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연승 이후 15년 만의 기록…서튼 감독 “우리는 우승 가능한 팀”
롯데는 이날 키움 히어로즈를 상대로 짜릿한 5-3 역전승을 해내 8연승에 성공했다. 2010년 6월 3~11일 이후 4706일 만의 기록이었다. 롯데는 또 이날 두산 베어스에 패한 SSG 랜더스를 승률 0.011 차로 제치고 선두로 나섰다. 2012년 7월 7일 이후 3949일 만에 단독 1위(10경기 이상 기준)에 오르는 기쁨을 맛봤다.
롯데의 연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광주로 자리를 옮겨 열린 5월 2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7-4로 승리해 9연승을 질주했다. 롯데의 9연승은 창단 후 세 번째. 1992년 6월 2~11일과 2008년 7월 27일~9월 2일(베이징올림픽 개최로 시즌 일시 중단)에 두 차례 11연승을 기록한 뒤 15년 만에 벌어진 '사건'이다. 롯데는 연승 기록을 세운 1992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고, 2008년엔 8년 만에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았다. '구도' 부산의 야구 열기가 다시 후끈 달아올랐다.
#연승의 시작점은?
시작은 4월 20일 목요일 부산 KIA전이었다. 18일 롯데, 19일 KIA가 각각 승리하면서 위닝 시리즈를 걸고 두 팀이 맞붙었다. 이날의 영웅은 왼손 투수 김진욱. 2021년 신인 2차 1라운드에서 지명된 특급 유망주다.
롯데는 1회 2사 2루에서 터진 잭 렉스의 좌월 투런포로 선취점을 얻고, 2회 한동희의 좌중월 솔로포로 3-0까지 앞섰다. 하지만 선발 댄 스트레일리가 3회 사사구 4개(볼넷 3개·몸에 맞는 공 1개)를 남발하며 3실점으로 동점을 허용했다. 롯데가 3회 말 공격에서 4-3으로 다시 리드했지만, 스트레일리는 4회 초 첫 타자 고종욱에게 다시 우전 안타를 맞았다. 그러자 래리 서튼 롯데 감독은 김진욱을 마운드에 올렸다. 그는 주효상의 희생 번트로 이어진 1사 2루에서 박찬호를 중견수 플라이로 처리하고, 류지혁을 삼진으로 돌려세워 위기를 넘겼다. 이어 5회와 6회를 연속 삼자범퇴로 막으면서 3이닝을 안타와 볼넷 없이 무실점으로 책임졌다. 롯데는 5회 말 1점을 더 보태면서 값진 2점 차 승리를 거머쥐었다.
두 번째 승리는 짜릿한 연장 역전승으로 끝났다. 롯데의 새로운 에이스로 거듭난 나균안이 NC 다이노스 타선을 7이닝 3피안타 6탈삼진 2실점으로 막아내면서 승리의 완벽한 디딤돌을 놓았다. 롯데 타선도 잘 던지던 NC 선발 구창모(6이닝 7탈삼진 무실점)가 내려간 뒤 역전에 성공해 나균안에게 승리를 안겼다. 0-2로 뒤진 8회와 9회 1점씩을 보태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고, 연장 10회 전준우의 적시타로 결승점을 뽑았다. 창원에서 열린 '낙동강 더비' 싹쓸이의 서막이었다. 롯데는 22일에도 0-1로 뒤진 3회 5점을 뽑아 승부를 뒤집은 뒤 착실히 점수를 쌓아올려 10-6으로 승리했다. 두산에서 이적한 안권수가 3회와 9회 홈런 두 방을 터트리며 맹활약했다.
23일 창원에서의 마지막 경기는 더 극적이었다. 롯데는 2회와 3회, 6회 각각 한 점씩을 빼앗겨 8회까지 0-3으로 뒤졌다. NC 선발 이용준의 6이닝 무실점 호투와 불펜의 무실점 호투에 틀어막혔다. 그러나 패색이 짙던 9회초, 마운드에 올라온 NC 마무리 투수 이용찬을 상대로 한꺼번에 5점을 뽑았다. 선두타자 황성빈, 안치홍, 렉스의 연속 내야안타로 무사 만루를 만든 뒤 노진혁의 밀어내기 볼넷으로 첫 점수를 뽑았다. 뒤이어 대타 전준우의 타구가 3루수 앞에서 불규칙하게 튀어 오르면서 주자 두 명이 홈을 밟아 동점이 됐다. 이날 2군에서 콜업돼 1군에 올라온 윤동희는 정훈의 고의4구로 이어진 1사 만루에서 침착하게 밀어내기 볼넷을 골라 역전 점수를 뽑았고, 타순이 한 바퀴 돌아 다시 타석에 들어선 황성빈의 중전 적시타로 쐐기 점수를 냈다. 올 시즌 4연승이자 첫 시리즈 스윕이 그렇게 완성됐다.
#몰려들기 시작한 관중
롯데는 여세를 몰아 한화 이글스와의 홈 3연전도 모두 이겼다. 비로 하루 숨을 고른 뒤 열린 4월 26일 첫 경기에선 7회 안타 6개와 볼넷 하나로 한꺼번에 5득점하면서 8-1로 완승했다. 자유계약선수(FA) 미아가 될 뻔했다가 롯데 유니폼을 입고 기사회생한 한현희가 3이닝 만에 강판한 스트레일리 대신 2와 3분의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승리 투수가 됐다. 타선에선 전준우가 3안타로 활약했다.
