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현 배트 던져 포수 미트 맞혔지만 타격 방해 판정…김성근 전 감독 상대방 슬라이딩 어필하다 선수단 철수
특히 타자나 주자가 상대 포수나 야수의 정상적인 수비를 막는 '수비 방해'는 조항이 다양하고 적용도 까다롭다. 종종 수비 방해 판정을 놓고 벤치와 심판진의 의견이 갈리거나 규칙 숙지 미숙으로 인한 오심이 나오기도 한다. 5월 20일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한화 이글스의 잠실 경기에서도 그랬다.
#배트를 던져 포수를 맞혔는데…
양 팀이 1-1로 팽팽하게 맞선 9회 말 LG 공격. LG 선두 타자 신민재가 우전 안타로 출루해 무사 1루 기회를 잡았다. LG는 다음 타자 이재원 타석에 대타 정주현을 기용해 끝내기 기회를 살리려는 의지를 보였다. 이어 한화 투수 박상원이 정주현을 향해 2구째 직구를 던지자 1루 주자 신민재가 2루로 스타트를 끊었다. LG 벤치에서 히트 앤드 런(치고 달리기) 작전이 나온 듯했다.
한화 배터리는 이 작전을 읽고 피치 아웃(주자의 도루를 막기 위해 투수와 포수가 합의해 스트라이크존에서 크게 벗어난 공을 던지는 것) 사인을 주고받았다. 포수 최재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으로 몸을 옮겼다. 박상원의 공을 받는 즉시 2루로 송구해 주자를 잡으려는 자세였다. 당황한 정주현은 어떻게든 방망이에 공을 맞혀 주자의 횡사를 막으려고 했다. 공이 바깥쪽으로 크게 빠지자 몸을 앞으로 쭉 뻗으며 배트를 던지다시피 손에서 놓았다. 하지만 이 배트는 공이 아닌 최재훈의 배에 맞았다. 최재훈은 2루로 공을 던지지 못하고 그대로 넘어졌다.
좀처럼 보기 힘든 상황이 벌어지자 심판진이 4심 합의를 위해 홈플레이트 앞에 모였다. 판정 하나에 승자와 패자가 갈릴 수도 있는 접전 상황이라 그라운드엔 더욱 긴장감이 감돌았다. 양 팀 벤치가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대화를 마친 심판진은 포수 최재훈의 '타격 방해' 실책을 선언했다. "포수가 정 위치를 지키지 않고 먼저 움직여 공을 받았다"고 판단한 거다.
이에 따라 1루 주자 신민재의 2루 도루는 인정됐고, 정주현은 1루로 자동 출루해 무사 1·2루가 됐다. 최원호 한화 감독이 더그아웃을 박차고 달려 나와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장에서 TV 중계 해설위원으로 지켜본 류지현 전 LG 감독조차 "개인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판정"이라고 고개를 갸웃했다.
KBO 야구 규칙 6.03은 '타자가 제3 스트라이크 투구 또는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배트를 페어 또는 파울 지역으로 던져 포수(미트 포함)를 맞혔을 경우, 타자는 반칙행위로 아웃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규칙을 적용하면, 배트를 던져 최재훈을 맞힌 정주현이 '수비 방해'로 아웃돼야 한다. 한화 벤치와 TV 중계진의 생각도 이와 같았다. 그러나 이날 모인 네 명의 심판은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LG는 9회 말 끝내 득점하지 못했다. 후속 타자 김민성의 3루수 병살타와 박해민의 중견수 플라이로 기회를 날렸다. 양 팀은 연장 12회까지 각각 세 번의 공격과 수비를 더 진행한 뒤 1-1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다. KBO 심판위원회는 이 경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오심을 인정했다. "추가 확인 결과 타격 방해가 아닌 수비 방해로 판정됐어야 할 상황이었다. 해당 심판진의 징계 등 후속 조처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최원호 감독은 다음 날인 21일 경기에 앞서 "정주현의 손이 배트에서 떨어진 걸 봤고, 당연히 수비 방해라고 생각하면서 심판진의 합의를 기다렸다. 그런데 타격 방해 판정이 나왔다"며 "수비 방해와 타격 방해는 비디오 판독 대상이 아니어서 직접 어필하러 나갔지만, '판정 번복을 할 수 없다'는 얘기만 들었다"고 아쉬워했다.
