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수 나종덕에서 투수 나균안으로…“타석서 잃은 자신감 마운드서 채워”
나균안의 4월은 눈부셨다. 5경기에서 4승 무패 평균자책점 1.34로 무너진 롯데 선발진에서 보석처럼 빛이 났다. 33⅔이닝 동안 자책점은 5점, 이닝당 출루허용률(WHIP)이 0.89 피안타율 0.182로 월간 MVP 후보에도 이름을 올릴 정도였다.
나균안이 2017년 신인드래프트 2차 1라운드(전체 3순위)로 롯데 유니폼을 입을 당시 그의 이름은 나종덕이었고, 포지션이 투수가 아닌 포수였다. 마산 용마고 시절 고교 최고의 포수로 평가받았던 나균안은 ‘포스트 강민호’란 기대를 한몸에 받고 프로 입단 후 대선배 강민호 밑에서 신인 시절을 보냈다.
2017시즌 마치고 강민호가 FA를 통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면서 포수 마스크를 쓰고 1군 경기에 나설 기회가 많아졌다. 하지만 타석에서 기대에 못 미친 모습을 보였다. 2018, 2019년 각각 타율이 0.124에 그쳤다. 타율이 1할대에 머무르자 수비까지 불안해졌다. 나균안은 ‘일요신문’과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야구장 가는 게 무서울 정도였다”라고 설명한다.
“솔직히 1군에 있는 것 자체가 너무 두려웠다. 경기 마치면 팬들이 늦게까지 사인받으려고 기다려주셨는데 당시엔 그런 상황들조차 부담스러웠다. 감독님, 코치님, 동료 선수들한테도 미안했다. 내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 한다는 자괴감이 심해지면서 공황장애가 올 정도였다.”
2020년 호주 스프링캠프에서 나균안은 왼쪽 손목 유구골 골절 부상을 당했다. 재활에만 3개월 이상이 소요되는 큰 부상이었다. 그런데 그때 롯데 성민규 단장은 나균안에게 뜻밖의 제안을 한다. 투수 전향이었다. 나균안은 “단 한 번도 투수로 보직을 바꿀 생각을 해보지 않았던 터라 정말 고민이 됐다”고 설명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투수로 마운드에 오를 거라곤 상상조차 안 해봤다. 포수도 못하는데 투수를 잘할 수 있을까 싶었다. 단장님의 제안이 고맙고 감사했지만 나로선 야구 인생의 ‘도박’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힘든 결정을 했던 것 같다.”
원래 공 던지는 걸 좋아했던 나균안은 고민 끝에 성 단장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부상에서 복귀 후 퓨처스리그에서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처음에는 ‘투타 겸업’을 하며 조금씩 투수에 적응해 나갔고 이름도 ‘나종덕’에서 ‘나균안’으로 개명했다. 물론 처음부터 좋은 모습을 보이긴 어려웠다. 하지만 나균안은 타석이 아닌 마운드에 오를 때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고 한다.
“포수할 때 도루 저지에 자신이 있었던 것만큼 공 던지는 게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타석에서 공을 맞추는 게 더 힘들었다. 마운드에 오르면서 타자로 잃은 자신감이 조금씩 회복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야구장 나오는 게 두렵지 않았다. 출근길이 고통스럽지도 않았다. 그렇게 ‘포수 나종덕’에서 ‘투수 나균안’으로 자리매김해 나갔다.”
2020시즌 퓨처스리그에서 나균안은 투수로 15경기에 출전해 3승 4패 평균자책점 3.29를 기록했다. 투수 전향 초반 최고 구속이 140km/h를 넘어섰다. 그리고 2021년 5월 2일 나균안은 투수 전향 후 처음으로 1군 무대에 올라섰다.
“당시 1군 라커룸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너무 낯설었다. 야구장에 가서 야수조의 배팅 케이지가 아닌 외야에서 투수들이랑 캐치볼하는 것도 어색했다. 포수로 1군에 데뷔했을 때보다 더 긴장을 많이 한 나머지 상당히 들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해 6월 1일 고척 키움전은 나균안이 가장 잊을 수 없는 경기 중 하나일 것이다. 6⅔이닝 동안 3피안타 3볼넷 무실점을 기록하며 팀의 3-0 승리를 이끌었고, 데뷔 첫 승리와 개인 최다 이닝, 최다 투구수(95개), 데뷔 첫 퀄리티스타트 등 각종 개인 기록을 장식했다. 당시 팀이 6연패 중이었는데 나균안이 연패를 끊으며 첫 선발승을 거뒀다. 나균안은 그 시기가 투수로 적응하는 시간이었다고 회상한다. 여전히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게 어색했지만 그 감정들을 잘 추스르고 극복한 덕분에 ‘투수 나균안’이 될 수 있었다.
2022시즌은 나균안이 투수로 보직을 바꾼 지 두 번째 시즌이었다. 나균안은 그해 39경기 출전 3승 8패 2홀드 평균자책점 3.98을 기록했다. 전반기에는 불펜으로, 후반기에는 선발로 나서며 래리 서튼 감독의 신임을 받았다. 그가 이토록 빠른 시간에 투수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투수에 대한 재미와 흥미였다. 그는 구종을 배우고 불펜과 선발로 마운드에 오르며 타자를 상대하는 수 싸움에 관심이 컸다고 말한다.
지난해 후반기에 팀 선배인 박세웅에게 커브를 배운 뒤 비로소 다양한 구종을 선보일 수 있게 된 나균안은 뛰어난 제구력과 커브, 슬라이더, 포크볼 등으로 2023시즌 데뷔 첫 풀타임 선발에 도전하고 있다.
“요즘엔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공격적인 피칭을 하는 편이다. 안타를 맞더라도 빠른 카운트에 맞고, 피홈런이 되더라도 더 공격적으로 마운드를 이끌어 나간다. 덕분에 타자한테 끌려가지 않는 경기를 펼치고 있다. 배영수 코치님이 투수는 몸쪽 공을 던져야 승산이 있다고 조언해주셨다. 나 또한 몸쪽 공을 선호하는 편이다. 얻어맞더라도 몸쪽으로 던지는 걸 주저하지 않아야 투수로 더 큰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4월 말 사직야구장은 만원 관중을 이루며 팀의 상승세를 즐기는 롯데 팬들의 흥겨운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팬들은 나균안을 향해 ‘나덕스’ ‘균안신’ ‘거인을 구한 에이스’ 등 최고의 찬사를 보내며 응원을 펼친다. 나균안은 아직 시즌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여론의 관심과 팬들의 칭찬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중간에 힘든 시기도 있겠지만 그 시기를 최소화하고 다시 올라서는 게 선수들의 몫인 것 같다. 그래야 롯데가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에도 좋은 야구를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야구를 잘하면 선수들도, 팬들도 행복해진다는 걸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