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수·방용철, 이화영 송금 연루 의혹 부인하다 입장 바꿔…방 부회장, 뇌물 의혹 폭로했다가 번복
안부수 회장과 방용철 부회장은 처음엔 이 전 부지사의 대북송금 연루 의혹을 부인하다가 재판 과정에서 거의 정반대로 입장을 바꿨다. 마치 폭로자 같은 태도를 취했다. 그런데 두 사람 법정진술 과정 중에 말을 바꾸기도 했다. 증언 신빙성이 의심되는 대목도 있다. 재판부는 더욱 난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북송금 사건 특성상 물증이 아닌 진술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에 한계가 분명한 탓이다. 아무리 검찰이라도 북한으로 건너간 돈의 흐름은 추적할 수 없다. 돈을 받은 북한 사람을 조사할 수도 없다.
안 회장은 지난 4월 18일 이 전 부지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 전 부지사가 허위 진술을 부탁했다"고 주장했다. 이 전 부지사가 2022년 9월 구속되기 일주일 전쯤 찾아와 김성태 쌍방울그룹 전 회장을 자신의 소개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20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해달라고 종용했다는 이야기였다. 안 회장은 쌍방울로부터 두 차례 국제대회 개최와 마라톤 대회 준비 등 명목으로 현금과 현물 총 15억 원 정도를 지원받았다.
안 회장은 지난 1~2월 법정 증언에 대해 "이 전 부지사를 비호하기 위해 불분명하게 진술했다"며 "이제 사실대로 말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안 회장은 쌍방울이 북한에 보낸 50억 원은 이 전 부지사가 북한에 약속했던 스마트팜 지원 비용을 대납한 것이며 나머지 300만 달러는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의 방북 비용 명목이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그런데 안 회장의 주장을 종합해보면 진술 신빙성에 의문이 남는다. 안 회장은 지난 1~2월 이 전 부지사를 비호하기 위해 거짓 진술을 했다면서 정작 이 전 부지사가 부탁한 거짓 진술은 하지 않았다. 안 회장은 "김 전 회장과의 관계 외에 이 전 부지사가 허위 진술을 부탁한 것은 없다"며 "스마트팜 관련해서도 진술을 부탁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안 회장은 지난 1월 31일 증인 신문 과정에서 이미 "이 전 부지사에게 김 전 회장을 소개받았다"고 진술했다. 안 회장은 검찰 조사 초기에만 "오래된 지인에게 2006년 김 전 회장을 소개받았다"고 진술했다. 이 같은 진술 번복 이유에 대해 지난 1월 31일 이 전 부지사 변호인이 반복해서 추궁하자 안 회장은 "진실을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당시 안 회장은 "이 전 부지사가 국제대회에 (경기도 예산) 5억 원을 지원해준다고 했다가 3억 원밖에 지원이 안 된다며 나머지 2억 원을 채워주려고 김 전 회장을 소개해줬다"고 진술했다. 이 전 부지사 측은 이를 부인했다.
안 회장은 1~2월 증언 당시 이 전 부지사 변호인과 설전을 벌이면서 이 전 부지사가 부탁하지도 않은 거짓 진술만 한 셈이다. 당시 안 회장은 김 전 회장이 북한에 스마트팜 비용으로 50억 원을 보낸 것은 수긍하면서도 이 전 부지사나 경기도와의 연관성은 부인했다. 이재명 방북 비용 이야기는 아예 하지 않았다.
안 회장은 자신과 쌍방울그룹의 관계에 대해서도 신빙성이 의심되는 진술을 했다. 안 회장은 4월 18일 증언에서 "2019년 1월 말 이후에는 쌍방울이 대북사업에서 나를 배제했다. 내가 경제인이 아니니까"라고 답했다. 그런데 안 회장의 아태평화교류협회는 2019년 7월 쌍방울그룹의 후원을 받아 필리핀 마닐라에서 대북 교류행사를 개최했다. 당시 행사 프로그램 중엔 쌍방울그룹과 북한 측의 경제협력 논의도 있었다. 또 아태평화교류협회는 2022년 말 검찰 조사 당시에도 쌍방울그룹 사옥에 무상으로 입주해 있었다.