최 감독은 또 "그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선수단 철수' 밖에 없다고 하더라. 순간 그렇게 할까 갈등하기도 했지만, 관중분들을 생각해 마음을 접었다"며 "실점 없이 잘 막아준 선수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반면 염경엽 LG 감독은 이 판정에 대한 해석을 정중하게 사양했다. "9회 말 우리에게 '행운'이 따랐는데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라며 말을 아꼈다.
#선수단 철수와 감독 퇴장
최원호 감독은 참았지만, 실제로 수비 방해를 주장하면서 '선수단 철수'를 강행한 감독도 있었다. 김성근 감독이 조범현 감독과 맞붙은 2009년 한국시리즈가 그 무대였다. 김 감독이 이끌던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와 조 감독이 지휘하던 KIA 타이거즈는 그해 최종 7차전까지 외나무다리 승부를 펼치며 우승을 다퉜다. KIA 나지완이 사상 최초의 시리즈 끝내기 홈런을 터트리는 등 숱한 화제의 장면이 이어졌는데, 수비 방해를 둘러싼 두 감독의 팽팽한 신경전도 그 처절한 여정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두 팀이 2승 2패로 맞선 5차전. KIA가 2-0 리드를 잡은 6회 말 1사 1·2루에서 KIA 이종범이 2루수 땅볼을 쳤다. SK 유격수 나주환은 2루수 정근우의 토스를 받아 2루를 찍은 뒤 더블 플레이를 위해 1루로 힘껏 공을 던졌다. 이때 KIA 1루주자 김상현이 2루로 슬라이딩하면서 나주환의 오른발을 건드렸다. 송구는 크게 빗나갔고, 그 사이 KIA 2루 주자 최희섭이 홈을 밟았다.
김성근 감독은 득달같이 달려 나가 김상현의 수비 방해를 주장했다. 주자가 상대 팀의 더블 플레이를 방해하기 위해 '정당한 슬라이딩'이 아닌 방식으로 야수에게 접촉할 경우, 수비 방해가 선고될 수 있다. 그러나 심판진은 "정상적인 주루 플레이였다"고 맞서며 김 감독의 어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상현이 나주환에게 부딪히려는 목적으로 일부러 주로를 바꿔 슬라이딩한 건 아니라고 판단한 거다.
결국 김 감독은 SK 선수단을 그라운드에서 모두 거둬들이는 강수를 뒀고, 11분간 경기가 지연된 끝에 규정에 따라 퇴장을 당했다. 퇴장 이후에는 모든 입장 표명을 거부한 채 아예 숙소로 돌아가 버렸다. 포스트시즌 역대 5호(한국시리즈 4호)이자 감독 1호 퇴장이었다. 이후 이만수 당시 수석코치가 대신 경기를 지휘했다. 평소보다 가차없는 김 감독의 태도에 일각에선 "심판들을 흔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더 격한 제스처를 취하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KIA의 수장인 조범현 감독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우승이 걸린 최종 7차전에서 정확히 반대의 장면이 나왔기 때문이다. 5-5 동점이던 8회 초 무사 1루. SK 최정의 희생 번트 때 1루 주자 정상호가 2루로 슬라이딩하면서 KIA 유격수 이현곤을 덮쳤다. 김상현과 나주환의 충돌을 연상시키는 묘한 상황이었다. 조범현 감독도 똑같이 달려나와 "수비 방해다"라는 항의를 했지만, 심판 판정은 이번에도 바뀌지 않았다.
