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행은 신용대출 파이 크지 않아 불참…주담대 열리면 제도 진면목 드러날 듯
이번 제도는 온라인으로 기존 대출을 다른 대출로 바꿀 수 있도록 서비스하는 플랫폼을 정부가 허용하면서 가능해졌다. 네이버페이와 카카오페이 같은 빅테크나 토스, 뱅크샐러드, 핀다 등 핀테크들이 주요 사업자다. 이들은 여러 금융회사들과 제휴해 이용자들이 대출 상품의 조건을 비교해 기존 대출을 해당 대출로 바꿀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개별 금융회사들도 기존 이용자들이 자사 상품 가운데 각자에 가장 유리한 상품으로 바꾸도록 지원한다.
23개 플랫폼에 53개사(은행 19곳, 저축은행 18곳, 신용카드사 7곳, 캐피털사 9곳)가 참여한다. 이용자가 유리한 조건의 대출 상품을 발견해서 선택하면 해당 금융회사 앱으로 이동해 새로운 대출을 실행하는 방식이다. 새 대출이 승인되면 해당 금융회사는 금융결제망을 통해 기존 금융회사의 대출을 상환한다. 특정 금융회사 대출로 갈아타려면 해당 금융회사 앱에 접속하면 된다.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다른 곳보다 대출 이자가 비싸면 고객을 빼앗기는 구조다. 이자율을 낮추는 것이 관건이다. 대출이 가장 많은 은행을 예로 들어보자. 은행은 예금을 받은 돈으로 대출을 한다. 예금 이자는 한국은행 기준금리를 반영한 시장금리에서 은행의 각종 비용을 뺀 결과다. 대출 이자율은 예금 이자 비용에 위험비용과 관리비용, 이익 등을 더해 산정된다. 비용 효율이 곧 가격경쟁력이다.
1분기 4대 시중은행 영업수익(이자+수수료) 대비 일반관리비 비중을 보면 국민은행 18.1%, 신한은행 16.7%, 하나은행 17.3%, 우리은행 19%로 큰 차이가 없다. 이들의 시장 과점이 오래돼 비용 경쟁력의 평준화가 이뤄진 결과다. 4대 은행 간에는 대출 이자율이 비슷해 이동할 유인이 별로 없다는 뜻이다. 4대 은행 대비 비용 경쟁력이 높은 인터넷은행은 이번 서비스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정부에서 독려하는 중·저신용자 비율을 맞추기 위해 당분간 고신용 차주의 유입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명분이다. 다만 이번 서비스에는 은행 외에도 저축은행과 캐피털사, 카드사 등이 참여한다. 금융업 종류별로 조달비용이 달라 업권간 이동으로 이자부담이 낮아질 수는 있다.
금융위원회가 집계한 '온라인·원스톱 대환대출 인프라' 첫날 이용실적은 1819건, 474억 원이다. 한도 대출로 받은 1500만 원의 이자를 연 9.9%에서 5.7%로 낮추고(은행→은행), 500만 원의 카드론 이자율을 19.9%에서 17%로 조정한(카드사→카드사) 경우 등이 확인됐다. 저축은행에서 연 15.2%로 받은 8000만 원의 신용대출을 연 4.7%의 은행대출로 갈아탄 사례도 있었다. 그럼에도 전체 유형은 은행 간 이동 비중이 90%에 육박했다. 대출심사 등의 과정에서 금리가 높은 2금융권에서 은행으로의 이동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일부 은행에서는 대환대출 창구에 한해 금리를 0.3~0.5%포인트 내리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현재 수준의 비대면 대환대출이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벌써부터 나온다. 은행권의 대출금리 결정은 신용점수뿐 아니라 거래실적 등에 영향을 받는다. 월급통장이나 신용카드 이용실적에 따라 적용 금리가 달라져 소폭의 금리 차이로는 대출을 옮길 유인이 적어진다.
비용도 걸림돌이다. 중도상환 수수료나 대환대출 서비스 업체에 내는 수수료 등의 비용을 감안하면 대출을 옮기더라도 큰 혜택이 없을 수 있다. 이미 온라인으로 대출조건을 비교할 수 있는 서비스가 보편화된 만큼 대출을 옮길 수요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결국 기존 대출을 옮기지 않을 수 없을 파격적인 조건이 등장해야 한다. 유력 후보는 기존 은행과 다른 비용구조를 가진 인터넷은행이다.
1분기 영업수익 대비 관리비 비중은 카카오뱅크가 16.56%, 케이뱅크 14% 선이다. 지점 비용이 없음을 감안하면 시중은행 대비 크게 낮은 수준이 아니다. 비용 경쟁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직 충분한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한 탓이다. 은행업에서는 높은 차입 비율은 규모의 경제를 가능하게 해 경영효율을 높인다. 시중은행의 자본 대비 자산규모가 인터넷은행보다 더 크다. 4대 은행 평균자산은 486조 원으로 자본(평균 30조 원) 대비 16배 이상 크다. 카카오뱅크 자산은 47조 원이 안돼 자본의 8배 수준이다. 케이뱅크 자산은 19조 원으로 자본의 약 10배다.
이는 경영효율에서도 나타난다. 1분기 자본 대비 평균 세전이익율은 4대 은행 4.07%, 인터넷은행 1.47%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는 현재의 자본으로 대출을 각각 100%, 50% 더 늘릴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 우리나라 가계대출은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다. 시장이 포화상태에 가까워 빠르게 대출을 늘리기 어렵다.
인터넷은행이 단기간에 자산을 늘리려면 다른 은행의 대출을 빼앗아 와야 한다. 이번에 시행된 비대면 대환대출은 신용대출로 제한됐다. 개별 금융회사가 빼앗아 올 수 있는 액수가 전년도 신규 취급액의 10% 또는 4000억 원 중 적은 수준으로 한도가 정해졌다. 지난해 전금융권 신규 신용대출 규모가 110조 원이었으니 올해 움직일 수 있는 규모는 많아야 11조 원이다. 금융회사 한 곳이 가져갈 수 있는 파이도 4000억 원을 넘지 못한다.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토스뱅크의 지난해 신용대출 신규취급액으로만 따지면 한 곳 당 한도는 4000억 원에도 한참 못 미친다. 이들 입장에서 얼마 안되는 대출을 빼앗아 오기 위해 기존 금융회사들과 대립각을 세울 이유는 적다.
인터넷은행이 진짜 노리는 시장은 1800조 원이 넘는 가계신용 가운데 1000조 원 이상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이다. 10%만 움직여도 100조 원이다. 담보대출은 액수가 커 조금의 금리 차이에도 민감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연말까지 주담대 대환대출 인프라를 구축할 예정이다.
결국 비대면 대환대출의 진면목은 주택담보대출 시장이 열려야 확인이 가능할 전망이다. 시중은행의 주담대를 더 많이 빼앗아 올수록 인터넷은행은 규모의 경제를 갖춰 비용경쟁력을 더욱 높일 수 있다. 인터넷은행 입장에서는 ‘큰 시장’이 열리기 전까지는 ‘발톱’을 숨기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할만하다. 시중은행들도 인터넷은행의 경쟁력을 알고 있는 만큼 주담대 시장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방어수단을 강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비대면 쟁탈전이 시작된 이상 인터넷은행의 가계대출 점유율 확대는 시간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향후 시중은행들은 기업대출과 자산관리서비스 등으로 수익원을 다양화할 것으로 보인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