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체제 등장하면서 이철규·박성민 부각…좁은 인재풀과 견제기능 저하로 인한 부작용 우려
#윤핵관 4인방, 지금은
이준석 대표 체제가 끝나고 새 지도부를 구성하기 위한 국민의힘 전당대회 국면이 무르익기 시작했던 2022년 11월 말,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소속 4명의 현역 의원을 부부 동반으로 서울 한남동 관저에 초청해 만찬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참석자는 권성동 장제원 윤한홍 이철규 의원이었다.
정치권에서는 “역시 윤핵관”이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한남동 관저 입주 후 국내 정치권 인사 중 첫 초대 손님이라는 의미가 부여됐고, 윤 대통령이 여전히 여당의 구심점으로 이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부부 동반 모임이었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과 이들의 친밀도가 얼마나 높은지 보여준다는 말도 이어졌다.
‘윤핵관’으로 불리는 이들 4명 의원은 윤 대통령의 정계 입문, 당내 대선 경선 및 대선 과정, 당선자 시절,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확실한 측근 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들이 인사를 비롯한 여러 부문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고, 2022년 11월 말 만찬 모임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윤 대통령과 여당의 연결고리는 윤핵관이고, 윤 대통령이 이들을 가장 신뢰한다는 데 정치권 이견은 없었다.
그러나 전당대회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윤핵관 그룹에 미묘한 변화 움직임이 감지됐다. 윤핵관 ‘맏형’이라 불리던 권성동 의원이 당대표 출마를 준비하는 상황에서 권 의원과 형제라고 여겨지던 장제원 의원이 김기현 의원을 미는 이른바 ‘김장연대’가 만들어졌다. 이어 권 의원이 갑자기 뜻을 접었다. 윤핵관 중에서도 투톱이라는 이들이 사실상 헤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윤핵관 그룹 분화는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투톱’ 장제원 권성동 의원은 일단 예전보다는 후선으로 내려앉았고, 윤한홍 의원 역시 최전방에서 한 발짝 떨어져있는 모습이다. 당연히 이들의 목소리도 작아졌고 언론의 주목도 역시 과거보다는 많이 떨어졌다.
반면 이철규 의원이 사실상 원톱으로 올라서 있는 모양새다. 이 의원은 김기현 대표 체제에서 사무총장직을 거머쥐었다. 사무총장은 내년 총선 공천 실무를 책임지는 핵심 직책이다. 이 의원은 여러 현안에 대해서도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 의원은 5월 9일 MBN ‘정치와이드’에 출연해 “(대통령실 참모의) 대거 낙하산 공천설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며 “믿어도 된다”고 자신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윤핵관으로서 대통령실 메시지를 담아 발신하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보여줬다. 이 의원은 태영호 의원의 ‘대통령실 공천개입 의혹’ 설화와 관련해 5월 4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본인이 있지도 않은 말을 함으로써 결국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대통령실은 전혀 책임이 없다는 결론을 내려주는 역할까지 이 의원이 맡은 셈이다.
이철규 의원 외에 김기현 체제에서 전략기획부총장으로 임명된 울산 출신 박성민 의원도 최근 윤핵관으로 재조명받고 있다. 박 의원은 울산 중구청장으로 재임했을 당시 대구고검에 가있던 윤석열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준석 전 대표의 비서실장으로 있다가 이 전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의 갈등이 깊어지자 사퇴, “확실한 윤핵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 박 의원이 다시 보폭을 넓히는 모습이 당내에서 확실히 감지된다는 게 복수 의원들의 전언이다.
#측근 그룹 변화 왜?
정치인 생활을 오래 한 역대 대통령들과 달리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을 그만둔 지 1년여 만에 대통령에 당선, 윤핵관이 있다고는 하지만 오랜 측근 그룹이라 할 수 있는 배후 정치세력은 없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서 불꽃 튀는 경쟁을 벌였던 이명박 박근혜 당시 후보들만 해도 엄청난 규모의 지지 세력이 결집하면서 자연스레 친이·친박계가 형성됐다. 세 대결이 치열했던 만큼 당선 지분을 노린 정치세력이 후방에 두텁게 자리 잡게 되고, 이명박 박근혜 집권기 내내 두 세력은 치열한 당내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정치에 입문하자마자 일찌감치 일반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승기를 잡으면서 당내 후원세력을 넓히는 작업에 큰 힘을 기울이지 않고도 홍준표 현 대구시장,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현 국토교통부 장관 등 당내 터줏대감들을 비교적 손쉽게 따돌렸다.
