동안 일을 안 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며 “이제는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가늠이 되질 않아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의 일본어)가 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루하루가 재미없고 머릿속엔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러자 다른 회원들은 저마다의 공감을 드러내며 “힘내세요”라는 응원 메시지를 줄줄이 보냈다. 이런 식의 대화가 매일 새벽 2~3시까지 이어졌다.
또 다른 커뮤니티는 스스로 우울증을 의심하는 이들이 활동하는 곳이다. 여기는 일종의 규칙이 있다. ‘자살’ ‘자해’ 등의 표현은 쓰지 말아야 한다. 운영진은 “우울감이 채팅방 전체로 전염될 수 있다”며 “누구도 가져선 안 될 생각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400여 명의 회원들은 이 같은 규칙을 철저히 지켰다. 문제는 인원이 너무 많은 탓인지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심리적 고통을 토로하는 소수 회원들이 있었으나 그에게 제대로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 회원은 “수면제를 먹고 잠에 들면 어째서인지 112에 신고해 울먹이는 습관이 있다”며 “이번에는 지하철에서 수면제를 먹고 실수를 해 너무 힘들다”고 했다. 이에 대해 ‘어려서 무슨 트라우마가 있었는지’ 등을 되묻는 사람도 일부 있었으나, 대부분은 무의미한 이모티콘이나 농담 등을 던지며 상황을 넘겼다. 결국 ‘힘들다’고 토로한 회원은 그 뒤로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마음이 불안한 사람들’이 모인 한 커뮤니티는 24시간 대화가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심지어 보이스톡 단체 통화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중·고등학생, 대학생 등 청년, 직장인들의 일상 얘기가 많았지만 밝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각자 힘든 사정들을 나눴는데 온라인 공간에서 흔히 쓰는 ‘ㅋㅋ’ ‘ㅎㅎ’ 등 웃음의 표현은 일체 나오지 않았다. 되레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저를 욕하고 비웃는 것 같다’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위험한 요소도 간혹 보였다. 한 여성 회원은 특정 남성 회원 때문에 힘들다고 불평했다. 그는 “늦은 밤 남성 회원에게 개인 메시지가 따로 오기에 몇 번 인사치레로 받아줬지만 행위가 반복되자 부담스러웠다”며 “나중에는 공포심이 느껴져 연락하지 말 것을 경고하자 ‘왜 예민하게 구느냐’는 등 언어폭력이 시작됐다”고 호소했다.
문제가 된 남성은 스스로 채팅방을 떠났지만 누구든 범죄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구조의 한 단면이었다.
#‘마음의 병’ 아닌 우울증…청소년 보호 방안 절실
우울증은 정신질환으로 분류된다.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이들끼리 공동체를 형성해 서로 공감하고 연대 의식을 갖는 자체는 나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러나 온라인 커뮤니티처럼 익명성에 기댄 불특정 다수가 모이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는 것 역시 공통된 진단이다. 정신질환을 앓는 이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비교해 범죄에 쉽게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청소년처럼 성숙도가 아직 낮은 단계일수록 더 위험하다.
배승민 가천대 길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모든 질병은 같은 질환군끼리 모여 있을 때 일반화를 느끼고 양질의 정보 등을 공유할 수 있어 나쁘지 않다”면서도 “다만 정신질환의 경우 사람의 판단력을 낮추는 만큼 사기를 비롯한 각종 범죄에 취약할 수밖에 없어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바람직하지 않은 판단을 일반화함으로써 여러 사람이 동조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해야 할 부분”이라며 “디지털 공간이 활성화한 현실에서 이들의 공동체 형성을 막을 수야 없겠지만, 부적절한 표현까지 난무하고 무차별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구조는 기술적 개선 등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배승민 교수는 특히 “흔히 정신질환을 마음의 병이라고 여기지만 의학적으로 뇌 질병”이라며 “뇌가 다 성숙한 어른들도 질환에 시달리면 판단력이 떨어질 수 있는데, 하물며 성숙 단계에 접어든 청소년들은 성인들에 비해 그 피해가 더 심각할 수 있으므로 사회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4월 16일 서울 강남에서 투신해 세상을 등진 여고생 A 양은 우울증 갤러리에서 이른바 ‘신대방팸’한테 괴롭힘을 당했다는 의혹이 남아 있다. 신대방팸은 이 갤러리의 특정 무리가 조직한 단체로 알려졌다. 2020년 말부터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의 한 빌라를 근거지로 삼아 일부 회원들을 꾀어내 성폭력 및 마약 등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받고 있다. A양도 그 피해자라는 주장은 아직 온라인상의 풍문이지만 서울경찰청은 입건 전 조사(내사)로 그 실체를 확인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우울증 갤러리 TF팀이 지속적인 사이트 모니터링으로 모든 범죄 의혹에 대해 수사할 방침"이라며 "A 양에 대해서는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를 토대로 범죄 피해 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앱,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