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임금 고용 시 인종차별 논란이나 아이 언어발달 악영향 우려…“부모가 직접 양육 가능한 환경 만들어야”
정부와 서울시가 동남아 출신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시범사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모들의 육아‧가사 부담을 줄여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다. 비전문취업비자인 E-9 비자 발급 대상에 가사근로자를 추가하고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근로자를 모집해 입국을 허가할 계획이다. E-9 비자로 국내에 들어오면 정해진 사업장에서만 일할 수 있고, 3년간 체류가 가능하다.
현재 가사도우미는 우리나라 국민과 중국 동포에 한해서만 허용되고 있다. 이 정책이 도입되면 동남아 출신 외국인도 국내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할 수 있다. 시범사업이 확정되면 100명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모집해 서울시에 시범 도입한다. 고용노동부 관계자에 따르면 계약을 어떤 방식으로 맺을지,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성별‧나이 기준, 근무방식(출퇴근방식‧입주형 등), 가사도우미가 맡을 업무, 시급 등 세부사항들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정부는 상반기 중으로 외국인 가사도우미 시범사업 계획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지난 2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인구동향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은 0.78명이다. 0.81명이었던 전년보다 0.03명 감소했다. 정부에서는 점점 심각해지는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가사‧육아노동을 대신할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을 검토하고 있지만 시민사회와 여성계‧노동계에서는 실효성이 떨어지는 대책이라고 말한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소장은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은 저출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고, 저출생 문제에 도움이 된다고 해도 국내 가사도우미들보다 저임금을 주고 도입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서는 안 된다”며 “홍콩과 싱가포르에서는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도입했지만 출산율이 올라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홍콩은 1972년부터 가사도우미를 도입했지만 2021년 기준 홍콩의 합계출산율은 0.75명으로 세계 238개국 중 가장 낮았다. 싱가포르는 같은 해 합계출산율이 1.02명으로 다섯 번째로 낮았다.
송다영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부모들은 늦게까지 일을 하고, 애는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키우게 하는 것은 도구주의적 사고라고 생각한다”며 “애를 낳아서 기르는 일은 부모가 기쁨으로 해야 하는 일인데 이런 식의 정책은 부모들에게 사회를 위해 계속 과잉노동하고 그 과잉노동을 받쳐주는 지렛대로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활용하겠다는 것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당장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원하는 수요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출산율을 높이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인권과 처우 문제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김성미경 한국여성인권플러스 대표는 “저임금의 외국인 노동자 인력을 고용한다면 이것은 일종의 인종차별 문제가 될 것이며, 저임금 고용시 노동임금도 후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소장은 “국내 가사도우미들의 임금보다 적은 임금으로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도입하면 이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차별을 법제화하겠다는 것”이라며 “현재 국내에서 일하고 계시는 가사노동자들이 노동시장에서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의 가사도우미 평균 시급은 1만 3000원~1만 5000원 정도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지난 3월 최저시급을 적용하지 않고 최저임금 미만으로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시급이 정확하게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최저임금이나 그 이상을 적용할 가능성이 높다. 국내에 도입되는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현행 최저임금인 9620원을 적용하고, 각종 수당을 포함하면 월급이 200만 원 대(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일 것으로 예상된다.
최영미 가사‧돌봄 유니온 위원장은 “가사‧돌봄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느 정도인지 조사되기도 전에 무작정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도입하겠다고 하는 것 같다”며 “가사‧돌봄 분야는 건강한 시니어들의 일자리가 될 확률이 높은데, 이들이 잘 진입할 수 있도록 어떤 노동환경을 만들어야 하는지 정부에서 더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 연구위원은 “입주를 해야 할지도 모르고, 일감이 끊기지 않을지도 애매한 상황에서 가사‧돌봄 노동만 위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국내로 오려는 경우는 많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 연구위원 “현재 농촌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탈률이 절반 정도 된다고 한다. 가사노동자 영역이 열리면 제2의 농촌이 될 수도 있다”며 “제조업 공장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이탈하는 문제와 아이 돌봄을 위해 온 외국인 노동자가 이탈하는 문제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부모들의 반응도 호의적이지는 않다. 만 9세 자녀를 키우고 있는 직장인 A 씨는 “정부 지원 없이는 일반 직장인에게 부담이 되는 금액이라고 생각한다”며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외국인이라는 리스크를 안고 아이를 맡기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5세 자녀를 키우고 있는 직장인 B 씨는 “한 달에 200만 원 정도 되는 비용을 가정에서 부담해야 한다면 이용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다”며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아이를 돌봐줄 경우 언어발달에 영향을 줄 것 같아 신중히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에 거주하며 7세 자녀를 키우고 있는 직장인 C 씨는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부모들에게 육아나 집안일 등을 도울 수 있는 하나의 선택지를 늘려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 같다”면서도 “가정마다 다양한 상황이 존재하고, 전일제로 운영된다면 꼭 필요하지 않은 집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전체 출산율을 올리는 역할을 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아이들의 언어나 사회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하정훈 소아과의원 원장은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집안일을 맡아서 하면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아이를 돌보는 역할을 한다면 아이들의 언어발달에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특히 1~2세 이전에는 우리말 노출이 많이 되는 것이 중요한데 그때 우리말 노출이 많이 안 된다면 언어발달이 늦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장경은 경희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장시간 육아를 담당했을 때 아이들 언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며 “직장인들은 1~2시간 아이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더 오래 아이를 맡길 텐데 연령이 낮을수록 언어 발달에 영향이 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조혁진 연구위원은 “어린아이들이 언어를 배울 시기에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아이를 보면 그 아이의 언어 발달과 정서발달, 사회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는 어렵다는 연구 결과가 홍콩에서 많이 나왔다”고 말했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이런 것만이 돌봄의 전부가 아니라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필요하다”며 “이런 시간을 보장 받으려면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하고, 육아휴직도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혁진 연구위원은 “노동자 임금을 올려주거나 공공어린이집‧직장 어린이집을 확충하는 방식이 더 좋은 대안이 될 것 같다”며 “부모가 직접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육아휴직의 의무화, 근로시간 단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녀를 키우고 있는 직장인 부모들은 공통적으로 △유연근무제 △시차출퇴근제 △학교 스케줄에 따른 연차나 반차 사용 △육아‧출산휴직 등 현재 있는 제도부터 잘 활용할 수 있는 환경 조성과 육아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당연한 문화가 됐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시범사업과 관련해 구체적인 절차나 조건 등 세부적인 내용은 설계를 더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시범사업을 통해 시장의 수요나 만족도가 어떤지 보고자 하는 것이고, 외국 인력 정책위원회에서 의결이 돼야만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