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우울계’ 등 유사 커뮤니티 많아…순기능도 있어 국가 차원 복합적 해결책 필요
#의지할 곳 없어 찾은 ‘우울계’
A 양(18)은 학업 스트레스로 13살 때부터 우울증을 앓았다. 17살 때 학교 상담실을 찾았다. A 양은 또래 학생들과 가족에게 상담받는다는 사실을 숨겼다. 그는 “상담 내용을 부모님께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걱정할 것이고 아빠는 심하게 화를 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는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 한국리서치의 2019년 조사에 따르면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은 존중받지 못한다’는 응답이 83%로 나타났다. 이러한 인식은 정신질환 치료를 가로막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56%는 한 가지 이상의 정신질환을 겪었지만 이들 중 전문기관에서 치료받은 사람은 1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A 양과 같이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부정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의 감정을 공유할 커뮤니티를 필요로 한다. 우울계를 찾는 이유다. 우울계는 우울증을 앓고 있거나 우울감을 느끼는 이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말한다. 주로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서 활성화돼 있다. A 양은 “또래들이 많이 이용하는 인스타그램에서 검색하다 관련 계정들을 접했다”고 말했다.
A 양은 자신의 계정에 우울한 감정을 토로한 글이나 희망적인 문구의 게시물을 올렸다. 자살을 암시하는 게시물을 올린 이용자를 보면 이를 말리는 메시지를 보냈다. A 양은 “어떤 이용자가 실제로 자살 시도를 했고 실패했다. 나중에 저한테 말려줘서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말했다. 메시지로 연락한 이들과 오프라인에서 만나 서로 고충을 털어놓는 경험도 했다. A 양은 “서로 비슷한 감정을 공감해 주면서 해소하다 보니 답답함이 좀 없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우울계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우울한 이들이 서로를 보듬어 주는 공간이었던 셈이다.
#성범죄·자해 충동 등 여러 위험에 노출되기도
문제는 이들에게 악의를 가지고 접근하는 범죄자들이다. 익명을 요구한 B 씨(24·남성)는 “우울계에서 성범죄가 셀 수 없이 많이 일어난다”며 “남성인 저에게도 성매매 제의가 오며 성희롱하는 메시지도 많다. 여성 이용자들은 비슷한 메시지를 셀 수 없이 많이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어 B 씨는 “우울계에서 만난 친구 중 성범죄를 당했다고 털어놓은 사례가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C 씨(35·여성)는 우울계를 탈퇴한 이유가 성범죄 위협 때문이라고 말했다. C 씨는 8년 전 우울한 감정을 공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트위터 우울계 계정을 만들었다. 우울한 감정이나 자살충동 같은 부정적인 내용이 담긴 글을 ‘숨 쉬듯’ 공유했다. 자기 신체 일부를 사진으로 찍어 올리기도 했다. C 씨는 이러한 사진을 올린 이유에 대해 “관심을 받을 수 있고 사진을 올렸을 때 일종의 해방감도 느꼈다. 사진은 금방 삭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남성 이용자가 삭제했던 사진을 모아 C 씨에게 보냈다. C 씨를 특정할 수 있을 만한 정보가 담긴 일상 사진도 있었다. 자신의 신상 유출과 성범죄 피해를 우려한 C 씨는 6개월 만에 트위터 활동을 중단했다.
이웅혁 건국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그런 행동을 하며 범죄자는 재미를 느끼고, 메시지 등으로 치근덕거리면서 계속 괴롭히는 것”이라며 “(SNS라는) 익명성 뒤에 숨어서 또 접근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현숙 탁틴내일 상임대표는 “그런 사람들은 항상 여성들을 성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사냥감으로 바라본다”며 “늘 물색하고 적당한 대상이 나타나면 익숙한 방식으로 이들을 포획한다”고 분석했다.
C 씨는 성범죄 위협 외에도 부정적인 인식이 강화되는 문제점도 있었다고 말했다. C 씨는 “트위터를 이용하기 전부터 자해를 했는데 우울계를 이용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자해하는 사진들을 접했고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자해를 하면 일종의 해방감이 들어서 중독성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울계를 이용한 뒤부터 자해를 ‘숨 쉬듯 많이’ 했다고 말했다. 우울계 활동을 했던 김수현 씨(21)도 “남들이 다 올리니까 그런 것들을 해야 할 것만 같아서 (자해) 강도가 점점 심해졌다”고 말했다.
이병철 한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울증이 오면 강렬하고 자극적인 것들에 대한 감정 반응만 있게 된다. 술, 마약, 고어 영화, 자해 같은 끔찍한 광경이 일시적으로 우울감이나 무기력감을 좀 줄여주기도 한다”며 “그런 것들을 통해서 돌파구를 찾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예산 증액, 커뮤니티 조성 등 복합적인 대책 필요
우울 관련 커뮤니티는 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블로그,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너무나 많은, 관련 사이트를 폐쇄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병철 교수는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끼리 모여 의지하고 위로하는 것이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커뮤니티에) 가는 것인데 이를 폐쇄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이러한 사안에 대해 (국가가) 제대로 된 이해도 없고 정책도 없고 지원도 없는 상황이 더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OECD는 보건의료 예산의 5%를 정신건강 지원 예산으로 편성할 것을 권고하고 있음에도 우리나라는 절반 수준의 예산만 편성했다고 지적하며 관련 예산 증액을 통해 전문적인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SNS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유해 게시물을 사전에 차단하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사전에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는 “방통심의위는 모니터링과 범죄 피해 당사자의 신고를 통해 관련 내용을 인지한 다음 해당 기업에 업무 협조 요청을 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당사자가 범죄를 인지하는 순간 빠르게 신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수현 씨는 모니터링 강화도 필요하지만 범죄자나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이 차단된 온라인 커뮤니티가 가장 필요하다고 했다. 김 씨는 “눈치 보지 않고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건강한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는 게 가장 좋은 해법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현재 우울증이나 자살 시도 경험이 있는 청소년을 돕는 단체인 ‘멘탈헬스코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 씨는 이러한 커뮤니티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강원 인턴기자 fhrmdldl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