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돼 재판 넘어가면 최악, 그냥 풀어주지 않을 것…법보다 공산당 간부의 말이 더 먹혀”
손준호는 K리그 포항 스틸러스와 전북 현대 모터스 등을 거치며 K리그 간판급 미드필더로 도약했다. 2020시즌 K리그1 MVP로 등극한 손준호는 2021년 중국 슈퍼리그 산둥 타이산으로 이적했다. 2021년 산둥 타이산은 슈퍼리그와 CFA컵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더블을 달성했다. 2022년에도 CFA컵 우승을 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손준호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이탈리아 세리에A 이적설에 휩싸이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산둥 타이산과 재계약이었다. 2023시즌까지였던 손준호와 산둥 타이산의 계약기간은 2025년까지로 연장됐다. 그러나 재계약 첫해 전혀 생각지 못한 변수가 손준호를 엄습했다. 지난 5월 12일 손준호는 귀국행 비행기 탑승을 대기하던 중 긴급체포됐다. 손준호는 뇌물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복수의 중국 현지 매체에 따르면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5월 16일 정례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인 한 명이 비국가공작원 뇌물죄 위반으로 5월 12일부터 랴오닝성 차오양시 공안국에 의해 형사구류 상태에 있다”고 밝혔다. 왕 대변인은 “중국이 법치국가로서 유관 법률에 의거 안건을 처리하고 있다”면서 “당사자의 합법적 권리를 보장할 것”이라고 했다.
긴급체포된 손준호는 중국 랴오닝성 차오양시 공안 당국에 의해 형사구류됐다. 중국 현행법상 형사구류는 37일 동안 진행할 수 있다. 형사구류 시점이 만료되는 시점과 맞물려 손준호에 대한 수사는 구속수사로 전환됐다. 구속 비준 이후 보강수사에 따라 손준호 기소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만약 손준호가 기소된다면 기약 없는 재판 일정에 돌입해 선수 생명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일요신문은 중국 현지에서 형사구류와 구속수사, 구속기소, 재판까지 받았던 A 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A 씨는 2000년대 초반 손준호와 유사한 형사 절차를 거쳐 약 8년 동안 중국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법으로 풀 생각 하면 그때부터 꼬일 것”
A 씨는 “손준호 사건을 보며 내가 겪었던 부분과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면서 “장래가 촉망받는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선수 생명 자체를 위협받고 있는 상황인 데다, 국내에선 손준호와 관련한 명확한 상황파악이 어렵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인터뷰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손준호가 구속된 상황과 관련해 A 씨는 “통상적인 생각으로는 손준호가 법적으로 무죄를 소명하면 풀려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면서 “그것은 굉장히 큰 오산”이라고 했다. A 씨는 “중국은 손준호가 무죄를 소명하더라도 그냥 그대로 풀어줄 수가 없는 상황”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손준호는 중국 입장에서 외국인이다. 아무런 죄 없는 외국인이 형사구류와 구속 과정을 거쳐 무죄로 석방됐다고 가정해보자. 인권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상당히 이슈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형사구류와 구속수사를 결정한 이상 중국은 손준호를 무죄로 풀어주지 않을 것이다.”
A 씨는 “지금 손준호에게 남은 최선의 시나리오는 기소유예로 풀려나는 것뿐”이라면서 “유·무죄 판단에 앞서 기소 자체를 유예시켜 손준호를 한국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지금으로서 남은 마지막 방법일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는 “지금 손준호가 구류되고 구속되는 과정에서 손준호 혐의점과 관련해 나온 증거는 하나도 없다”면서 “그럼에도 구류와 구속이 가능한 것이 중국 형사법이다. 지금이라도 우리나라 정부가 외교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기소유예를 받아내려는 절차에 돌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A 씨는 “혹시라도 중국 당국이 손준호를 기소해 재판으로 넘어간다면 그때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면서 “재판에 들어가면 손준호 중국 현지 변호사도, 재판을 관장하는 판사도 아무런 결정권이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99%”라고 했다.
