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력 사업 부진 탈출·신사업 발굴 필요…‘최대주주’ 박철완 전 상무 입장 주목
재계에 따르면 박찬구 회장은 지난 3일 경영진에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박 회장은 용퇴 후 무보수 명예회장직을 수행할 예정이다.
박 회장을 이어 박준경 사장이 그룹 경영의 전면에 선다. 2007년 금호타이어에 입사한 박준경 사장은 2010년 금호석유화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2021년 6월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지난해 7월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사내이사로 선임되며 3세 경영 체제를 예고했으며, 지난해 말 사장으로 승진했다.
금호석화를 이끌어갈 박준경 사장에게는 몇 가지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먼저 업황 악화로 인한 실적 부진에서 벗어나야 한다. 금호석화는 코로나19 수혜를 톡톡히 본 기업으로 꼽힌다. 주 사업은 ‘합성고무’ 부문으로 전체 매출의 30%를 차지한다. 주력 제품은 ‘NB라텍스’로 의료용·조리용 장갑 소재로 쓰인다. 금호석화는 2021년 매출이 전년 대비 2배가량 성장하는 성과를 거뒀다. 같은 해 2분기부터 지난해 2분기까지는 5분기 연속 분기당 2조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금호석화는 이 기세로 지난해 대대적인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기존 주력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향후 5년간 약 3조 3000억 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금호석화는 당시 “라텍스 장갑이 엔데믹 시대에서도 마스크와 함께 대표적인 의료·위생 제품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금호석유화학은 NB라텍스의 기술 및 생산능력에 대해 초일류 메이커로서 격차를 더욱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코로나19 엔데믹으로 수요는 빠르게 줄어들었고 공급 과잉으로 이어졌다. 늘어난 공급업체 간 경쟁도 심화했다. 결국 지난해 3분기부터 매출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금호석화의 올해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조 7213억 원, 1302억 원이다. 직전 분기보다는 반등했지만 전년 동기 대비로는 각각 21.7%, 71% 감소했다. 주 사업인 ‘합성고무 부문’의 매출 부진이 가장 뼈아프다. 해당 사업 부문은 올해 1분기 매출 5764억 원, 영업이익 336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7.4%, 71.5% 크게 줄었다.
전문가들은 금호석화의 올해 실적을 보수적으로 점치는 분위기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바닥 다지기 해다. 2개년 연속 감익이 불가피하다. 올해보다 내년을 봐야 할 것”이라며 “2023년 실적은 매출 7조 1000억 원에 영업이익 4487억 원으로 예상된다. 영업이익은 올해에도 감소가 불가피하다. NB라텍스와 ABS의 글로벌 수요는 모두 증가할 것으로 보이지만 공장 증설에 따른 공급 과잉 압박이 여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경쟁사들도 화학 부문 실적이 안 좋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경쟁사들은 오래전부터 신사업을 발굴했고, 이들이 주력 사업으로 자리 잡아 가면서 전체적인 실적 방어에 성공했다.
LG화학의 경우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22.8%가 감소했지만, 이차전지 부문이 주력사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년 동기 대비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100% 이상 성장했다. LG화학의 영업이익 7910억 원 중 80%인 약 6332억 원을 LG에너지솔루션에서 만들어 냈다.
한화솔루션도 신재생에너지 사업 매출 비중이 꾸준히 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부문은 2020년 이미 전체 매출의 52.43%를 넘기며 주력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그 비중은 지난해에는 56.52%까지 상승했다. 한화솔루션의 올해 1분기 실적을 들여다보면 케미칼 부문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86.9% 줄었지만, 신재생에너지 부문이 3분기 연속 최대 영업이익 기록을 갈아치우며 전체 실적 방어에 도움을 줬다.
롯데케미칼도 신사업 육성에 한창이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영업손실 약 7626억 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경쟁사들과 마찬가지로 기초소재 사업 부문에서 영업손실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롯데케미칼은 이차전지∙수소에너지∙리사이클 등 신사업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올해 3월 음극재 소재인 동박 생산기업 ‘일진머티리얼즈’ 인수에 성공했다. 윤용식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일진머티리얼즈 실적이 2분기부터 반영되면 흑자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점쳐진다”고 전망했다.
반면 금호석화는 신사업 발굴 대신 리조트 인수를 선택했다. 2021년 4월 금호리조트를 품었다. 금호석화의 공격적인 투자로 금호리조트는 인수 첫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지난해에도 실적은 우상향해 매출이 200억 원가량 상승해 약 976억 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약 17배 상승한 87억 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주력 사업으로 자리 잡은 경쟁사들의 신사업 실적에 비하면 부족해 보인다.
금호석화는 지난해 ESG 체계 구축과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약 2조 7000억 원을 투자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성과가 나오는 데는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대외적으로 발표한 구체적인 신사업 계획은 현재로선 없다. 화학업계 한 관계자는 “금호석화는 아예 주력 사업과 무관한 새로운 사업을 찾기보다 주력 사업을 이차전지, 전기차 사업 등과 접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가령 CNT(Carbon Nanotube, 탄소나노튜브)는 이차전지 소재로 쓰일 수 있겠고, EP(Engineering Plastics)는 전기차 경량화 소재로 활용할 수 있다. 기존에 하던 것을 더 잘하자는 게 이들의 계획인 듯하다”고 평가했다.
박준경 사장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 ‘형제의 난’이다. 금호석화 최대주주는 박철완 전 금호석화 상무로 지난해 기준 지분 8.87%를 소유하고 있다. 물론 박찬구 회장(6.96%), 박준경 사장(7.45%), 박찬구 회장 딸인 박주형 부사장(1.01%)의 지분을 모두 더하면 15.42%로 박 전 상무 가족 지분보다 4.85%가 많다. 하지만 박 전 상무는 최대주주 지분을 앞세워 2021년과 2022년 연달아 경영진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왔다. 올해 주주총회에서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지만 박 전 상무가 최대주주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한 언제든 문제가 불거질 우려가 있다.
앞의 관계자는 “여러 상황 탓에 현재 박철완 전 상무가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며 “하지만 경영권 분쟁이 완전 끝났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으며 지분을 처리하지 않는 한 분쟁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내다봤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