방용철 쌍방울그룹 부회장의 법정 증언 중에도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 있다. 방 부회장은 쌍방울 대북사업을 담당한 임원이다. 그는 이 전 부지사와 함께 기소됐다. 재판 초기엔 혐의를 전면 부인하다가 김 전 회장이 해외에서 붙잡혔을 즈음 혐의를 인정했다. 하지만 방 부회장은 자신의 혐의 인정이 김 전 회장 거취와는 무관했다는 입장이다.
방 부회장은 쌍방울이 북한에 보낸 50억 원의 성격에 대해 모호한 답변을 내놓았다가 말을 바꿨다. 이 전 부지사 변호인은 지난 3월 10일 방 부회장에게 "쌍방울그룹은 북한과 합의한 협약에 따른 계약금은 따로 보내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쌍방울그룹은 2019년 5월 북한 측과 경제협력 협약을 맺었다. 지하자원 개발, 농축수산 협력, 관광지 및 도시개발, 철도 관련 건설 등 총 600조 원 규모였다. 북한에 아무런 대가를 제공하지 않고 이 같은 대규모 사업권을 어떻게 획득했느냐고 지적한 것이다.
이에 대해 방 부회장은 "스마트팜 비용으로 보낸 50억 원에 계약금 성격도 같이 있다"며 "저희 입장에서는 스마트팜 비용 지불하면서 사업권까지 같이 따내는 게 낫지 않느냐"라고 답했다. 이때 피고인석에 앉아있던 이 전 부지사는 방 부회장 발언을 비웃듯 "쳇" 소리를 크게 냈다. 방 부회장은 곧바로 재판부를 향해 "(이 전 부지사가) 제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계속 저를 비웃는다"며 "개인적인 감정이 굉장히 실린다"고 말했다.
방 부회장은 2주 뒤인 3월 24일 증언 과정에서 북한에 보낸 50억 원에 대한 진술을 바꿨다. 검사가 "쌍방울이 경기도의 스마트팜 비용을 대납해준 것으로 알고 있느냐"고 묻자 방 부회장은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답했다. 또 검사가 "스마트팜 비용을 대납해서 쌍방울이 대북사업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계약금 성격이 있다고 진술한 게 맞느냐"고 묻자 "그렇다. 50억 원은 (경제협력) 사업권 대가와는 의미가 다르다"고 답했다.
방 부회장은 이 전 부지사에게 제공한 뇌물 의혹을 새롭게 폭로했다가 추후 번복하기도 했다. 검찰 공소장에도 언급되지 않은 내용이었다. 방 부회장은 3월 3일 "2019년경 이 전 부지사에게 양복을 전달하면서 안에 돈 봉투를 넣었다"며 "5000만 원 정도였다"고 말했다. 진술 내용은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방 부회장은 "(김성태) 회장님이 전달하라고 했다. (돈 봉투를) 박 아무개(김 전 회장 수행비서)한테 받았다"며 "엄 아무개(당시 쌍방울그룹 비서실장)와 (이 전 부지사) 여의도 오피스텔에 같이 갔다. 엄 아무개는 방까지는 못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방 부회장은 한 달여 뒤인 4월 17일 증언 과정에서 "여의도 오피스텔에서 (이 전 부지사에게) 5000만 원 준 것은 기억이 희미하다"며 "착각했다. 그 부분은 죄송하다"고 말했다. 방 부회장은 "이 전 부지사에게 5000만 원을 두 번 줬다"면서도 전달 장소는 여의도 오피스텔이 아닌 다른 곳이었다고 설명했다. 방 부회장 발언 직후 재판부 부장판사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이후 한동안 허공을 응시했다.
남경식 기자 ng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