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료 채취 불가 ‘설명회’ 논란, 삼중수소 위해 여부 쟁점…야당 “왜 들러리 서나” vs 여당 “광우병 괴담 수준”
#'시찰'이냐 '설명회'냐
5월 21일 한국 정부 시찰단이 일본으로 출국했다. 시찰단은 유국희 단장(원자력안전위원장)을 비롯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원전·방사선 전문가 19명과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해양환경 방사능 전문가 1명까지 모두 21명으로 구성됐다. 입·출국일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시찰 기간은 5월 22~25일이다. 시찰단은 나흘간 오염수 정화 및 처리 과정 등을 점검하고 26일 귀국한다.
시찰단 방문은 한일정상회담 합의 사안이다. 5월 7일 윤석열 대통령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후 “우리 두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한국 전문가들의 현장 시찰단 파견에 합의했다”며 “과학에 기반한 객관적 검증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우리 국민의 요구를 고려한 의미 있는 조치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시찰단은 출국 전부터 거센 논란에 직면했다. 5월 19일 박구연 국무조정실 1차장과 유국희 단장이 △직접 오염수 시료 채취 불가 △시찰단 명단 비공개 △민간 전문가 동행 불가 △취재진 동행 불가 등을 발표하면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시료를 채취해 한국 등 4개국에 분석을 의뢰한 상황에서 시료 채취는 불필요하다는 것이 정부 측 설명이다. 하지만 시찰단 방문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5월 15일 원자력 정책 전문가인 장정욱 마쓰야마대학 경제학부 교수는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시찰단 파견에 대해 “왜 비싼 세금을 들이면서 들러리 서기 위해 가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며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 원전 부지 내에 방사능이 많이 낮아졌다는 사실을 계속 이야기해오고 있지만, 주민들과 민간단체에서 요구하는 방사능 측정 조사는 아직도 허용되고 있지 않다. (방사능 수치의) 객관성을 저희가 제3자로서는 확인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2022년 3월 후쿠시마 제1원전을 방문한 대만 시찰단에 대해서도 “그때도 일방적인 설명회 수준에서 끝났다”며 “확인된 바에 의하면 현지를 보고 나서 도쿄에서 전문가들과 토론하고 일부 시뮬레이션 시설을 견학한 것으로 나와 있다”고 덧붙였다.
시찰단 역할을 두고 한국과 일본 정부 입장이 배치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5월 19일 유국희 단장은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과학의 영역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과학적 안전 여부를 확인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면서 “이번 시찰을 통해 그동안 검토 과정에서 나타난 현장에서 확인해야 할 사항들을 중심으로 꼼꼼히 살펴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한국 시찰단이 오염수 안전성을 평가하거나 확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5월 9일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상은 기자회견에서 “전문가 시찰로 오염수 방류의 안전성에 대한 한국 내 이해가 깊어질 것을 기대한다”면서도 “한국 시찰단이 오염수의 안전성을 평가하거나 확인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5월 12일 일본 외무성의 보도자료에도 한국 시찰단 방문에 대해서 ‘검증’이나 ‘시찰’이 아닌 ‘설명회’(Briefing session)라고 명시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외교적인 표현의 차이라고 해명했다. 5월 12일 박구연 차장은 “당연히 현장에 가면 안전성을 판단하기 위한 자료, 질문, 시설 확인 등이 이뤄질 것”이라며 “시찰 활동의 목적은 해양 방류 과정 전반에 걸쳐 안전성을 검토하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삼중수소 인체 영향 없을까
삼중수소는 핵심 쟁점 중 하나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통해 삼중수소(HTO)를 제외한 방사성 물질 62종을 오염수에서 제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4월 5일(현지시각) IAEA가 공개한 4차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정부의 오염수 방류 감시체계가 신뢰할 만하다고 평가를 했다.
또한 삼중수소와 유기물질이 결합한 유기결합삼중수소(OBT)가 해산물 내 OBT 형성과 인체 피폭량에 대한 불확실성이 있다는 데 동의하지만, 삼중수소의 100%가 OBT라고 가정해도 선량에 미미한 영향(1% 미만)을 끼쳐 전체 방사선량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미미할 것이란 내용도 보고서에 담겼다. 다만, 삼중수소가 많은 이해 관계자들의 관심 주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도쿄전력이 OBT 형성의 불확실성과 관련 선량에 대한 추가 설명을 해주길 요구했다.
실제 삼중수소가 배출하는 저선량 방사선에 장기적으로 노출됐을 때 인체·환경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4월 27일 티머시 무소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생물학과 교수는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의 기자회견에서 “1950년대부터 2022년까지 발표된 관련 논문 250건을 보면 삼중수소에서 방출되는 베타선의 ‘생물학적 효과비’는 세슘-137 감마선의 2~6배”라며 “세슘의 감마 방사선은 투과력이 강해 순간적으로 디엔에이(DNA)나 세포에 영향을 주고 밖으로 빠져나가지만, 삼중수소의 베타 방사선은 투과력이 약해 체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집중적인 내부 피폭을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5월 9일 서균렬 서울대 명예교수(원자핵공학과)는 유튜브 채널 ‘언더스탠딩’에서 “2020년 조사 결과 ALPS를 거친 오염수 중 70% 이상에 일본 정부의 방류 기준을 넘는 수준의 방사성 물질이 들어있었다”며 “삼중수소 이외에 세슘, 요오드, 스트론튬, 플루토늄과 같은 위험 물질들이 ALPS 처리된 오염수 안에 여전히 녹아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5월 22일 백원필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은 유튜브 방송 ‘언더스탠딩’에서 “ALPS 처리를 한 번 거쳤는데도 방류 기준을 초과한 오염수는 기준을 만족할 때까지 반복해서 ALPS 처리를 하겠다는 게 일본 정부의 입장”이라며 “방류 기준을 만족한 30% 분량의 오염수부터 바다에 배출될 것”이라며 서 교수 주장을 일축했다.