#김태균·이용규·김현수도 했다
김태균 KBS N 해설위원, 키움 히어로즈 이용규, LG 김현수처럼 내로라하는 리그 정상급 타자들도 수비 방해로 진기록을 남긴 과거가 있다. 김태균은 한화 선수 시절이던 2020년 6월 24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본의 아니게 상대의 삼중살을 도왔다. 당시 한화는 2-0으로 앞선 3회 초 선두 타자 김민하의 우익선상 2루타와 김태균의 볼넷으로 무사 1·2루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다음 타자 최진행의 잘 맞은 타구가 하필이면 삼성 3루수 최영진의 정면으로 향했다.
최영진은 먼저 3루를 밟아 2루 주자 김민하를 포스아웃 처리한 뒤 2루로 송구해 두 번째 아웃카운트를 잡았다. 이어 공을 받은 삼성 2루수 김상수가 다시 1루로 공을 던졌다. 타자 주자 최진행이 아슬아슬하게 먼저 베이스에 도착하면서 삼성의 트리플 플레이는 실패하는 듯했다. 이때 2루심이 1루에서 2루로 뛰던 주자 김태균의 수비 방해를 선언했다. 김태균이 2루로 슬라이딩하면서 김상수의 발에 부딪혀 1루 송구가 늦어졌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최진행마저 아웃돼 삼성은 한 번의 플레이로 아웃카운트 3개를 모두 잡았다. KBO리그 통산 74번째 삼중살은 그렇게 완성됐다.
이용규도 한화에서 뛰던 2018년 5월 22일 대전 두산 베어스전에서 번트 시도 후 던진 배트에 공이 맞아 수비 방해로 아웃되는 진기한 장면을 남겼다. 한화가 5-1로 앞선 4회 말 1사 1·3루. 기습 번트를 시도한 이용구의 타구가 1루 쪽 파울 라인을 향해 굴렀다. 당시 두산 1루수였던 오재일은 공이 라인을 넘길 기다린 뒤 천천히 주워 올렸다.
하지만 주심은 '파울' 대신 '아웃'을 외쳤다. 이용규가 번트를 댄 뒤 배트를 앞쪽으로 던지고 1루로 달려나가는 과정에서 그라운드에 바운드된 공이 한 차례 더 배트를 때렸기 때문이다. 인플레이 상황에서 공이 다시 배트에 닿으면, 자동으로 수비 방해로 간주돼 타자는 아웃 처리된다. 또 주자들은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베이스로 돌아가야 자리를 지킬 수 있다. 이에 따라 이용규는 소득 없이 더그아웃으로 향했고, 주자들은 움직이지 못한 채 아웃카운트만 늘었다.
김현수는 대기 타석에서 타격 연습을 하다 뜻밖의 수비 방해 판정을 받고 어안이 벙벙한 적도 있다. 어린이날인 2019년 5월 5일 두산과의 잠실 라이벌전 1회 초에 벌어진 일이다. LG의 3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한 김현수는 2번 타자 오지환이 두산 선발 세스 후랭코프와 대결하는 동안 지정된 대기 타석에서 연습 스윙을 했다. 그 사이 타석에 있던 오지환은 볼카운트 2B-2S에서 후랭코프의 5구째를 타격했고, 공은 포수 뒤쪽으로 높이 떠올랐다. 두산 포수 이흥련이 쉽게 잡을 수 있을 만한 타구였다.
문제는 이 공이 하필이면 김현수가 서 있던 대기 타석 근처에 떨어졌다는 거다. 김현수는 그라운드를 등진 채 배트를 휘두르느라 경기 상황을 미처 보지 못한 상태였다. 이흥련은 김현수와 부딪히지 않기 위해 몸을 피해가며 공을 잡으려다 결국 놓치고 말았다. 심판들은 상의 끝에 김현수가 이흥련의 수비를 방해했다는 판정을 내리고 오지환에게 포수 파울 플라이 아웃을 선언했다. 야구 규칙에서는 '공격 측 선수, 베이스 코치, 그 밖의 다른 멤버들은 타구 또는 송구를 처리하려는 야수에게 자리를 비워주어야 한다'는 조항을 '야수의 권리'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뒤늦게 상황을 깨달은 뒤 머쓱해진 김현수는 수비 방해를 인정하고 허리를 숙여 사과의 뜻을 전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