#“중국공산당 중앙당이 모든 의사 결정 심장부”
손준호는 중국 당국이 중국 슈퍼리그 산둥 타이산 내부에서 벌어진 뇌물수수 및 승부조작 등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6월 5일 대한축구협회는 임원과 사내 변호사 등을 중국으로 급파했지만 아무런 소득 없이 돌아왔다. 중국 현지 손준호 개인 변호사도 대한축구협회 측과 만남을 꺼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상황에서도 위르겐 클린스만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손준호를 6월 A매치 명단에 포함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손준호가 어려운 시기에 우리가 함께하고 있고, 100% 서포트하고 있다는 점을 손준호에게 전달하고 싶다”면서 “축구협회 차원에서 도와줄 부분은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선 손준호 사건과 관련해 랴오닝성 차오양시 공안 당국이나, 재판에 돌입할 경우 사건을 관할하는 재판부 등에 초점을 맞춰 해결책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A 씨는 “중국 재판부나 공안 당국 수사 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중국 현지 사정을 몰라서 하는 이야기”라면서 “진짜 초점을 맞춰야 하는 부분은 중국공산당 중앙당”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삼권분립으로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가 분리돼 있고 그 과정에서 양당이 선거를 통해 권력을 쟁취하는 시스템”이라면서 “중국은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가 모두 중국공산당 중앙당이라는 ‘권력 정점’ 아래 산개해 있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A 씨는 “랴오닝성이라는 지방 공안 당국에서 손준호를 수사하는데, 공안 당국 담당자는 공산당 지역당 핵심 관계자이며, 그들이 수사하는 건은 모두 공산당 중앙당으로 보고된다”면서 “손준호 사건처럼 국내외적으로 관심이 높은 사건은 반드시 중국공산당 중앙당의 확인 절차를 거쳐 모든 절차가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중국 소식통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 소식통은 “중국에서 법조인이 가지는 위치는 한국과는 전혀 다르다”면서 “중국 변호사는 재판에 돌입하면 통상적으로 ‘선처를 부탁드린다’는 이야기를 제외하면 별 말을 하지 않는다. 애매한 사건을 처리하는 판사는 피고인을 따로 불러 ‘이것은 내가 내린 판결이 아니’라고 강조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 소식통은 “중국 판사들은 사회적으로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이나 죄가 되는지 여부가 애매한 사건이 생기면 판결문을 3개 써서 상부에 보낸다”면서 “판결문 3개 중에 공산당 내 담당 지휘부가 간택한 판결문을 최종 재판 결과로 인용하게 된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현지 판사와 소통한 내용을 인용해 “중국 판사들은 외국인에 대한 민감한 판결에 대해서는 독립적으로 판단할 권한이 없다”면서 “중국공산당 내 담당 지휘부가 하달하는 지침에 따라 판결을 내리게 된다”고 했다.
A 씨는 “지방 공안당국이나 지방 법원이 사건에 대한 판단 권한이 있다면, 우리나라 외교부에서 직접 나서 손준호 사건 해결에 나설 필요가 없다”면서 “모든 결정 권한 심장부엔 중국 제1집권당이자 중국 대륙을 일통한 공산당이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재판을 받을 당시 중국인 변호사와 함께 구금되었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A 씨에 따르면, 중국인 변호사는 피고인을 변호하는 재판정에서 공안당국의 체포 구금의 불법성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며 담당 수사관에 대들었더니 재판이 끝나고 귀가 후 가족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던 중 중국 공안 당국으로부터 연행되어 구금되었다고 했다.
A 씨는 “이렇듯 공안당국의 막강한 권한 때문인지 중국 현지 변호사들은 재판 과정에서 ‘선처를 부탁드린다’라는 말만 반복하지 법률적 논쟁이나 집행의 부당성에 대해서는 따지지를 못한다”고 했다.
A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변호사가 피고인을 접견하기 위해서는 공안당국의 허가를 받고 경찰관의 입회하에 변호인 접견이 이루어지는데,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변호사도 접견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 중국 형사소송법’이라고 했다. 우리 실정으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지만 중국은 지금도 그렇다”고 지적했다.