결국 현재 여당 내부에서 윤석열 정부에 정치적 지분을 요구할 만한 세력이 없고, 윤 대통령 스스로도 여당에 채무의식이 없기에 임기 초반 측근 그룹으로 분류됐던 그룹은 자연스레 의결권 없는 주주로 파악되는 중이다. 윤핵관의 해체형 분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의미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김기현 대표 체제로 당 지도부가 꾸려졌고 이철규 의원이나 박성민 의원이 당직을 맡으면서, 이들이 새로운 핵심 세력으로서 더 눈에 띄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의원이 경찰청 정보국장 등을 지낸 경찰 고위직 출신이라 상황 판단이 빠르고, 박 의원도 바닥 민심을 잘 읽는 자치단체장 경력을 지녀 사안을 넓게 보는 장점을 소유하고 있다. 이런 점으로 인해 당과 대통령실을 연결하는 고리로서 주목받고 있는 것 같다. 윤핵관이 잘 안 보인다는 얘기도 있지만 다음 자리로의 도약을 위해 잠시 2선 후퇴를 하고 있을 뿐 정치적 힘을 완전히 잃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부터 전화를 많이 돌리면서 조언 그룹을 많이 뒀고 현재도 새벽부터 전화기를 들 만큼 여러 의견 수렴에 열심이지만, 이 그룹에 대한 변화도 주는 것으로 전해졌다. 측근 조언 그룹으로 여겨졌던 인사들이 윤 대통령에 대한 비판 수위를 올리는 것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윤 대통령의 멘토’로 꼽혔던 신평 변호사는 윤석열 정부 집권 1년에 대해 5월 4일 자신의 SNS에 “과연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1년간 제대로 역할을 했는지 의문”이라며 “국민 지지율에서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외관이 그 뚜렷한 징표다. 많은 국민은 새 정부 출범에 걸었던 희망이 배신당하는 씁쓸함을 느끼며 등을 돌리는 것이 현실이 아닐까”라고 지적했다.
신 변호사는 핵심 원인으로 ‘상상력의 빈곤’을 지목하면서 “지난 정부 폐단을 지적하는 목소리만 컸지 과거와 결별하는 미래의 소중한 아젠다를 별로 제시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윤 대통령에 대해 원래부터 비판적이었던 유승민 전 의원이나 이준석 전 대표 외에도 대통령실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 발언을 냈던 안철수 의원, 홍준표 대구시장도 발언의 결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안철수 의원은 5월 8일 SNS를 통해 “윤석열 정부가 변하지 않으면 총선 승리 없다”며 변화 없는 국정을 질타했고, 홍 시장은 5월 10일 대구시장 집무실을 방문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정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대통령실에 있다”고 지적했다.
#힘의 축은 어디로
‘직진’을 선호하는 윤 대통령은 국회 소수당인 집권여당 역할보다는 행정부에 힘을 싣고 부처의 정책 집행 드라이브를 통해 자신의 지지율을 최대한 견인, 내년 총선을 기점으로 국면 전환을 노릴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국무위원들에게 “지시를 따르지 않는 관료 사회에 대해서는 과감한 인사조치를 하라”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는 등 업무수행에 대한 부처 전반의 경각심을 촉구한 것만 봐도 가시적 국정 성과에 주력하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여당이 평균 타율만 유지해주면 대통령실 주도 하에 내각이 국정수행 전반에 더욱 고삐를 죄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윤석열 정부 최전방 공격수로 평가받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나 원희룡 국토부 장관의 움직임이 더 바빠지고, 공격수로 적합하지 않은 장관들은 조만간 개각을 통해 교체될 것이 유력하다. 야당의 공격에 주눅들지 않을 만큼 의견이 분명하고 추진력이 강한 인사들의 장관 기용이 점쳐지는 것이다.
하지만 인재풀을 과연 넓게 쓸 수 있느냐에 대해선 회의적 시선이 많다. 윤석열 정부 인사에 대해 ‘검사 일색·특정 학교 쏠림’이라는 비판이 많았는데 또다시 이러한 결과치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인재풀이 좁을 경우 인사 검증도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는데, 이 부분 역시 걱정이라는 의견이 많다.
집권여당이 이 과정에서 목소리를 내고 상호 교차검증의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데 그 역할을 못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실제 출범 두 달이 지났는데도 계속해서 “김기현 지도부가 존재감이 없다”는 지적은 곳곳에서 들린다.
국민의힘 지도부의 이런 모습이 계속 연출된다면 대통령실과 집권여당 간에 수직적 지휘 체계가 고착화되면서 견제는커녕 조언 기능조차 먹히지 않으면서, 국정수행 과정에 여러 폭탄이 터질 위험이 있다는 게 여당 내부의 우려다. 여당에 대한 장악력 확대를 꾀하는 과정에서 총선 패배라는 큰 정치적 실패를 겪고 크게 휘청거렸던 박근혜 정부의 사례도 여당 내부에서 다시 소환되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