저농도 삼중수소가 인체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임상 연구가 매우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4월 27일 티머시 무소 교수는 삼중수소와 관련한 과학 문헌 70만여 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삼중수소가 인체 등에 미치는 생물학적 영향을 일부라도 다룬 연구는 250건(0.03%)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이마저도 1970~1980년대의 러시아 핵실험 당시의 구식 연구로 확인됐다. 한국원자력학회도 저선량 방사선 및 삼중수소의 영향에 대한 임상 연구가 적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2016년과 2020년 발표한 바 있다.
5월 10일 숀 버니 그린피스 위원은 국회에서 열린 ‘후쿠시마 원전오염수 해양투기 토론회’에서 “인체에 들어왔을 때 장기간에 걸쳐 유전적 영향을 미쳐 더 위험할 수 있다”며 “소동물, 포유류를 통한 실험에서 위험성이 나타났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영향에 대한 연구는 미흡하다”고 말했다.
#여당 내에서도 오염수 방류 우려
야당은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다. 5월 20일 민주당은 시민단체들과 함께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전국 행동의 날(서울대회)’을 진행하며 장외투쟁에 나섰다. 5월 22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시찰단에 대해 “시료 채취도 없고, 명단도 없고, 언론 검증도 없는 ‘3무(無) 깜깜이’ 시찰로 일본 오염수 투기에 병풍 서줘서는 절대 안 된다”며 “국민 생명과 건강을 위해서 철저하고 투명한 오염수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고 비판했다.
야당은 한국 시찰단이 원전 오염수 방류에 정당성 및 명분을 부여하는 ‘들러리’로 악용될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오는 6월 IAEA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배출 관련 최종보고서를 발표할 방침이다. 만약 ‘문제없음’으로 최종 결론이 나오면, 일본은 7월부터 후쿠시마 원전 1km 반경 해양으로 오염수를 본격적으로 방류할 계획이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4월 25일 도쿄전력은 오염수를 후쿠시마 앞바다로 방류하기 위한 1030m 길이의 해저터널 작업도 완료했다. 도쿄전력은 원전 부지 내 설비를 포함한 오염수 방류 관련 설비 공사를 6월 말까지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당은 야당의 공세를 ‘괴담’으로 규정하며 일축했다. 5월 22일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당에 진심으로 묻고 싶다. 과거 광우병 거짓 선동으로 온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는데, 현재까지 미국 소고기로 병 걸린 사람이 있나? ‘전자파에 튀겨진다’ ‘성주 참외 망한다’며 사드 괴담을 퍼뜨렸는데, 전자파 피해는 단 한 건도 없고, 성주 참외는 사드 배치 이후 오히려 매출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5월 22일 성일종 국민의힘 우리 바다지키기 검증TF 위원장은 SNS(소셜미디어)에 장외투쟁에 나선 민주당을 향해 “민주당은 이번에도 방사능 괴담을 퍼뜨리며 우리 어민들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며 “괴담으로 어민들을 힘들게 하는 정치는 심판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권에선 이명박 전 대통령 임기 초반 발생한 ‘광우병 사태’ 트라우마가 깊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52% 지지율로 임기를 시작했지만, 취임 100일 무렵 직무수행 지지율은 21%로 곤두박질쳤다. 2008년 5월 ‘광우병 파동’으로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면서다.
하지만 여당 내에서도 오염수 방류에 대해 우려가 나온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사석에서 “오염수 방류는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된다. 한국 정부가 왜 일본을 위해서 시찰단까지 파견하면서 오염수 방류에 대한 명분을 주고 오려는지 모르겠다. 일본 근처에 있는 한국이 인정하면 다른 국가에서도 뭐라고 할 수 있겠냐”며 “우리 당도 문재인 정부 시절엔 오염수 방류에 대해서 문제라고 국정감사에서 다 지적한 사안인데, 그렇다고 내가 지금 우리 당을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도 없고. 일본은 오염수 방류를 위해 장기적 플랜을 짜서 움직이고 있다. 특히 IAEA에 엄청나게 로비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 시절 오염수 방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2021년 10월 19일 김선교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수협·해양수산부 산하 기관 국정감사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우려에 대해 현재 해결된 것이 없다”며 “우리나라에 영향 없다는 주장도 있지만 만약 영향이 있으면 어민들은 도산”이라며 우려했다.
2020년 10월 26일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외교부 종합감사에서 “일본 정부는 적극적인 외교로 IAEA에 해양 방류에 대한 최종 보고서를 냈다. 일본이 자국 내 연구 결과를 IAEA에 제공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내부 논의만 하고 있다”며 “국제법에는 각국이 육상오염에 따른 해양오염을 방지할 의무가 있다. (일본을 상대로) 국제 소송과 가처분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9년 10월 7일 박성중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원자력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원전 오염수 방류는 생존권과 직결돼 있다”며 “방류하는 순간 우리 모두에게 피해가 된다”고 정부의 확실한 대응을 촉구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