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100점 만점에 80점, 지금까진 성공…김건희 여사 실수 지적 좋은데 비꼬진 말아야”
이종찬 신임 광복회장의 당선 인사말이다. 이 회장은 여야를 넘나들며 굴곡진 정치 인생을 살아온 원로 정치인이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부에 이르기까지 민정당과 민자당을 거치며 서울 종로에서만 4선 국회의원(제11~14대)을 지냈다. 노태우 정부 시절 정무 제1장관에 기용되기도 했다. 1995년에는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해 김대중 정부 출범에 기여했다. 이후 김대중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거쳐 초대 국정원장을 지냈다.
이종찬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 멘토’로도 불린다. 윤 대통령은 사석에서 그를 ‘아버님’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회장 아들인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윤 대통령과 대광초, 서울대 법대 동창으로 ‘56년 죽마고우’다. 일요신문이 5월 26일 서울 중구 이회영기념관에서 이 회장을 직접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윤석열 대통령과의 인연이 궁금하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자주 만났고, 엄청 친하게 지냈다. 그러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임명됐을 때부터 존댓말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전에는 (윤석열) 이름으로 불렀지만, 이제는 그래선 안 된다고 내가 말했다. 정부 기관 최고 수장에게 예의를 지켜주는 것이 맞기 때문이다.”
―지금도 멘토로서 조언을 해주고 있는지.
“잘 만나지 않고, 연락도 일체 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이 2021년 3월 검찰총장 사퇴 직후 찾아갔다. 어떤 대화를 나눴나.
“거의 모든 주제를 망라하며 밤새우다시피 이야기했다. 몇 가지 주제만 꼽자면,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주장한 밀턴 프리드먼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윤 대통령은 ‘소위 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 노선이 좋다’며 ‘당시 정부가 간섭을 많이 해서 시장이 많이 왜곡됐다’고 말했다. 집값이 급상승했고, 거품이 빠지면서 지금 집값이 하락하고 있다. 지금의 전세난이 일어난 것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너무 간섭하니까 역작용이 일어난 것이다. 국가는 간섭하지 말고 규제를 풀어서 기업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 출범 1주년을 평가해 달라.
“100점 만점에 80점 정도다. 지금까지는 성공한 대통령으로 보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이 국민들 비위만 맞추려고 했다. 대표적으로 반일 감정을 자극해서 인기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그런 게 없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면, 일시적으로 인기가 떨어져도 밀고 나가는 추진력이 있다. 이번 대일 관계가 윤 대통령이 얻은 성과다. 노조 문제도 마찬가지다. 역대 대통령은 노조가 싫어할까 봐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스타일이 완전 다르다. 자기한테 불리한 일이더라도 노조를 개혁하고 나섰다.”
―앞으로 남은 4년 동안 국정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할까.
“노동, 연금, 교육 등 3대 개혁을 해야 한다. 사실 문재인 대통령 때 연금을 개혁했어야 하는데, 이걸 다음 정부한테 미뤄버린 것이다. 민심 잃기 딱 좋고 인기가 없는 개혁이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다. 지금 이 시기에 집중해야 한다. 시기를 놓치면 나중에 더 큰 화가 올 수밖에 없다.”
―아쉬운 점도 있나.
“참모들과 소통하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해야 하는데, 거친 면이 있다. 그런 세부적인 부분만 고치면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지 않을까 싶다. 지도자는 앞장서서 가야 하긴 하지만, 보폭이 크면 국민께서 의구심을 갖는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너무 빨리 가거나, 보폭이 크면 국민이 따라오기 힘들다. 반보만 앞으로 가자’고 했다. 윤 대통령이 이런 걸 배웠으면 좋겠다. 국민들이 따라올 수 있을 만큼 보폭을 맞추면서 가면 좋겠다.”
―윤석열 대통령이 야당과 대화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많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사법 리스크가 대화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 대표가 사법 리스크를 해소한다면 모르겠지만, 현재로선 대화하기 어렵다. 이 대표가 대통령을 만나면 오해를 받을 소지가 생긴다. 법원 판결이 좋게 나오면 대통령이 봐줘서고, 나쁘게 나오면 대통령이 명령한 것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윤 대통령이 박광온 의원이 민주당 원내대표로 당선되자마자 만나자고 제안한 것이다. 원내대표는 사법 리스크가 없으니까. 그런데 최근 민주당에서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사건과 김남국 의원 코인 투자 논란 등이 터지면서 만남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대통령이 괜히 잘못 만났다가 사건을 무마한다거나 정치적 거래를 한다는 오해 소지가 생길 가능성이 충분하다.”
―내년 총선에 검찰 출신 인사들이 대거 출마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건 아니라고 본다. 정부 초기에는 믿을 사람이 없어서 만만한 검찰 출신 인사들을 썼겠지만, 이제는 차츰 인사가 다양해질 거라고 본다. 각 분야 전문가들을 기용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나도 국정원에서 파견을 온 차장 검사랑 일 해봤는데, 검찰 출신들을 기피하게 된다. 검찰 인사들은 뭐든지 선악, 유무죄 등으로 사물을 판단하고 나누는 경향이 있다. 인간사는 흑백만 있지 않고 회색도 있다. 검찰 인사들은 이걸 인정 안 하려고 하더라. 흑백만으로 사회를 바라본다면 경직될 수밖에 없다.”