1심 재판과 항소심 과정에선 선고 직전 재판 담당 판사가 A 씨와 가족들을 함께 부르기도 했다. 판사는 A 씨와 가족들에게 “이 판결은 내가 내린 판결이 아니다. 양해 부탁드린다”면서 항소와 상고를 제안했다. 그리고 재판정에서 높은 형량 판결을 선고하는 판결문을 읽어내려갔다. A 씨는 “이게 대륙의 형사법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면서 “세상 어느 법원에서 판사가 피고인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고 판결을 내리느냐”고 반문했다.
#“재판은 최악의 시나리오…혐의 없어도 노동교화형 가능”
구속수사로 전환된 손준호 사건 앞에 놓인 선택지는 얼마 없다. 그마저도 자의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전무한 상황이다. 손준호는 구속기소와 기소유예 중 하나의 시나리오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 구속기소가 될 경우 재판에 돌입하게 되는데, 중국 현지에선 재판이 완료되는 시점이 천차만별이다. 구속기소는 손준호 선수 생명에 사실상 치명타를 입힐 가능성이 높다.
A 씨는 “구속기소가 돼 재판으로 돌입하는 것은 사실상 최악의 시나리오”라면서 “재판에 돌입하면 무죄를 소명할 방법도, 기회도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A 씨는 “그렇게 되면 그냥 재판부가 어떤 판결을 내리든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비참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중국은 겉으론 ‘법대로’를 강조하지만, 법대로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은 전무하다고 본다”면서 “선수 본인도 젊은 나이에 돌연 중국에 수감돼 있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 정신적으로 굉장히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했다.
A 씨는 “재판에 돌입하는 것이 최악인 이유가 또 하나 있다”면서 “중국 법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피고인이 유죄가 입증되지 않아도 노동교화형에 처할 수 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이 경우엔 중국 수사당국 소환 등에 지속적으로 임해야 하는 까닭에 ‘사법 리스크’를 안고 가야 한다. 이른바 취보후심(取保候審) 제도 때문이다.
2006년 작성된 해외공무원연수 연구논문 ‘중국 수사제도 소고(저자 안동선)’에 따르면 취보후심은 공안기관, 인민검찰원(검사), 인민법원이 범죄혐의자, 피고인에게 보증금·보증인을 세워 수사와 심판을 회피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다. 관제(管制)와 구역(拘役) 처분의 경우 취보후심 적용 조건에 부합한다. 관제는 공안기관 감시를 받으며 자유가 제약되는 상황에서 단체노동에 참여해 노동개조를 받는 형의 일종이다. 구역은 강제노역이다.
A 씨는 “중국 당국이 외국인을 잡아 놓았다는 부분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된 이상 중국도 손준호를 ‘그냥’ 풀어줄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특무(첩보활동) 등 국가 간 스파이 행위에 대한 부분이라면 불가능하겠지만, 그런 부분에 손준호가 연루돼 있지 않은 이상 충분히 외교부 차원에서 조치할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고 했다.
일각에선 손준호와 관련해 ‘수형자 이송조약’을 거론하는 목소리도 있다. 중국 현지에서 재판을 받은 뒤 수형자 이송조약에 따라 손준호를 한국으로 이감하는 방안이다. 이와 관련해 A 씨는 “현 상황에서 손준호 사건은 수형자 이송조약과 무관하다”고 단언했다.
A 씨는 “한국에서는 죄가 안 되고 중국에선 죄가 되는 경우는 수형자 이송조약을 적용할 수 없다”면서 “수형자 이송조약에 따라 손준호가 한국에 수감된다 하더라도 중국 현지에서 받은 형을 모두 이행해야 한다. 가석방 등 조치를 하려면 상대국(중국) 측 비준을 얻어야 한다”고 했다.
A 씨는 “손준호는 지금 다른 변수를 생각할 겨를이 없는 시급한 상황”이라면서 “아직 기소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지금이 마지막 남은 골든타임으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손준호 사건 해결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반드시 인지해야 할 것이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법보다 주먹이 아니라, 법보다 공산당 간부의 말이 더 먹힌다. 중국 공산당 간부 말 한마디가 민형사법보다 우위에 있다고 본다. 중국의 법은 중국 공산당의 어떤 조치를 정당화하는 장식품에 불과하다. 이 부분에 대한 사전 인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