27일엔 다시 나균안이 '4월 에이스'의 위용을 뽐냈다. 8이닝을 4피안타 7탈삼진 무실점으로 막으면서 6연승을 견인했다. 시즌 4승 째. LG에서 FA로 영입한 유강남이 0-0이던 5회 무사 1·3루에서 우중간 적시 2루타를 쳐 결승타의 주인공이 됐다. 렉스는 6회 솔로 홈런으로 3-0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이날 관중 수는 1만 393명. 마침내 사직구장 평일 야간 경기 관중이 1만 명을 넘기 시작했다.
상대팀이 키움으로 바뀐 28일 금요일 경기도 마찬가지였다. 전날보다 더 많은 1만 4343명이 야구장을 찾았다. 롯데는 2회부터 4점을 뽑으며 팬들의 열정에 화답했다. 2루타 2개 포함 5안타를 한 이닝에 몰아쳤다. 키움이 3회 2득점하며 호시탐탐 역전을 노렸지만, 불펜 신정락-김상수-김진욱-최준용-윤명준-구승민-김원중이 무실점 릴레이 계투로 추격을 봉쇄했다. 경기는 5-2 승리로 끝났고, 롯데는 10년 10개월 만의 7연승으로 1위를 0.5경기차까지 추격했다.
키움과의 다음날 경기는 다시 비로 취소됐다. 비가 롯데의 연승 기운을 꺾을 수도 있다는 예측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시 날씨가 화창해진 30일 일요일, 전날의 비를 원망이라도 하듯 사직구장 만원 관중의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열성적인 응원을 등에 업은 롯데는 키움 에이스 안우진의 벽마저 뛰어넘었다. 안우진은 경기 전까지 평균자책점 0.84를 기록하고 있던 KBO리그 현역 최고 투수다. 롯데는 그를 상대로 먼저 2점을 뽑았다. 2회 1사 만루에서 안권수의 희생플라이로 선취점을 얻었고, 3회 2사 2루에선 안치홍의 적시 2루타로 추가점을 냈다. 안우진(5이닝 2실점)은 올 시즌 처음으로 6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롯데는 5회 초 3점을 내줘 역전을 허용했지만, 7회 말 다시 전세를 뒤집는 드라마를 연출했다. 2사 1·3루에서 키움 투수 김동혁의 보크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렉스는 여세를 몰아 우익선상을 타고 흐르는 역전 적시 2루타를 작렬했다. 다음 타자 전준우도 쐐기 적시타로 화답했다. 롯데 마무리 투수 김원중이 9회를 퍼펙트로 막고 2점 차 승리를 지켜내자 사직구장은 뜨거운 함성으로 뒤덮였다.
롯데 래리 서튼 감독은 "연승을 이어가려는 선수들의 강한 투지와 관중석을 꽉 채운 팬들의 에너지가 합쳐져서 승리를 가져왔다"며 "우리 팀 선수들과 롯데 팬들 모두 정말 대단하다"고 박수를 보냈다. 8연승. 롯데 팬의 시선은 다음 장소인 광주로 향했다.
#9연승 성공과 10연승 실패
KBO리그 최고 인기 구단인 롯데와 KIA의 광주 맞대결은 전국의 관심거리였다. 롯데뿐 아니라 KIA도 5연승 가도를 달리던 중이었기에 더 그랬다. 닐슨코리아가 집계한 이 경기 시청률은 무려 2.245%. 올해 프로야구 경기 중 독보적으로 높았다. 포털사이트 네이버 중계화면에서도 서로 자신의 팀을 응원하는 '광클 전쟁'이 펼쳐졌다. 네이버 아이디로 로그인만 하면 1인당 횟수 제한 없이 계속 누를 수 있어 양팀 팬들이 휴식일인 월요일부터 응원 버튼 누르기 경쟁에 돌입했다. 최종 횟수는 롯데가 5793만 3080회, KIA가 3938만 9546회였다. 5월의 첫 경기에서 맞붙은 두 팀의 '상승세 싸움' 역시 결국 롯데의 7-4 승리로 끝났다. 15년 만의 9연승이었다.
롯데는 이번에도 재역전승을 해냈다. 1-2로 뒤진 2회 노진혁과 한동희가 연속 2루타를 날려 2-2 동점을 만들었고, 계속된 1사 1·3루에서 더블 스틸에 성공하며 3-2로 승부를 뒤집었다. 3회에도 안치홍과 한동희의 적시타로 2점을 추가해 5-2로 달아났다. 6회 2사 후엔 고승민이 2타점 적시 3루타를 날려 사실상 승리를 확정했다.
롯데가 10연승을 앞두자 부산도 덩달아 난리가 났다. 롯데 구단은 광주에 갈 수 없는 팬들을 위해 경기가 없던 사직구장을 개방하기로 했다. 1500여 명의 팬이 야구장 관중석에서 전광판으로 광주 KIA전을 지켜보며 10연승을 기원하는 열띤 '원격 응원'을 보냈다. 다만 롯데는 이 경기에서 2-10으로 패해 기나긴 연승 행진에 마침표를 찍었다. 4월 최고의 투수인 선발 나균안이 4이닝 5실점으로 부진해 시즌 첫 패전을 기록했고, 타선은 KIA 신인 왼손 투수 윤영철을 공략하지 못한 채 침묵했다. 2주에 걸친 연승의 신바람도 잠시 잦아들었다.
서튼 감독은 다음 날인 4일 경기가 비로 취소된 뒤 "경기 후 선수단 미팅을 했다"고 공개하면서 "이번 연승을 통해 '우리는 우승할 수 있는 팀이라는 걸 증명했다'고 얘기해줬다"고 했다. 이어 "이제 우리 팀에게 필요한 다음 스텝은 꾸준함, 지속성이다. 아직 정규시즌은 5개월, 포스트시즌은 6개월까지 남아 있다. 이 경기력을 끝까지 끌고 나가는 게 내 과제"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