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결과 대부분 ‘문제없음’, 근태 등 ‘불문’ 사항 기재…“허위사실” 전 위원장 소송전 예고
#감사원 '뒤끝', 전현희 '분노'
전 위원장이 퇴임 예정일인 6월 27일까지 불과 약 2주 앞둔 상황에서 강경한 투지를 다시 불태우고 있다. 2022년 7월 28일부터 시작된 감사원의 권익위 감사 결과가 약 1년 만에 나왔는데 내용이 어쩐지 묘한 탓이다. 그동안 의혹이 제기돼 온 사항 대부분 '문제없음'으로 결론지어졌으나 전 위원장의 근태가 불성실했다는 뉘앙스는 담겼다.
감사원은 6월 9일 공개한 감사보고서에서 전 위원장과 권익위를 대상으로 조사한 총 13가지 비위 의혹 가운데 4건에 대해 '기관주의'를 조치했다고 밝혔다. 해당 처분에서 전 위원장이 관여한 사항은 1건이다. 부하 직원에게 대학원 과제를 대신 시키는 등 갑질 행위로 중징계를 받은 권익위 A 국장을 위해 전 위원장이 탄원서를 써준 사항이다.
그런데 감사원은 이례적으로 '불문'(책임을 묻지 않음) 사항까지 결과 보고서에 담았다. 전 위원장의 '근무지 및 청사 출입시각' 기록이 대표적이다. 감사원은 전 위원장이 정부세종청사에 오전 9시를 넘어 출근한 비율은 93%, 정부서울청사로 출장을 갔을 때 오전 9시 이후 출입한 비율이 97%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언뜻 상습 지각으로 비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감사원은 불문 사유로 △정무직 기관장으로서 대외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고 △근무지와 출장지 등이 각각 세종시와 서울시로 분산돼 출퇴근 시간 개념이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았으며 △현장방문 등 이동 과정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상황도 잦다고 명시했다.
전 위원장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런 감사보고서가 만들어진 배경을 놓고 자신에게 창피를 주려는 의도라고 강조했다. 그는 6월 12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대한민국의 그 어떤 장관급 고위공직자에게도 적용되지 않는 근태 기준을 적용한 결과가 감사보고서에 담겼다"면서 "제 사퇴 압박을 목적으로 한 형평성이 상실된 감사라는 사실을 입증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서울사무소는 출장으로 분류되는데, 이를 포함한 출장에도 9시에 출근하는 규정을 적용할 수 있겠나"라며 "제가 실제 근무한 시간은 평균 주 60시간 이상이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한 게 명백한 사실"이라고 반론했다.
정무직 기관장의 근태 관련 기준이 일반 공직자들과 다르게 적용되는 것은 사실이다. 예컨대 감사원만 보더라도 최재해 원장의 출근 기록을 갖고 있지 있다.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2년 8월 감사원에 최 원장의 근태 기록을 요구했다가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다.
다만 감사원도 할 말은 있다. 이번 감사에 착수한 주요 명분이 전 위원장의 상습 지각 의혹이었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2022년 7월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전현희 위원장 관련 묵과할 수 없는 제보가 들어왔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전 위원장이 지각을 자주 한다는 게 제보 내용이었다고 이후 언론 등을 통해 드러났다.
#'맹탕감사' 지적에 주도권 쥔 전현희
하지만 최종 결론 대부분이 무혐의로 채워지며 '맹탕 감사'라는 지적을 외면하기는 어렵게 됐다. 이에 애초부터 무리한 감사였다는 분석에도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실제 권익위는 2021년에 이미 정기감사를 받은 상태였다. 통상적으로 감사는 2년에서 5년 주기로 진행되지만 이번 감사는 '묵과할 수 없는 제보' 한 통으로 1년 만에 다시 이뤄졌다.
감사 자체도 두 차례 기간이 연장돼 결과가 나오기까지 약 10개월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전 위원장이 관사 수도관 동파 비용을 횡령하고, 어느 행사에서 입은 한복을 강압으로 대여했다는 의혹도 나왔는데 전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올해 2월에는 안성욱 당시 권익위 부위원장이 임기를 약 1년 앞두고 감사 피로감 등을 호소하며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먼지털이식 감사'라는 의심마저 따랐을 만큼 대대적인 조사였음에도 다소 허무한 감사 결과가 나오자 이제는 전 위원장에 주도권이 넘어갔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전 위원장은 이미 2022년 12월 최재해 감사원장과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한 상태다. 상습지각 등을 처음 제보했다고 알려진 권익위 관계자 A 씨도 함께 고발했다.
전 위원장은 올해 4월 4일 고발인 조사를 마쳤다. A 씨에 대해서는 본인 승진을 목적으로 권익위 소관법령상 보안을 엄격히 유지해야 하는 내부자료를 감사원에 불법 제공했다는 주장 등을 폈다고 알려졌다. 최 원장과 유 사무총장에 대해서는 해당 불법 자료를 이용해 감사를 벌였다는 등의 문제를 제기했다고 전해졌다.
이번 감사 결과에 대해서도 추가 소송을 예고했다. 그는 감사 결과가 공개된 직후 본인의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허위와 왜곡 감사보고서를 언론에 배포해 권익위원장을 근무태만으로 매도하는 등 허위사실로써 (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강력한 법적 대응으로 맞서겠다"고 경고했다. 정치권을 향해서도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장관들의 근태 감사를 해보라"고 일갈했다.
이 같은 반응은 전 위원장이 얼마나 분노했는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으로도 꼽힌다. 이번 정부에서 지속적인 사퇴 압박을 받았지만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며 비판 목소리를 높인 적은 없었던 까닭에서다. 권익위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전 위원장도 법조인 출신인 데다 정치 경험을 갖춘 인물인데 정부에서 괜히 자극한 것 아니냐는 시선도 없지 않다"며 "당장 내년이 총선인데 전 위원장의 존재감만 오히려 커졌다는 시선이 많다"고 전했다.
권익위의 반격도 주목된다. 현재 감사원장 관사 개보수 비용 과다 지출 의혹을 조사하고 있어서다. 이탄희 민주당 의원이 2023년 2월 15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최재해 원장이 재임 7개월 동안 1억 4180만 원을 관저 개보수에 썼다"며 "최재형 전 원장이 3년 4개월 동안 쓴 5842만 원보다 2배 이상 많다"고 지적하면서 시작됐다.
권익위는 2022년 2월 '공직자 공·관사 전반 실태조사'를 착수했다. 일부 기관장들이 아파트를 매입하고도 공관 생활을 하는 등 고위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 정황이 포착돼 시작된 조사다. 전 위원장은 조사의 공정성 등을 이유로 직무회피를 신고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전국 모든 관사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조사라 최종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꽤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며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히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감사원은 "1985년에 지어진 관사라 화장실을 포함해 건물 자체가 총체적으로 노후화했다"며 적법한 비용 집행이었다고 반박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