―검찰 출신인 윤 대통령도 흑백으로 사회를 보는 성향이 있다고 보나.
“윤 대통령이 민주주의와 공정의 가치, 법치주의 등을 유난히 강조하는 것을 보면 단호한 면이 있다. 대통령 된 지 아직 1년밖에 안 됐으니까. 이런 점도 점점 정치 영역에서 세월을 보내면서 완화될 것이다.”
―윤 대통령이 “장관이 2년은 해야 한다”는 취지로 언급했다.
“장관 목을 치면서 인기를 만회하거나 국면을 전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교통사고 나면 교통부 장관 모가지 치면 민심 수습됐다고 하지만, 그건 정상적인 길이 아니다. 책임도 현장에 있는 사람이 져야지, 위에 있는 사람한테 책임을 미루면 안 된다. 일일이 책임을 묻게 되면 장관직을 수행하기 어렵다. 장관이 정책으로 성과를 올릴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과가 나오기 전에 무능하다고 하면, 다른 목적이 있는 거 아닌가 싶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 목만 치면 이태원 참사가 수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수습되는 것은 없다. 국민 기분만 맞춰주는 것이다. 다만 공직선거법상 장관 등 공직자가 선거에 출마하려면 90일 전에 사퇴해야 한다. 내년 총선을 나가려면 연말에는 나오긴 해야 한다.”
―윤 대통령 ‘외교’를 놓고 평가가 엇갈린다.
“국민들이 강화된 한미일 안보체제를 좋아하는 반면에, 너무 강화하면 북한 위협이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국민 마음이 한 군데 쏠리지 않는다. 한미일 안보체제 강화와 더불어 평화를 위한 노력도 많이 해야 한다. 북한도 윤 정부 2년 차 들어서면서 대화 자세로 나올 것 같다. 어느 정권에서도 1년 차에 대화 채널을 건너간 적이 없다. 1년은 긴장 상태로 만들다가 2년, 3년 넘어가면서 대화로 넘어간다.”
―미국과 일본에 치우친 외교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실적으로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 북한과의 평화를 강조하느라, 미국과 일본 동맹을 약화시켰다. 특히 일본을 철천지원수로 만들었다. 양쪽 균형을 맞췄어야 했는데, 안 맞았다. 윤 대통령이 균형을 맞춘 것이다. 앞으론 중국에도 완화해 나가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사드 3불(不) 정책’이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어서 문제다.”
―김건희 여사가 대선후보 시절 약속했던 ‘조용한 내조’에서 벗어나 ‘광폭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김건희 여사에 대한 선입관이 강하게 있다. 공정하게 평가를 해줬으면 좋겠다. 공적 시스템에서 활동하라고 하지만 대통령실 비서실에 담당하는 곳이 있다. 실수를 지적하는 건 좋은데 비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한동훈 장관이 보수진영 차기 대선 주자 1위로 꼽힌다.
“한동훈 장관은 역대 장관 중에선 제일 잘한다고 본다. 하지만 차기 대선후보로선 안 된다. 다음번에는 법조인보다는 정치인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오세훈 서울시장, 원희룡 국토부 장관 등 많지 않나. 그런 사람들이 부각이 됐으면 좋겠다. 너무 법조인 일색으로 가는 것은 안 좋은 거 같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이제는 참모 운영을 했으면 좋겠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분리돼서 간격이 있는 것 같다. 참모들이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를 못 하는 것 같다. 윤 대통령이 혼자 앞서가서 보좌가 안 되는지, 대통령이 참모를 자기 도구로 생각하지 않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둘 사이에 간격이 있는 것 같다. 참모가 보좌하지 않으면서 윤 대통령이 독주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 말실수 같은 것들이 여기서 나온다. 윤 대통령의 이번 미국 의회 연설 너무 멋있었지만, 국내에서 안 팔렸다. 그건 참모들 책임이다. 윤 대통령이 일단 사람을 쓰면 굉장히 아낀다. 못하든 잘하든 품고 가는 성질이다. 그런 점이 이런 부작용으로도 작용하는 것 같다.”
―끝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뭐가 정치고, 비정치인가. 검찰 출신이라 정치가 서툴다는 지적은 언제까지 할 것인가. 대통령이 된 지 1년이 지나도 똑같다는 건, 그 사람이 배우지 않는다는 이야기인가. 1년 전과 비교하면 윤 대통령은 융통성 있고 세련됐다. 선입견이 굉장히 많이 작용을 하는 것 같다. 정치라는 것이 특별 영역이 아니다. 검찰총장 하면서 정치를 안 했다고 어떻게 이야기하나. 밑에 직원들을 다루는 것도 정치다. 윤 대통령은 검찰에서도 10년 후배와 사법연수원 동기다. 대학 동기생들은 한참 앞서가고 있는데도, 버티고 자기 직무를 수행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자존심 상하는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인내심이란 것이 예사롭지 않다. 사공일 전 재무부 장관이 8전 9기 하나로 윤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했다. 8전 9기 덕분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을 수사할 때도 윗선엔 부당하다고 덤볐다. 검찰 선배가 법대 선배는 아니라서 가능했던 일이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