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회장 해외도피 도운 조력자 2명 구속해 귀국 압박…서로 자금 섞어가며 사업 키운 김성태·원영식으로 불똥
이들 가운데 최근 검찰이 가장 수사력을 모으고 있는 곳은 KH그룹이다. 서울중앙지검은 배상윤 회장의 도피를 도운 조력자들을 구속하며 배상윤 회장에 대한 압박에 나섰다. 앞서 검찰은 김성태 전 회장 검거 전에도 김 회장의 도피를 도운 조력자들을 구속하는 수사로 성과를 냈다. 법조계에서는 배 회장의 해외 도피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조력자 구속하며 압박 나선 검찰
5월 26일 배상윤 KH그룹 회장의 해외도피를 도운 혐의를 받는 임원 등 조력자 2명이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이민수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KH그룹 총괄부회장 우 아무개 씨와 수행팀장 이 아무개 씨 등 배 회장 도피에 관여한 임직원 4명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을 연 뒤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우 씨와 이 씨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나머지 2명에 대해서는 “베트남에서 자진귀국해 수사에 응했고, 범행 가담 경위에 참작할 면이 있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이들은 태국과 캄보디아 등 동남아 일대에서 머무르고 있는 배 회장의 도피를 조직적으로 도운 혐의(범인도피·상습도박방조 등)를 받는다. 검찰에 따르면 배 회장은 우 씨 등의 도움을 받아 현지에서 한국 음식을 공수 받거나 호화 리조트, 골프장 등을 드나들었다.
배 회장은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 인수 자금을 마련하고자 계열사에 4000억 원대 손해를 끼치고, 650억 원대 계열사 자금을 빼돌려 횡령한 혐의 등을 받는다. 서울남부지검에서는 KH그룹 주가조작 사건도 진행 중이다.
배상윤 회장은 올해 초만 해도 “국내 귀국 후 수사에 협조할 수 있다”며 검찰과 협상을 시도했지만, 검찰이 응하지 않자 해외 도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사업상 이유로 하와이로 출국한 뒤 귀국하지 않는 배 회장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인터폴 적색수배도 내렸다. 외교부는 배 회장의 여권을 무효화했다.
검찰은 배 회장의 해외 도피를 도운 이들의 범행이 묵과할 수 없는 형사사법 질서 교란 행위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검찰 안팎에서는 배 회장의 귀국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라는 평이 나온다. 검찰은 쌍방울그룹 김성태 전 회장이 동남아 일대에서 도피하고 있을 때에도 ‘동일한 전략’을 꺼내들었는데, 이를 놓고 김성태 전 회장이 주변에 ‘미안함’을 토로한 적이 있다고 한다.
김 전 회장과 배 회장을 잘 아는 자본시장업계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이 해외 도피 중 본인 대신 쌍방울그룹 관련 의사결정을 했던 이들이 도피 협조로 구속될 처지에 놓이자 미안해했다더라”며 “해외에서 복잡한 결정들을 대신 수행하려면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가장 우선순위로 구속되니 마음이 아프지 않겠나. 배상윤 회장도 비슷한 마음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검찰은 배 회장 압박을 위해 도박 혐의도 수사 중이다. 횡령한 회사 돈 수백억 원으로 카지노 도박을 했다는 의혹을 확인하고 있다. 원래 검찰에서 몇 년 전부터 첩보들이 들어와 있던 내용이었지만, 최근 횡령 혐의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해외 도박도 함께 수사하게 됐다는 후문이다.
앞선 자본시장 관계자는 “검찰이 수사 중인 것처럼 실제로 회사 돈을 도박 자금으로 사용된 부분이 있다면 횡령까지 처벌받게 될 것인데 그렇다면 양형이 올라가지 않겠느냐”며 “배 회장과 가까운 기업인이 배 회장이 있는 곳을 찾아 함께 도박을 한 적도 있다”고 귀띔했다.
#1세대 쩐주들 그동안 잘 빠져나갔지만…
흥미로운 점은 KH그룹 수사가 확대될수록 이른바 '1세대 큰손 투자자'들에게 불똥이 튀고 있다는 것이다. 주가조작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남부지검은 2018~2019년 KH그룹의 기업 인수합병에 투자자로 참여한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 원영식 초록뱀그룹 회장도 수사 대상에 올려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성태 전 회장과 배상윤 회장은 필요할 때 ‘자금줄’ 역할을 해준 사이였다. 쌍방울그룹 계열사인 비비안과 미래산업은 KH필룩스의 지분 3.18%, 2.78%를 각각 가지고 있기도 하다. 또한 김 전 회장이 실소유한 착한이인베스트의 자금 흐름을 쫓아가면 배상윤 회장의 KH그룹이 나온다. 2018년 11월, 김성태 전 회장이 실소유한 착한이인베스트는 쌍방울이 발행한 100억 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사들인다. 그리고 이 가운데 50억 원을 KH E&T(현재 KH건설)와 장원테크가 빌려줬다.
원영식 회장은 계열사 W홀딩컴퍼니(현 초록뱀컴퍼니)를 통해 더블유투자금융채권형투자조합 형태로 필룩스 CB를 보유한 적이 있다. 2017년 더블유투자금융채권형투자조합제9호가 필룩스 CB를 일부 행사해 한때 13% 넘는 지분을 확보하기도 했다. 모두 장내·외 매도했다. 이 가운데 일부 지분은 2900원대의 전환가액을 2877원으로 조정한 뒤 같은 가격에 전량 장외매도하기도 했다. 손해를 보지 않는 거래를 한 것인데, 검찰은 배상윤 회장의 필룩스그룹과 쌍방울그룹, 초록뱀그룹 사이에서 이뤄진 수상한 투자 흐름을 확인하겠다는 방침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장에서 활약해 온 ‘1세대 쩐주’들이 서로 자금 흐름을 섞어가며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했던 것이 문제가 됐다는 평이 나오는 지점이다. 주가조작 수사 경험이 있는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이들 3명은 10년여 전부터 검찰 안팎에서 이름도 많이 거론됐고 수사도 진행이 됐던 인물들인데 그동안 잘 빠져나갔지만 회사가 커진 만큼 문제도 커져 이번에는 피할 수 없게 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