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호제강, 투자부동산 가치 공시지가보다 낮게 매겨…경영권 방어 위해 조합에 자사주 넘긴 것도 논란
#'식자재 마트' 땅 미스터리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사인 만호제강은 2022년 기준 매출 약 2500억 원 규모에 시가총액은 2700억 원대인 중견기업이다. 부산에 본사를 두고 경남 창원과 양산 및 일본 등지에서 공장이나 영업소를 운영하고 있다. 업력 70년의 최장수 철강 와이어 제조업체로 한때는 '수출 역군'으로 정부 표창도 받았다. 현재는 위상이 예전만 못하지만 여전히 업계 1~3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영남 지역에 기반을 둔 기업인데 서울에 보유해온 한 부동산이 최근 발견되며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영등포구 양평동에서 고층빌딩들에 둘러싸인 한 식자재 마트 부지가 만호제강 소유로 확인된 게 발단이다. 만호제강이 '투자부동산'으로 보유해온 곳으로 감사보고서 등을 통해서는 구체적 주소지를 드러내지 않아온 땅이다.
부동산과 주식 등 투자에 관심을 가져온 서울의 평범한 직장인 A 씨가 우연히 발견했다.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A 씨는 만호제강의 투자부동산을 지속적으로 물색했다. 그 결과 인천 1곳과 부산 3곳 등 총 4곳에서 회사의 투자부동산을 추가로 찾아냈다. 해당 부지들 역시 회사가 주소지를 숨겨 온 곳이다.
이는 기업에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발견된 땅들의 공시지가가 총 414억 원으로 파악됐기 때문이다. 만호제강은 2022년부터 올해까지 감사보고서에 투자부동산 '공정가치'를 건물 포함 약 270억 원으로 기재한 상태다. 땅을 거래할 경우 예상되는 가치가 공시지가보다도 144억 원가량 낮다고 공시한 셈이다.
토지의 공시지가는 세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지표로 땅의 실제 가치보다 너무 낮게 책정돼 온 탓에 현실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꾸준했다. 당연히 공정가치가 공시지가보다 낮은 경우는 현실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땅 주인이 실제 가치보다 큰 세금을 낸다는 의미와 같다. 오히려 부채비율을 낮추려고 공정가치를 부풀리는 사례가 흔하다.
만호제강의 공정가치에는 또 다른 특이점이 보인다. 2021년 감사보고서에는 같은 땅을 놓고 공정가치가 521억 원이라고 기재했다. 당시 공시지가보다 수십억 원 높은 금액이다. 바로 이듬해부터 현재와 같은 270억 원으로 낮춰 기재했다. 이는 땅의 공정가치가 1년 만에 반토막 나 공시지가 밑으로 내려갔단 뜻이 된다.
최민성 한양대 도시대학원 겸임교수(델코리얼티그룹 회장)는 "공정가치는 기업들이 감정평가를 토대로 자의적으로 반영하는 구조인 까닭에, 흔치는 않으나 이론상으로는 공시지가보다 낮아질 수야 있다"면서도 "그런데 1년 만에 30% 넘게 하락한 대목이 너무 이례적이라 사측의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검사 출신이자 기획재정부 등에도 몸담았던 박진현 변호사 역시 "부동산 감정평가 기법이 여러 개 있기 때문에 공정가치가 공시지가보다 낮다는 자체만으로 잘못을 예단할 수는 없다"며 "다만 한 해 만에 투자부동산 공정가치가 2배 가까운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일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박 변호사는 특히 "한 해에 과하게 기재됐거나 너무 축소돼 기록됐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회사가 정확한 원인을 소명할 필요가 있다"며 "오류가 확인되면 부실공시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바라봤다.
#주주들 분통…맞대응 검토
만호제강 주주들 사이에서는 격앙된 반응이 터져 나온다. 이 회사는 투자부동산을 제외한 유형자산의 공시지가만 1250억 원가량이라 대표적 자산주로 불린다. 이런 가운데 투자부동산의 공정가치가 순식간에 공시지가보다 낮아졌다고 기재한 것은 주식투자 유인을 축소해 오너 일가의 경영권을 지키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으로 이어졌다.
이 같은 분석은 만호제강이 경영권을 위협 받는 상황이기 때문에 제기됐다. 현재 만호제강 지분율을 보면 최대주주가 김상환 대표와 특수관계인으로 19.32%이며 2대 주주는 투자사 엠케이에셋으로 14.94%다. 최대주주와 2대 주주의 차이가 불과 4.38%다. 엠케이에셋의 표면상 목적은 '단순투자'지만 실제로는 경영참여를 염두에 뒀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만호제강은 급한 대로 자사주를 활용해 경영권을 방어하고 있다. 우리사주조합에 자사주를 처분하며 우호 지분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2023년 5월 20만 주를 126억 원에 처분한 데 이어 6월 7일에는 28만 9000주를 190억 원에 6월 16일까지 넘기겠다고 공시했다. 현실화하면 우리사주조합의 지분율은 16.4%까지 늘어난다.
만호제강이 2023년 우리사주조합에 넘긴 자사주 규모만 약 316억 원이다. 2022년 직원들에 지출한 총 급여가 92억 원이었는데 그의 3.4배를 웃도는 액수다. 사실상 회사가 매수 자금을 대신 내주는 격으로 논란의 소지가 크다. 이미 만호제강은 29억 원을 우리사주조합에 자사주 매입 명목으로 장기대여해준 상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소액주주들을 중심으로 한 연대 움직임마저 일고 있다. 주가 부양 의지가 안 보인다며 2023년 9월 예정된 주주총회에서 상근감사를 선임하자는 주장도 흘러나온다. 상근감사 선임 과정에서 대주주 의결권은 이른바 '3%룰'에 따라 3%로 제한된다. 따라서 소액주주들이 결집하고 엠케이에셋까지 지원사격에 나선다면 상근감사 선임이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엠케이에셋은 아직은 관련 계획이 없다고 전해졌다. 그 대신 우리사주조합에 자사주 처분을 금지하는 가처분 등 법적 대응을 검토하는 중이라고 전해졌다. 근로복지기본법에 따르면 우리사주조합에 대한 자사주 처분 관련 차입금은 전년도 회계연도 기준으로 조합원 급여의 일정 부분을 넘을 수 없다.
일요신문은 만호제강에 각종 논란과 관련한 질의를 남겼으나 대답을 듣지 못했다. 다만 엠케이에셋 측의 자사주 매수 의향서에 보낸 답변서에는 "투자부동산 공정가치는 외부 감사인들이 인증하는 금액을 표시했다"며 "우리 조합원들의 간곡한 주식 취득 요청이 있어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 적정 가격에 일부 매각하게 됐다"는 설명이 담겼다.
한편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금융연구원 등 금융당국은 6월 5일 국내 자사주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상장법인의 자기주식 제도 개선 세미나'를 개최했다. 금융위가 2023년 1월 업무보고에서 '자사주 취득·처분 공시 강화 등 제도개선'을 주요 정책 과제로 보고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세미나에서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시장에서는 자사주에 대해 효과적인 주주가치 제고 수단이라는 시각, 대주주의 지배력 확대나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며 "정부는 상장 법인의 자사주 제도가 대주주의 편법적인 지배력 확대 수단으로 남용되지 않도록 다양한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