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봉투 사건 치명타 후 민형배 복당 등 악재 겹쳐…역사 짧고 느슨한 친명계 원심력 커질 수도
악재의 연속이다. 당 대표 사법 리스크에 표류하던 민주당이 이번엔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으로 궁지에 몰렸다. 당시 대표로 선출됐던 송영길 전 대표는 민주당을 떠났고, 십수 명의 현역 의원들과 당 관계자들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민주당은 해체 수준 이상의 고강도 책임론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 금품수수 의혹에서 출발한 이 사건의 파장이 어디로까지 번질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점은 민주당으로선 큰 부담이다(관련기사 ‘이정근 폰 속 대어가 줄줄이…’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후폭풍). 검찰은 이 전 부총장 휴대전화, 수첩 등을 통해 확보한 자료들을 면밀히 들여다보며 전당대회 돈봉투 이외에 범죄 혐의가 있는지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의 운명이 검찰 손에 달렸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인천 미추홀에서 발생한 전세사기 사건도 휘발성이 적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여의도 일각에선 민주당 소속 거물급 정치인들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돼 있는 구체적 정황들이 거론된다.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과거 LH 사태처럼 집 문제에 대해선 여론이 민감하게 반응한다. 전세사기에 민주당이 관련돼 있다면 이는 그 어떤 것보다 총선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4월 26일 민형배 의원 복당 소식이 전해지면서 당은 더욱 어수선한 모습이다. 민 의원은 2022년 4월 검수완박 입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탈당한 후 무소속 신분으로 법사위 야당 몫 안건조정위원으로 참여했다. 이를 두고 민주당 강경파는 ‘소신 탈당’이라고 치켜세웠지만 ‘꼼수 탈당’이라는 여론이 우세했다.
민주당은 지난 3월 23일 헌법재판소가 검수완박에 대해 합헌이라고 인정한 것을 민 의원 복당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다수 재판관은 검수완박 입법 과정에서 벌어진 꼼수 탈당이 민주주의 절차를 어겼다고 지적한 바 있다. 헌재 판결을 두고 국민의힘은 ‘술은 마셨는데 음주운전은 아니라고 하는 판결’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민 의원 복당에 대해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쓴소리가 나왔다. 비명계 중진 이상민 의원은 “참 부끄러운 짓인데 복당이라니 기가 막힐 일”이라며 “돈봉투 사건으로 당이 만신창이가 됐는데 추악한 오물을 뒤집어쓴 느낌”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부동산 논란으로 제명을 당했던 김홍걸 의원 복당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친명계로 꼽히는 민주당 한 재선 의원은 “민 의원 복당은 내부에서도 말이 많다. 일부 친명 강경파 세력이 밀어붙인 것으로 들었다”면서 “돈봉투로 시끄러운 마당에 슬그머니 추진한 모양새가 연출됐다. 복당 여부에 대한 판단과는 별개로 시기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본다. 꼭 지금이었어야 했을까”라고 지적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리스크로 민주당엔 위기감이 가득하다. 뉴시스가 의뢰해 여론조사기관 국민리서치그룹·에이스리서치가 4월 22일부터 사흘간 조사해 26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34.9%로 나타났다. 이는 같은 기관의 4월 2주차 조사에 비해 4.1%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돈봉투 사건이 민주당 지지율에 직격탄이 된 것으로 읽힌다(자세한 내용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최근 여론조사기관이 발표한 정당지지율 특징은 무당파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부분이다. 무당파 공략이 내년 총선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앞서의 민주당 재선 의원은 “반대 여론이 높은 민형배 의원 복당으로 무당파가 더 등을 돌릴 것 같다”면서 “총선 전략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고민해야 할 때”라고 했다.
4월 8일 빙부상으로 일시 귀국했다가 18일 미국으로 떠난 이낙연 전 대표 역시 현재의 당 상황을 걱정하며 특단의 대책 마련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 인사들과의 비공개 회동에서 ‘이대로는 총선을 치르기 어렵다’는 취지로 말을 했다고 한다. 이 전 대표 한 측근은 통화에서 “위기를 극복하려면 우선 이재명 대표가 책임을 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나온 발언”이라고 전했다.
이 대표 퇴진론은 그리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사법 리스크가 당을 휘감을 때부터 출구전략 카드 중 하나로 오르내렸다. 당 주류인 친명계에서도 공감대가 높았다. 이 대표가 올해 하반기 2선으로 물러난 뒤 총선을 치르자는, 이른바 ‘단계적 퇴진론’이었다(관련기사 2보 전진 위한 1보 후퇴? 이재명 ‘단계적 퇴진론’ 막후). 여기엔 차기 대권 주자인 이 대표를 보호겠다는 속내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하지만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이후 고개를 드는 이 대표 퇴진론은 결이 조금 다르다. 차기 주자로서의 이 대표 입지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친명 내부에서 이 대표에 대한 회의적 기류가 고개를 들면서다. 송영길 전 대표가 당을 떠나겠다고 선언한 이후 친명 인사들이 “이재명 대표와 비교가 된다”며 아쉬워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친명계는 수적으로 다수이긴 하지만 역사가 짧은 만큼 결속력은 느슨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재명으로의 정권교체’라는 대명제가 흔들리면 계파 내 원심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친명 의원은 “가깝게는 총선, 멀게는 대선을 놓고 계산해본다면 ‘과연 이재명으로 되겠느냐’는 의문이 퍼져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 “이 대표가 정치적 갈림길에 놓여 있는 셈”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