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진했던 김원중·정철원 제 몫 다하고 양현종 맹활약 반전…국대 에이스 박세웅 난조에 소형준 부상 이탈
실패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갖가지 분석이 뒤따랐다. 선수들 사이에서 시즌 전 대표팀 일정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증언도 나왔다. 시즌 준비를 앞당겨야 하기에 소속팀에서 활약에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일부 부진한 선수들의 '푸념'이 아니었다. 과거 국제대회를 치르는 과정에서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선전을 펼쳤으나 소속팀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낸 선수들이 있었다. 'WBC의 저주'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특히 시기에 따른 단계별 몸만들기가 강조되는 투수 포지션에서 희비가 교차된다. 올 시즌 WBC에 나섰던 투수들은 KBO리그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까.
#흔들림 없는 에이스들
대표팀과 소속팀에서 불펜으로 활약하는 김원중(롯데)과 정철원(두산)은 WBC 4경기 중 3경기에 나서 '혹사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들은 대회 전 연습경기에서도 자주 등판해 우려를 낳았다. 두 투수 모두 이닝당출루허용율(WHIP) 2 이상을 기록하는 등 저조한 결과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하지만 커리어 첫 대표팀 합류, 어려웠던 팀 사정, 연투 등을 감안해 많은 비판을 받지는 않았다.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선 불안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으나 이들은 각각의 소속팀에서 국가대표 선발 이유를 증명하고 있다. 김원중은 시즌 초반 WBC 여파가 이어지는 듯했다. 4월 중순까지 2경기에서 3실점씩 기록하며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안정을 되찾았다. 올 시즌 20경기에 등판해 2승 1패 10세이브로 롯데 돌풍을 이끌고 있다. 10세이브는 리그 2위 기록이다.
정철원도 지난해 신인왕의 기세를 잇고 있다. 22경기에 등판해 구원승만 4승을 따냈다. 7홀드로 전체 5위를 기록 중이다. 평균자책점도 2.31로 준수하다. 정철원에게 2년 차 징크스는 남의 이야기다.
반전을 만들고 있는 투수는 양현종이다. 동기 김광현과 함께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베테랑이다. 그는 마지막 대표팀 활약을 불명예스럽게 끝냈다. 승리가 절실했던 호주전에 추격조로 등판해 아웃카운트 없이 3피안타(1피홈런) 3실점을 기록했다. 이후 더 이상 등판은 없었다. 자연스레 '확연한 에이징 커브에 돌입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아쉽게 대표팀 커리어를 마감한 양현종은 뚜껑을 연 KBO리그에서는 '회춘모드'다. 승리 운이 따르지 않아 2승 1패(7경기 등판)를 기록 중이지만 평균자책점 2.03의 짠물 피칭을 선보이고 있다. 아직 시즌 일정이 많이 남았다지만 그의 커리어를 통틀어 최고 기록이다. 5월초 동기 김광현과 선발 맞대결에서는 8이닝 10탈삼진 무실점 피칭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대표팀에서 부진을 소속팀 활약으로 씻어내고 있다.
#'저주'는 정말 존재하나…부진 허덕이는 투수들
호주, 일본, 체코, 중국을 차례로 상대한 WBC에서 가장 좋은 활약을 펼친 투수는 롯데 선발 박세웅이다. 첫 등판은 대패를 당한 일본전이었다. 일방적으로 밀리는 상황서 마운드에 오른 박세웅은 1.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대표팀 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몇 안 되는 투수였다. 이어진 체코전에도 선발로 나서 4.2이닝을 소화(탈삼진 8개), 실점 없이 마운드를 넘겼다. 앞서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보인 좋은 흐름을 이어간 것이다.
하지만 박세웅은 소속팀 롯데에서는 대표팀 때 기세를 잇지 못하고 있다. 오랜만에 좋은 성적을 내며 흥행 성공하고 있는 롯데와 달리 박세웅은 개막 첫 선발 등판을 패배로 시작했다. 이번 시즌 7경기에 등판해 1승 1패, 매경기 실점을 범하며 평균자책점 4.11을 기록 중이다. 롯데가 장기계약을 안긴 이후 첫 번째 시즌이고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 중요한 시점이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내고 있다. 최근 두 번의 등판에서 연속으로 1실점에 그치며 나아지는 모습을 보인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LG 구원 정우영도 이번 시즌 부진한 대표팀 출신 투수다. WBC에서 이미 이상 징후를 보인 바 있다. 일본전에서만 구원으로 등판해 아웃카운트 두 개를 잡은 것이 대회 활약의 전부다. KBO리그와 다른 대회 공인구 적응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KBO리그에서 현재까지 20게임에 등판해 8홀드를 기록,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치는 듯하다. 하지만 정우영은 지난해 리그 홀드왕의 위용은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시속 150km를 상회하던 구속이 줄어들었다. 평균자책점(4.86)은 지난해 대비 2점 이상 올랐다. 팀별 40경기 내외를 치른 현재 벌써 4패를 안아 지난 시즌의 3패를 이미 넘어섰다.
대표팀 투수 중 가장 불운한 시즌을 보내고 있는 이는 KT 소형준이다. 개막 이후 세 번째 등판에서 팔꿈치 통증을 호소,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결국 인대 파열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게 됐다.
#불안함 보였으나 회복세
WBC에 다녀와 시즌 초반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으나 국가대표에 선발된 자원인 만큼 본래 모습을 되찾고 있는 투수들도 있다. 부상이 없다면 최고의 투수로 손꼽히는 구창모도 안정을 찾는 중이다. 일부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대회 공인구 적응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WBC 2경기에 등판, 1.1이닝만 소화하며 자책점 2점을 기록했다. 시즌 초반에도 난조는 이어졌다. 첫 두 경기에서 5이닝을 채우지 못했고 각각 6실점과 4실점을 기록했다.
세 번째 등판부터 무실점 피칭을 선보인 그는 5월 들어 안정을 찾아가는 모양새다. 5월 11일 KT전에서는 삼진 10개를 잡아내며 시즌 첫승을 거뒀다. 4월 한때 4점까지 치솟았던 평균자책점은 현재 3점대 초반(3.28)까지 낮아졌다.
WBC 투수조 막내 이의리도 궤도에 오르는 듯한 모양새다. WBC에서는 크게 밀리던 일본전에 등판해 삼진으로 아웃카운트 하나만 잡아냈다. 하지만 그 사이 볼넷을 3개나 허용해 아쉬움을 남겼다.
제구 난조는 KBO리그에서도 지속됐다. 개막 이후 첫 등판에서 승리를 낚았으나 볼넷은 6개를 기록했다. 이후로도 결과는 많았지만 많은 볼넷 허용으로 흔들렸다. 최근 등판인 5월 19일 키움전에서는 볼넷 2개만 기록하며 9삼진 1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다.
리그 개막 이전 열린 국제대회에 참가한 투수들은 저마다 다른 시즌을 보내고 있다. 누군가는 맹활약을 이어가는 반면 누군가는 급격히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현장에서는 ‘분명 영향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야구인은 “현재도 국제대회 참여에 따른 보상이 있긴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FA 일부 보상 등 현실에 맞춰 선수들에게 더 큰 동기부여를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