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로미오와 줄리엣
▲ 서로 사랑했지만 살아선 이룰 수 없었던 비운의 연인 제임스 딘과 피어 안젤리. |
전설적 로맨스는 항상 ‘처음 본 순간 불꽃이 튀고 서로에게 반하는’ 상황에서 시작한다. 제임스 딘과 피어 안젤리도 그랬다. 1954년 여름 워너브러더스 스튜디오에서 처음 만나자마자 그들은 서로에게 빠졌고,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을 했다. 이탈리아 출신의 신인 피어 안젤리는 22세, <에덴의 동쪽>(1954)을 찍고 있던 제임스 딘은 23세였다.
MGM 소속이었던 피어 안젤리는 같은 스튜디오에 있던 가수이자 배우인 빅 데이먼과 연인이었고, 1950년대 초엔 커크 더글러스와 약혼하기도 했다. 그리고 1954년 MGM은 안젤리를 <은술잔>(1954)을 찍는 워너브러더스에 빌려 주었다. 당시 워너브러더스는 엘리아 카잔 감독의 <에덴의 동쪽>을 찍던 상황. 안젤리와 공연하던 폴 뉴먼은 딘에게 그녀를 소개해주었다. 결정적 장애는 안젤리의 어머니 엔리카였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엔리카는 종교를 이유로 딘을 반대했지만, 진짜 이유는 딴 데 있었다.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는 안젤리가 좀 더 안정적인 남자와 결혼하길 바랐던 것. 당시 제임스 딘은 유망주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의 반대는 그들을 더욱 강하게 결속시켰다. 자신들만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 어머니의 엄중한 감시망을 피하는 건 그들에겐 즐거운 게임과도 같았다. 그들은 캘리포니아 해안에 작은 오두막을 빌려서 사람들의 눈을 피했고, 드라이브 인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
안젤리의 연약하면서도 강렬한 감정 상태는 딘의 감성적이면서도 극적인 성격을 자극했다. 그들은 영화와 연기와 인생과 죽음 다음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순수한 커플이었다.
하지만 급격히 불타오른 만큼 그들의 관계는 곧 삐걱거렸다. 딘이 TV 프로젝트를 위해 뉴욕으로 가게 되자 문제는 더 커졌다. 할리우드의 답답한 삶에서 벗어나 연극 시절 옛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잠시 들떴던 딘은 자신이 없는 사이에 할리우드의 수많은 늑대들이 안젤리를 노릴 거라는 생각에 갑자기 조급해졌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그녀는 프랑스 배우 자크 세르나스나, 최근에 이혼한 배우 도널드 오코너 등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공식석상에 나타났고 딘은 사진에서 그 모습을 보았다. 9월에 딘은 돌아왔지만 긴장 관계는 계속되었다. 함께 참석하기로 한 <스타 탄생> 시사회엔 결국 딘 혼자 가야 했다.
안젤리가 절친인 데비 레이놀즈가 출연하는 뮤지컬 <히트 더 데크(Hit the Deck)> 현장에 놀러간 건 결정적 사건이었다. 이 영화엔 옛 연인인 빅 데이먼도 출연 중이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그들의 관계는 급진전했고, 얼마 후 안젤리는 결혼 발표까지 하게 된다.
급작스러운 결별이었고 “안젤리는 아직 나의 사랑이다. 아마 그녀는 빅 데이먼이 아닌 그의 노래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들이 행복하길 빈다”는 말을 남기고 딘은 맨해튼으로 갔다. 1954년 11월 24일 안젤리와 데이먼은 부부가 되었고, 들리는 말에 의하면 결혼식이 있었던 성당 건너편에서 딘은 오토바이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고 한다. 2개월 남짓한 불같은 사랑의 상처는 꽤 깊었던 셈이다. 그리고 다음 해, 1955년 9월 30일 제임스 딘은 24세를 일기로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안젤리의 결혼 생활은 불행했다. 딘이 말했던 것처럼 빅 데이먼은 피어 안젤리에게 어울릴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안젤리는 데이먼과 1958년에 4년의 결혼 생활을 마감하는데 이혼 전에 이미 오랫동안 별거 중이었고, 데이먼은 결혼 전부터 여자관계가 복잡했다. 성공을 위해 많은 여자들과 연인 관계를 맺었던 것. 하지만 그들을 가장 힘들게 만든 건 딸의 결혼 생활에 시시콜콜 간섭했던 안젤리의 어머니 엔리카였다.
1962년에 안젤리는 이탈리아의 밴드 리더인 15년 연상의 아르만도 트로바졸리와 결혼했지만, 역시 행복하지 않았다. 수차례 별거를 했다. 더 힘든 건, 서른 살이 갓 넘은 여배우가 겪어야 할 지독한 슬럼프였다. TV 시리즈의 단역을 전전할 정도였다. 쌍둥이 동생이 있는 파리에서 쉰 후 1971년에 돌아와 다시 한 번 재기를 노렸지만 쉽지 않았다. 그리고 1971년 9월 10일, 베벌리힐스의 아파트에서 엄청난 양의 신경 안정제를 삼키고 그녀는 자살했다. 39세의 나이였다. 이미 네 차례나 자살을 시도했던 터였다.
“나에겐 두 명의 남편이 있었지만 남편과 침대에 있었을 때도 오로지 제임스 딘 생각 뿐이었다. 나는 남편이 아니라 오직 딘이 내 곁에 있었으면 했다”던 안젤리는 제임스 딘이 세상을 떠난 후 힘든 상황을 겪으며 지인에게 “나도 이미 죽었어야 옳았다. 더 이상은 견디기 힘들다”고도 했다. 결혼 생활 중에도 “나는 아직도 깊이 딘을 사랑하며, 영원히 지미와 사랑에 빠져 있을 것”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그리고 죽기 전 한 인터뷰에선 자신의 인생에 크게 후회하는 일 두 가지를 말했다. <그린 맨션>(1959)에 출연하지 않고 그 역할을 오드리 헵번에게 넘긴 것. 그리고 제임스 딘을 잃은 것. 사랑은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아는 것일까. 한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커플이었던 제임스 딘과 피어 안젤리는, 그렇게 서로를 그리워하며 모두 40세를 넘기지 못하고 사고와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